2023. 2. 7. 09:25ㆍ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건축담론 Architecture Discussion
편집자 註
2000년 대한건축사협회가 임의가입으로 전환됐다. 단일 협회로서 해당 전문자격사의 공적 역할을 확대하기 위해 2000년 중반부터 대한변리사회, 감정평가사회 등 대부분 자격단체들이 의무가입으로 전환했지만, 대한건축사협회는 2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임의가입으로 남아 있다. 임의가입제 하의 지난 21년은 타 분야와 비교해볼 때 전체적으로 건축사의 위상과 업 발전 면에서 오히려 퇴보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지 모른다. 지난 6월 28일 협회가 어렵게 마련한 의무가입 실현의 기회가 국회 법사위 제동으로 유보됐다. 의무가입을 시작으로 여러 건축개혁 작업이 추진될 수 있었지만, 그 동력이 약화될까 우려된다. 이번 국회 법사위에서 나온 발언들도 논란이다. 특히 건축사, 협회 공적 역할에 대한 왜곡된 발언은 건축사 역할에 대한 정부와 국회의 그릇된 인식을 확인할 수 있게 했다. 건축물의 설계, 공사감리, 건축허가 및 사용승인 시 현장조사·검사 및 확인업무 등과 같은 건축사의 업무는 당연히 공공성을 띠며, 약 1만 2,000여 명의 회원을 둔 협회도 관련 법령에 따라 여러 행정기관이 할 일을 대신하고 있다. 어려운 환경 내에서도 묵묵히 사명을 다하는 건축 사로선 실로 큰 상실감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공사현장에서 불법 자격(면허) 대여가 횡행하고, 부조리한 감리 행위 등 의 원인이 무엇이고 대처방안이 무엇인지 생각이 있다면 5분만 고민해 도 되는 일들이다. 원인을 그대로 두고 말라가는 잎사귀를 문제시하는 정책 마인드는 심각한 수준이다. 현재의 임의가입 상태에서 협회는 아 무런 실질적 권한이 없다. 권한이 없음에도 문제를 풀어보라고 하는 황 당한 상황을 이번 법사위 질의응답에서 목격한 셈이다. 이번 의무가입의 가치와 본질에 대한 건축담론을 통해 건축사의 현실은 어떠하며, 의무가입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 해 볼 수 있었으면 한다.
01 Who is the compulsory architect membership of the Korea Institute of Registered Architects(KIRA) for?
“건축사들의 건축사협회 가입을 의무화시키는 법과 제도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런 질문을 받을 때 일반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대답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건축사나 건축인들의 솔직한 생각은 어떨까….
이 주제와는 약간 다르지만 이 주제의 답을 이끌어 내기 위하여 필자의 옛 경험을 나누며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경험 1) 오랜 고객이었던 건축주가 오랜만에 친구분을 모시고 찾아왔다. 안부를 나눈 뒤에 소개를 받았는데 이 분이 작은 건물을 짓겠다며 좋은 건축사를 소개해 달라고 하기에 필자를 찾아왔다며 이야기를 나눠 보란다. 5층 건물을 짓고 싶다며 대지 위치를 알려주는데,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계획안을 고민하였다. 약속된 일주일 후, 고민 끝에 만들어진 계획안을 보여주었더니 너무 마음에 든다며 설계비를 묻는다. 당시 필자가 받던 설계비를 이야기하니 집에 가서 아내와 상의하고 오겠다던 사람이 오지 않는다. 궁금해서 소개해 주셨던 분에게 물어보니 자기가 주었던 설계비와 같은데도 설계비가 약간 비싸다며 고민 중이란다. 그러고 나서 잊고 지냈는데, 4∼5개월 정도 경과 후 우연히 그 대지 앞을 지나가는데 내가 고민했던 그 건물의 형태와 창 모습마저 같은 건물의 골조가 완성되어 있었다. 필자가 고민 끝에 계획했던 도면의 모습 그대로 다른 건축사에 의해 복사되어 허가가 난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약 27~28년 전의 그 사건 이후로 설계 계약을 하기 전에 기획서 이외에 설계도면은 건축주에게 주지 않는다. 과연 누구의 잘못인가? 필자의 계획안을 가지고 가서 설계비를 더 깎았을 건축주의 잘못인가, 아니면 그 도면을 베끼다시피 하여 허가를 받은 그 건축사의 잘못인가?
