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비평] 빌라 드루마을의 마을 2021.9

2023. 2. 9. 09:26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Architecture Criticism
Villa de ru
Village within Village

 

현대빌라는 서리풀공원에서 반포천을 향해 흐르는 완만한 경사에 자리 잡았다. 비록 한 동의 적갈색 건물이었지만 아홉 세대가 함께 사는 ‘작은 마을’이었다. 주민들끼리는 서로를 잘 알았고, 담장 안 정원을 함께 가꿨으며, 폭우로 누전이 될 때면 릴선을 연결해 도왔다. 삼십 년의 시간. 노후화된 건물이 더 이상 물, 소음, 외기로부터 온전히 삶의 공간을 보호하지 못하게 되면서 주민들은 어렵게 새 집을 짓기로 결단했다. 건축사를 초청해 나아가야 할 길을 물었다. 주민들이 각자의 의사결정권을 가진 아홉 명의 건축주이자 하나의 경제공동체가 되는 순간이었다. 

건축사가 풀어야 할 숙제가 있었다. 기존 주민 세대 모두가 신축 건물에서 계속해서 거주하기를 희망했고, 이것은 건축주들이 시행사보다 건축사를 먼저 찾은 이유이기도 했다. 불특정 다수에 분양을 하는 다세대주택과는 다르다는 전제가 주어졌다. 이는 프로젝트에 압박감과 동시에 기회를 부여했다. 건축사는 세대원 모두가 만족하는 안을 내야 하면서도, 그들의 이해와 동의가 있다면 일반적이지 않은 고유한 해법을 실현할 수도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건축사의 인식 깊은 곳에서 ‘건축물’이라는 단어를 ‘마을’로, ‘개별 유닛’을 ‘관계’로 치환하려는 생각이 피어오르게 했다.

건축사는 새로운 마을의 모습으로 지면의 경사와 공중의 정북사선이 만드는 사다리꼴의 단면 바운더리 안에 놓인 세 덩어리의 돌을 제시했다. 기존 빌라보다는 두 개, 주변 필지의 흐름보다는 한 개가 많은 수였고, 기존 서측 도로에 면하던 방향에서 90도 회전한 동서로 긴 매스들이었다. 매스들은 대상지 위에 엇갈리게 놓이면서 구성적 관계를 형성하고 동시에 고유의 특성을 부여받게 된다. 이는 매스들 사이의 외부 공간, 특히 그 깊이에 의해 정의된다. 
남측 매스보다 서쪽 도로변으로 당겨진 북측 매스는 거실면 남측과 안방면 동측으로 깊은 외부 공간과 골목길에 대한 조망을 확보한다. 북측 매스에 거실향을 내주면서 동쪽으로 밀려난 중앙 매스는 서쪽으로 깊은 외부공간을 가지면서 동쪽의 일부분은 대상지 전체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외부공간 한가운데에 노출된다. 상이한 장점을 지닌 세 선택지는 아홉 명 건축주들의 다른 성향을 넓게 아우를 수 있는 제안이었다. 각각의 장점들이 담으로 정의된 경계 속에 놓인 다른 매스와의 관계로부터 도출된다는 점은, 서로 타협하며 어울려 사는 마을의 이미지를 상연하고 있었다.

향(向)을 공평하게 분배하는 배치의 개념은 비슷한 평형대에 살았던 아홉 명의 건축주들이 실거주할 집을 설계한다는 것에 기인했다. 예컨대, 건축사는 한 세대는 남향을, 다른 세대는 동향을 갖는 식의 불평등한 상황은 프로젝트의 성격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배치에 대한 건축주들의 만족과 신뢰는 그에 수반되는 낯선 형식의 평면을 수용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배치 형식에 따라 모든 매스는 자연스럽게 동서로 긴 장방형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주거 평면의 주인공 격인 거실/다이닝과 안방, 두 요소가 분리되어 존재하는 평면 형식을 내재했다. 장방형에서 가장 외기에 많이 면한 양단에 두 공간을 평형추처럼 놓고 그 사이를 잇는 복도를 중심으로 화장실, 방, 현관 등이 배치하는 형식이다. 

