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 17. 09:18ㆍ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Architecture Criticism
Cafe Trigo - Invitation to an Abstract and Romantic Corporeal Experience
I. 건축사 안민
건축사 안민은 중견 건축사인 동시에 신진 건축사이다. 그는 학부 졸업 후 대규모 설계회사에서 근무했다. 그 후 주변 사람들과 어울려 회사를 차려 독립하였고, 건축사를 취득한 후 홀로 자기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하는 것은 이번 봉평의 ‘카페 트리고’가 처음이다.
II. 카페 트리고의 터
‘카페 트리고’는 막 조성되기 시작한 봉평 문화마을 운동의 하나로 들어섰다. 자연히 건축사 안민은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소재가 건물에 투영되기를 간절히 원하였다. 새로이 건축될 카페 건물에 관한 논의 중, 건물주가 그 이름을 ‘카페 트리고(Cafe Trigo)’라고 붙일 것이며, 그 연원은 스페인, 포르투갈 등 라틴어권에서 메밀을 부르는 명칭이 trigo라는 것, 그리고 그것은 삼각 형태 때문에 붙여진 것임을 언급함으로써, 건축사 안민은 주저 없이 삼각형 건물을 제안하였다고 한다.
대지는 이효석의 생가로부터 1.4킬로미터, 이효석 문학관으로부터는 약 600미터 떨어진 3개의 전답을 합하여 조성한, 완전히 새로운 곳이다. 이효석 생가로부터, 그리고 강을 가로지르는 남안교로부터의 진입은 너무 직접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장애물 등으로 인한 어려움도 없이 수월하다. 마을은 전답과 전형적인 농가 가옥 몇 채, 새로이 들어선 문화시설이나, 상업시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동편 100여 미터 거리엔 남안동천이 흐르고, 멀리는 오대산, 방태산, 가리왕산, 태기산 등 해발 1,000미터를 넘나드는 봉우리들이 사방을 에워싸고 있어 ‘트리고’에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적인 표적이 되기도 한다. 대지는 낮은 경사지 위에 위치하여 마을을 비롯한 주변을 조망할 수 있는 조건이 양호한 편이나, 가까운 곳은 건축적 장치로써 가리고 열어 강조하는 등의 연출이 바람직해 보인다.
III. 카페 트리고
건물주와 건축사 안민은 ‘카페 트리고’가 이효석 문화마을에 융해되어 하나가 되도록 조성하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그런 의도와 노력의 결과, ‘트리고’는 주변의 문화시설이나 주거지 등 대지와 그 주변이 지니고 있는 문화성과 역사성에 거르지 않고 잘 순응하고 있다. 그러나 형태적으로는 대비에 가까울 만큼 매우 두드러져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 리차드 마이어의 백색 주택이 나무가 무성한 숲을 배경으로 서 있다든지, 추상형태 속에 압축된 공간을 지닌 마리오 보타의 주거 건물이 루가노 호수와 숲에 완벽한 대조를 보여준다든지 하는 예는, 형태적으로는 맥락을 벗어나나 자율성과 가소적 아름다움이 한층 더 돋보이도록 하기 위해 고려해 볼 만한 예이다.
명확한 기하학의 형태 가운데서도 가장 기본적인 삼각형 평면을 하고 있는 ‘트리고’의 실루엣은 주변 건물들의 유기적 형태에 도전적으로 강하게 어필하고 있다. 게다가 붉은색에 가까운 벽돌 타일 마감은 완벽한 서양식 모더니즘의 어휘를 한층 더 강조하고 있다. 개구부는 선형의 띠창이 주를 이루어 벽체가 조성하는 사각형의 평면성을 해치지 않고 있는데, 내부에서 볼 때 이 띠창들은 이론적으로는 내·외부를 향한 고도의 시각조절 장치처럼 보인다. 그러나 ‘트리고’가 면전에 직접 접하고 있는 환경은 그리 녹록지 않아 부분적 연출만이 성공하고 있어 아쉬운 느낌이 든다. 정밀하게 조정되는 시야, 정제되고 철학적이며 미학적인 창으로서의 연출, 그로 인한 빛과 색채 등의 감동은 이미 근현대 건축에서 익히 추구되었음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특히 우리나라에서 느껴지는 기존 건조환경의 압박은 강력한 장애물이 되곤 하는데, ‘트리고’도 예외는 아니다. 게다가, 아마도 건축과 조경과의 연계는 별로 고려되지 않은 듯하다. 공들여 디자인된 정원과 부속물, 디자인 어휘는 개성이 강하여 따로 노는 느낌이다. 그 귀한 창으로 보이는 외부 풍경에 어지러운 장면이 앞을 막아선다면 차단, 조절, 배제, 포함, 강조 등 경우별 조치가 필요할 것이다. 예를 들어 주차장과 ‘트리고’ 사이의 식종은 나무의 키나 잎의 밀도, 거리 등을 적절히 고려하여 선택되었어야 했을 것이다. 외부에서의 조건도 마찬가지다. 나무가 심히 건물을 가려 형태 지각에 손실을 안겨준다든지, 나무가 조성하는 빈 공간 등으로 오히려 전체적인 시각적, 환경적 효과가 감소할 것인지, 고양시킬지에 관한 건축사와의 상호 논의가 잘 느껴지지 않아 아쉽다.