경험 2) 경영대학원 최고 경영자과정에서 만난 식품회사 사장님에게서 김치공장을 만든다며 도와달라는 연락이 왔다. 당연히 도와드리지요, 하며 만났는데 말이 공장이지 198제곱미터 짜리 경량골조 건물을 짓는 것이었다. 198제곱미터 정도의 창고 스타일 경량 철골조 건물 1동의 건축이었고, 대지의 위치가 서울 외곽의 경기도 지역이며 특별히 설계에 큰 기술이나 정성이 필요한 내용이 아니므로 해당 시청 부근의 건축사사무소에 설계와 감리를 부탁하면 공정에 지장을 받지 않고 원만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조언을 드렸다. 설계도면은 필자가 체크해 드리는 것으로 정리를 했다. 허가신청 전에 허가도면이 다 되었다고 하여 건축사사무소에 도면을 검토하러 갔는데, 허가신청 도면은 총 4장이었다. 첫 장에 개요서, 안내도, 배치도가 들어가 있고, 둘째 장에 건축평면도 입면 2면과 단면도가, 셋째 장에 철골 구조도면과 지붕도면, 넷째 장에 전기 및 설비도면이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는 초 간단 허가도면이었다. 도면을 살펴보니 첫째 장만 새로 그린 것이고, 나머지 세 장은 어디든지 사용 가능한 공통 도면이었다. 그런 도면에 무슨 검토를 하나 싶어서 건축주에게 나오자고 하며 설계비를 물어보았더니, 20년 전인데도 불구하고 감리비까지 포함하여 800만 원을 주었단다. 나중에 들었는데 감리 건축사는 현장에서 한 번도 못 봤다고 한다. 준공은 났다고 하는데, 결국 새로운 도면 1장과 어느 현장이나 사용 가능한 공통 도면 3장에 800만 원의 가격이라는 것을 되짚으며 이야기한 것이 20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가 않는다.
경험 3) 얼마 전의 일이다. 오랜만에 대학 동창에게서 전화를 받았는데 자기 매제가 서울 인근 도시에 작은 건물을 짓겠다며 건축사를 소개해 달라기에 내 전화번호를 알려 줬다며 작은 건물인데도 설계할 거냐고 되묻는다. “무슨 소리냐”며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건축주를 만났다. 건축주를 만나 이야기를 듣는데 1층부터 5층까지 건물의 용도와 면적까지 스페이스 프로그램을 해 온 사람처럼 건축주 요구 사항을 준비해 왔는데, 이미 그 지역의 건축사사무소 안을 여러 개 받아 본 눈치다. 건설비를 물어보면서 설계비를 같이 물어본다. 친구 입장도 있어서 동네에서 받는 가격대로 받겠다며 서울의 지역에서 받는 일반적인 최소 수준을 이야기하며 헤어졌는데 도면을 볼 수 있느냐 하기에 계약 전에는 도면 작업을 안 한다며 기획서를 만들어 보내 드리겠다, 하고 10페이지짜리 기획서를 보내 주었다. 나중에 연락하겠다더니 몇 달이 지나도 연락이 없기에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1년이 지나서야 다시 연락이 왔다. 우여곡절 끝에 계약을 하였는데, 자기가 알아 본 건축사사무소보다 1,500만 원이나 비싼데도 불구하고 신뢰감 때문에 나에게 왔으니 잘 설계해 달란다. 그 소리를 들으니 정신이 번쩍 든다. 맙소사! 연면적 825제곱미터 짜리 5층 건물 설계·감리비를 친구 입장을 고려하여 최저 수준 가격으로 제안했건만 그런 가격보다 1,500만 원이나 싸게 한다면…. 도저히 계산이 나오지 않는다. 덤핑도 이런 덤핑이 가능한 것인가. 이런 가격으로 만들어진 설계도에 건축사의 고민이 포함되는 것인지, 공정마다의 감리가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원래의 주제로 돌아가서, 건축사협회의 건축사 의무가입 제도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건축사법은 국가·국민을 위한 바탕 아래 건축사의 의무와 권리를 규정…
국가, 국민, 그리고 건축사 모두를 위한 것
어떤 이는 대한건축사협회를 위한 법이라 하고, 어떤 이는 건축사를 위한 법이라 한다. 그러면 여기에서 한 가지 질문을 더 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법은 국회에서 만들며 정부의 의견과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결정하는데 “건축사라는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하여 법을 만들어 줄 수 있을까? 특히 그 건축사들의 모임인 대한건축사협회를 위하여 법을 만들어 줄까?” 라는 질문을 안 할 수가 없다. 그 대답은 “절대 불가”이다. 국회를 통과하여 대통령이 공포한 법률은 우리 국민과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전제가 붙는다. 건축사법이라는 특정 전문인들에 대한 법률일 경우에는 그 법률을 통하여 전문인들에 대한 업무의 범위, 방법, 의무 등에 대한 규정을 정하며, 국가 차원에서 업무와 관련된 경제 질서를 확립하고 국민의 안전과 복지를 확보하며 나아가 국가의 건축산업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는다. 