이러한 낯선 결별은 두 실 모두에 어느 것에도 종속적이지 않은 독립성을 부여했고, 양손에 서로 다른 풍경과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빛을 담게 하면서 각 세대에 다채로움의 균형을 선사했다. 세 매스들은 마을의 질서를 공통적으로 따르면서도, 배치와 코어에 따라 수납이 좋은 집, 화장실이 넓은 집 등과 같이 다른 타입의 평면을 가지며 서로 구별되었다. 건축주들은 각 평면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스스로를 투영해보고, 자신을 위한 혹은 이웃을 위한 것이 될지도 모를 개선 의견들을 건축사에게 전달했다.

 

<빌라 드루> 전경 ⓒ 최진보

 

세 개의 돌은 부드러운 경사 지형상 각 지점에 묵직하게 안착하며 상이한 층위들의 구성을 만든다. 이에 따라 각 세대의 바닥 레벨은 모든 단면 상에서 수평적으로 엇갈려 시선의 간섭을 피하게 되었다. 평면적으로는 프라이버시를 위해 각 매스의 창들이 서로 교차하지 않도록 계획되었고, 이는 돌의 물성이 입혀진 입면 상에 유리와 철재로 구성된 수직적 오프닝의 리듬으로 나타났다. 돌과 유리, 두 물성의 수직 요소들은 낮과 밤에 따라 서로 교대하면서 마을의 밖과 안을 드러냈다. 건축사는 간혹 수직선을 약간씩 이동하고, 그 변경선에 수평 요소로 먹줄을 쳐 각 매스를 두세 개의 덩어리로 분할하였다. 수직 요소의 말단부는 얇은 금속 지붕을 채석장의 절단기 삼아 비스듬하게 절단하는 방법을 택했다. 

이렇게 구성된 화이트 스톤의 덩어리들은 서쪽 빛을 빗겨 반사하고 빗물을 머금기도 하면서 보는 각도와 시간, 날씨에 기민하게 반응하며 백색과 황색 사이에서 그 톤을 달리했다. 밝은 군집의 이미지가 빛을 흡수하던 기존 빌라와 다른 새로운 비전을 건축주들에게 제시했다면, 층위를 달리하는 외부 공간과 나지막한 계단들은 앞으로도 유지될 땅과의 익숙한 관계로 받아들여졌다. 세 개의 개인 정원과 한 개의 공동 정원을 구성하는 판들 사이에 심어진 수목들은 적절히 빛과 시선을 차폐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풍경을 완성했다.

빌라 드루가 완성되어 가는 과정에서 아홉 명의 건축주들은 단톡방을 만들고 전체 배치부터 가구 마감에 대한 사소한 사항까지 모든 결정을 협의를 통해 진행하고자 했다. 아홉의 숫자가 다수결에 따른 의사 결정을 보장함에도 그들은 설득과 양보, 타협을 통해 결국 모두가 수긍하는 이상적인 방향을 택하며 프로젝트를 진행해 갔다. 건축사는 프로젝트의 시작부터 끝까지 오랜 시간에 걸쳐 이 과정에 참여해 적극적으로 서로의 입장과 관계를 조율했다. 물론 건축사의 프로젝트에 대한 욕망 또한 협의의 열 번째 목소리로 받아들여졌다. 이러한 과정의 결과물로서 빌라 드루는 결국 ‘구축된 관계’라고 볼 수 있다. 1980년대 중반 다세대주택의 등장 이후 삼십 년이 지난 지금, 마주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물리적 표면보다 그 이면에 존재하는 과정과 고민에 더 관심이 가는 이유이다. 요구되는 패러다임이 변화한 현재의 도시에서 노후화된 다세대주택의 중규모 필지들은 새로운 사람 사이의 관계와 공동체 풍경의 가능성들을 다시, 비로소, 담아낼 수 있지 않을까.

 

 

 

 

글. 강현석 Kang, hyunseok SGHS 공동대표(SIA)

 

강현석 SGHS 공동대표(SIA)

내러티브와 텍토닉에 중점을 두고 있는 SGHS 대표다. 일민미 술관 <그래픽 디자인 2005~2015(서울, 2016)>, 국립현대 미술관 과천관 30년 특별전 <상상의 항해(서울, 2016)>, < 제16회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에 작가로 참여 하였고, 2019년 <투발루 프로젝트(WWW.TVPR.TV)>를 출 판했다. 현재 스위스건축가협회(SIA, The Swiss Society of Engineers and Architects)의 회원이며, 성균관대학교 건 축학과에서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sacrolag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