삼면의 벽체는 거의 동일한 형태를 지니나 지붕선의 경사도, 각 파사드의 개구부 등으로써 각각 변별된다. 삼면이 모두 다르게 지각되는 시각적 변별성은 주로 기능성에 의해 정해진다. ‘트리고’의 입구는 외부로부터의 접근성, 그리고 주로 내부 공간의 배치에 의해 결정되었고, 주 파사드의 상징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개구부 면적이 많은 벽체의 이면에는 매장 고객이 앉아 즐기며 쉬도록 외부로의 조망성이 극대화되어 있다. 반면 개구부가 거의 없어 평평한 벽체 이면에는 주로 대화나 간단한 작업 등이 가능한 공간으로 테이블과 의자 등 가구가 제대로 세팅되어 있다.
입구를 지나 내부로 진입하면, 면적률로 보자면 개구부의 비율이 그리 높은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천장고와 삼각형 천창, 밝은 색으로 마감된 벽체와 천장으로 인해 밝고 환하며 널찍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상당히 유쾌하며 우아하고 고급진 느낌을 받을 수 있고, 막힌 한 쪽 벽 등으로 적절한 폐쇄성도 감지된다. 그러나 대다수 방문객으로부터 큰 주목을 끄는 삼각형 천창은, 건축인의 한 사람으로 더 큰 상상을 하게도 만든다. 만약 벽체 등을 막아 폐쇄성을 강화함으로써 천창이 유일의 광원이 되고 조석의 시간차에 따라 광선의 궤적과 광도가 특성이 되는 공간을 설정했다면 로마의 판테온이나 계몽주의 시대의 공상적 아키텍트 불레의 장제신전(Cénotaphe 葬祭神殿), 르 꼬르뷔지에의 빛의 연출에 견줄 수 있는 기본 발판은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 그리고 어둠이 깔리면 빛이 천창을 통해 외부로 역류, 발사되어 등대처럼 외부로 비추게 된다면 어떨까? 하지만 이미 후자의 경우는 마련되어 있고 작용하고 있다. 단지 필자의 시각으로는 강렬한 공간의 연출, 공간성의 강조, 빛의 육화(肉化)에 관한 내·외부의 일치가 좀 아쉽다는 예를 들었을 뿐이다. 모든 것은 건물주와 건축사의 선택과 판단에 달려있다. 어느 관계 중 하나라도 일치하지 않는다면 중간에서의 타협점을 찾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외부에 드러나는 삼각형의 형상은 단순 2차원적 기하학 형상이 아닌, 가소성(可塑性 plasticity)이 아주 강한 3차원의 입체이다. ‘트리고’의 실루엣은 벽체들이 60도 예각의 만남으로써 조성되는, 칼날같이 단순 명쾌한 실루엣을 이루고 있으며, 예리하고 명확한 실루엣으로 인하여 입체적 가소성은 매우 강하게 감지된다. 아마도 건축사 안민이 선택한 평면은 이러한 미학이 전제된, 형태적 중요성을 중시한 시도로 보인다. 군더더기 없는 순수한 기하학 형태, 그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이고 안정된 구조의 상징인 삼각형 건물은 이론적으로나 실질적으로 아주 강렬한 시각적 오브제로 작용하고 있다. ‘트리고’는 삼각형 하나로 경계가 한정되고 압축된 단순공간으로 비치지만, 동선과 시각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면 그와는 반대로 숨겨진 시나리오가 연속적으로 펼쳐져 드러나기도 한다. 입구, 주방, 방문자 공간, 계단, 옥상으로의 연속적 연계는 각 지점마다 독립적이고 고유한 공간성과 시·지각의 연출이 숨어있다. 공간의 연출은 시간성, 시·지각, 후각 등 감각과 연관되어 육체와 정신이 함께, 또는 동시에 작동한다. 낭만의 감성은 이지적 요소의 인도에 의해서도 작용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안민 건축사의 ‘트리고’는 매우 감각적이며 원시적 추상의 건물이다. 낭만과 즐거움이 기본이며, 현대 건축의 철학과 근본 미학 개념인 시원의 추상적 형태와 원초적인 신체적 감각의 만족, 지각과 지성의 만족이 동시에 펼쳐지고 있다.
글. 김미상 Kim, misang 비평가
김미상 비평가
한양대학교 건축과에서 건축을 수학(학사·석사)하고, 벨기에의 루벵 카톨릭대학교(l’Université catholique de Louvain)에서 예술사학을 전공(석사, 박사)하였다. 한양대학교 건축대학원, 건축과 교수(서양 건축사, 건축이론) 및 단우 도시·건축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건축, 미술, 무용 분야의 이론·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아티클 | Article > 칼럼 | Column'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한건축학회의 ‘건축’ 2022년 3월호‘향리정기(鄕里亭記): 백 년 전 지은 어느 마을 정자 이야기’를 읽고 (0) | 2023.02.18 |
---|---|
“의무가입 건축사법 개정·공포 2월 3일 ‘건축사의 날’로 선포” 대한건축사협회 의무가입 건축사법 개정·공포 1주년 기념식 화보 2023.2 (0) | 2023.02.17 |
[건축비평] 열정(Passion) 가득한 놀이터(Play ground), 피네이션(P NATION) 사옥 2023.2 (0) | 2023.02.16 |
한국의 삼굿구이와 칠레의 쿠란토 엔 오요 2023.2 (0) | 2023.02.16 |
영등포 건축문화유산, 대신맨숀 2023.2 (0) | 2023.0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