따라서 건축사법은 국가의 건축산업과 국민을 위한다는 바탕 아래 건축사들의 의무와 권리를 규정함으로써 건축사들의 창조력과 업무 활성화를 뒷받침하여 세계 건축문화의 선두그룹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초석과 같은 규정임은 아주 기본적인 상식이다. 건축사 의무가입에 관한 건축사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고 대통령에 의해 공포된다면 역설적으로 이 법은 바로 국가와 국민과 건축사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것을 국회와 정부가 공증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우리나라가 자유시장경제주의 체제라고 하지만 필자의 경험 1)의 경우와 같이 다른 이의 설계 계획안을 그대로 가지고 가서 싼값의 설계비를 원하는 잘못된 국민 의식은 바뀌어야 하고, 동료의 저작권을 무시하고 타 건축사가 고민한 계획안을 그대로 받아 허가 도서를 꾸민 건축사의 윤리의식도 당연히 바뀌어야 한다. 경험 2)와 같은 일명 허가방의 설계 처리 방법들은 그야말로 건축사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는 행태이다. 즉, 건축사의 기본업무인 설계와 공사감리의 본질을 흔들 수 있고, 설계가 가지고 있는 창조와 디자인이라는 개념을 국민들이 잘못 인식할 수 있다. 부실한 도면이 만드는 부실공사는 국민들에게도 피해가 발생해 이를 해소해야 한다. 경험 3)의 경우와 같은 극단의 덤핑 추구는 결국 고객인 국민과 건축사 모두에게 손해를 입히는 대표적인 행태이다. 이렇게 덤핑을 하는 건축사사무소들의 대표적인 모습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 설계도면의 부실이다. 도면의 부실은 공사 부실로 나타나며 건축주와 공사자의 건축분쟁을 유발한다. 공공성을 가진 건축물의 부실은 건축주 본인은 물론이고 국가 경제적으로도 손실이다. 두 번째는 다른 이유의 비용을 추가로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심의, 허가 과정에서 별도의 부정적인 비용이 더 필요하다며 요구하는 경우와 사소한 설계변경의 경우 과다한 금액을 요구하여 불편함을 초래한다. 결국 건축주는 정상적인 비용을 거의 지급하면서 불편한 심정으로 건축사사무소를 바라보게 된다. 이는 전체 건축사사무소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키며, 건축사에 대한 신뢰 대신 불신을 조장하는 큰 문제로 비화될 수 있다.
협회 의무가입과 대한건축사협회의 비전
건축사사무소를 개설하는 모든 건축사들이 의무적으로 건축사협회에 가입하게 되면 필자의 경험과 같은 위의 세 부류의 건축사들도 모두 건축사협회 회원이 된다. 현존하는 유일한 건축사협회인 대한건축사협회는 의무가입 법률이 공포되는 순간부터 협회의 정체성이 변화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시행되던 회원의 친목과 권익 보호라는 협회의 목적은 우리 사회의 공공성과 공익성을 포함시켜야 하는 의무를 지게 된다. 국가와 국민들의 감시와 지적도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 필자의 경험에서 제시된 잘못된 회원들의 행동과 잘못된 국민들의 건축의식도 바로잡아 주어야 한다. 협회의 임원들과 회원들, 직원들도 변화되는 협회에 대한 각오를 새롭게 해야 할 것이며, 정관과 규정 및 직업윤리 개념도 새로운 틀로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모든 정보가 공유되는 4차 산업 세상에서 30∼40년 전의 구시대적인 협회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므로, 세상 사람들이 필요로 하고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며 건축사협회를 생각할 때 정상적인 정책과 행동들로서 흐뭇함과 미소를 느끼게 하는, 국민과 건축사 모두를 위한, 그런 대한건축사협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글. 전영철 Jeon, Youngcheol (사)한국건축정책학회 회장
전영철 (사)한국건축정책학회 회장 열린모임참 건축사사무소 대표
건축사이며, 국토교통부 건축 민원전문위원장과 건축분쟁전문위원장을 역임했다. 현 국토교 통부 중앙건축위원, 중앙지방검찰청 전문수사자문위원으로 활 동 중이다. 저서로는 ‘건축법실무해설집’과 ‘내 건물을 지으려 면’이 있고 작품으로는 성내동 성당, 육군훈련소 성당, 정자꽃 뫼 성당, 삼중건설 사옥, 조세통람사 사옥, 취영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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