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환경을 만들고 미래를 창조하다 ①인간성 복원의 공동체 공간이 경쟁력이다 2023.5

2023. 5. 16. 17:24아티클 | Article/연재 | Series

Creating architecture, environment, and the future ① Community space for restoring humanity is competitiveness

 

 

 

인간적 도시? 도시환경을 만드는 건축의 가치


기독교 성경에 의하면 바벨탑 이전에는 모두가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는 통일된 사회였다. 이후 신에게 도달하려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징벌로 바벨탑이 해체되면서 언어가 달라지고 각기 흩어져 살게 되었다고 한다. 각기 다른 대륙에 다른 민족으로 분화되면서 이질적 존재가 되었다. 서로 존재도 몰랐다가, 돈에 대한 욕망과 문명의 발달로 서로를 정복하면서 만나게 되었다. 절정은 식민제국의 확대였고, 욕망은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발명과 혁신을 통해 가속화되었다. 이른바 산업혁명이 만들어낸 힘이다. 

 

<사진 1> 기능으로 분화된 도시는 생산성과 효율성이 높지만, 개인의 시간은 상당히 빼앗고 있는 구조다.


지난 200년간 인간은 그 어느 때보다 급진적인 변화에 적응하게 되었고, 스스로에 대한 부정과 극복을 통해 전혀 다른 환경을 만들어냈다. <사진 1>
도시는 이 과정에서 재정의되고, 확산되며, 성장했다. 당연히 그 퍼즐을 짜 맞추는 단위들은 건축의 개념이었다. 건축은 새롭게 재정의되고 만들어지면서 사회 변화와 동행했다. 교육시스템이 나오자 학교가 변화했고, 사법제도가 요구되자 법원 건물이 탄생했다. 산업혁명은 공장이라는 건축을 만들고, 분업사회구조는 도시를 주거지와 공업지로 구분하게 되었다. 새롭게 탄생한 건축도 있지만 이전의 건축이 새롭게 가공된 경우도 많다. 교회가 법원건축의 원형이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종교나 철학, 인문적 가치가 용도를 바꾸기도 한다.

튀르키예의 유명한 성 소피아 성당은 거대한 구조물로 볼 수 있는 건축이지만, 초기 그리스도교의 교회에서 이슬람의 사원으로 전환되면서 남았다. 유럽의 교회들은 시대가 변하면서 교회의 원형 그대로인 채 카페가 되고, 주택이 되고, 상점이 되었다. 건축은 사람과 사회와 상호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흐름에 도태된 건축은 소멸되고, 새롭게 건설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새삼 살펴봐야 하는 것이 있다. 아무리 초고도 생산성의 시대라 한들, 사회의 중심에는 인간이 존재한다. 아둔한 인간이 스스로의 가치와 목적을 상실해 서로가 죽고 죽이는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여전히 역사는 인간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건축은 인간을 에워싸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존재한다. 이런 이유로 건축에서 인간이 배제될 수 없고, 또 인간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인간을 중심으로 건축을 볼 필요가 있고, 건축은 인간을 위한 고민의 산물이어야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건축은 환경을 만들고 지속 가능한 미래에 존재할 수 있다. 자! 그렇다면, 인간을 중심으로 공간, 건축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시 말하면 인간을 위한 건축, 인간적 도시 공간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새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인간적 공간’. 도시는 사람들이 살고 일하며 서로 교류하는 대규모 정착지다. 높은 인구 밀도, 인프라와 건물의 복잡한 네트워크, 사회, 문화, 경제 활동의 다양한 혼합이 특징이다. 도시는 수천 년 동안 필수적인 공간이었으며, 인류 역사의 과정을 형성하는 데 계속해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도시는 혁신, 창의성과 진보의 중심지이며 사람들이 서로 연결하고 아이디어를 교환하면서 새로운 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산업혁명 이후 가속화된 도시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모으는 밀도의 공간이 되고 있다. 지나친 집중으로 자연스럽게 도시화, 인프라 및 지속 가능성과 관련된 문제가 발생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지속 가능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반복해서 말하면, 인간적인 도시란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도시가 계획되고 운영되는 것이다. 이는 도시가 단순히 건물과 도로의 집합체가 아니라, 사람 중심적인 가치를 고려하여 조성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인간적인 도시를 만드는 것은 다양한 측면에서 중요하다. 예를 들어, 도시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생활하므로, 인간적인 도시는 사람들이 서로 교류하고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또한, 건강하고 안락한 환경을 제공해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도시는 복잡한 문제들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공간이기에, 인간적인 도시는 위험요소를 최소화하면서 안전성을 보장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접근해 인간적인 도시를 만드는 것은 도시의 건강한 발전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도시계획과 건축, 교통, 환경,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간 중심적인 접근과 창의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20세기 기능, 효율성, 생산성 중심의 도시 만들기와 인간적 도시 만들기의 차이점과 공통점은 무엇인가? 기능, 효율성, 생산성 중심의 도시 만들기는 구체적인 목표나 결과를 우선시하는 도시 계획의 접근 방식이며, 인간적 도시는 거주자의 웰빙과 삶의 질을 우선시하는 도시 계획 방식이다.

 

<사진 2> 경제적 이익과 공급의 개념으로 바라본 건축으로 구성된 도시는 아름다운가?


기능 중심의 도시 만들기는 상업, 교통 또는 주택과 같은 특정 목적을 위해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기능하는 도시를 만드는 데 중점이 있다. 효율성 중심의 도시 만들기는 교통 혼잡 감소 또는 에너지 효율성 향상과 같은 특정 결과를 달성하기 위해 자원 또는 인프라의 효율적인 사용을 우선시한다. 생산성 중심의 도시 만들기는 경제적 생산성과 성장의 극대화에 초점을 맞춘다. <사진 2> 이러한 접근 방식은 우선순위가 다를 수 있지만 몇 가지 공통점을 갖는다. 그들 모두는 특정 결과를 달성하기 위해 자원과 기반 시설의 효과적인 사용을 우선시하고 주민의 요구를 충족하는 기능적이고 효과적인 도시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기능적이고 효율적이며 생산적인 것만 목표가 되진 않는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정서적 특성 또한 중요하게 요구된다. 즉, 사회적 형평성, 문화적 다양성 또는 환경적 지속 가능성과 같은 요소를 고려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충족하는 것을 ‘인간적’ 도시라고 말하고 싶다.

 

<사진 3> 뉴욕의 도로 옆 포켓공원은 기능과 경제적 이익 중심의 경쟁시장주의 도시에서 숨 쉴 수 있는 낭만적 공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낭만이 뉴욕의 경쟁력을 회복한다.


인간적 도시는 커뮤니티, 연결 또는 창의성을 육성하고 거주자의 신체적, 정신적, 정서적 건강을 지원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요컨대 기능, 효율성, 생산성 중심의 도시가 특정한 목표에 집중한다면 인간적 도시는 주민의 웰빙과 삶의 질을 우선시하는 총체적 접근 방식을 취한다. 흥미롭게도 이런 내용들은 감성적이고 낭만적 특성이 있다. 그리고 효율성과 생산성 중심이 아닌 다른 요소들이 들어가는 것이다. 도시 구성에 있어서 단위에 대한 섬세함과 세밀함이 요구된다. 이익 중심의 초 자본주의적 상황에서 아이러니하게 이런 감성적 요소들이 필요하다는 점이 특이하긴 하다. 자본주의의 첨단 도시인 뉴욕에 있는 자투리 포켓 공원들을 보면 감성적 요인들이 왜 필요한지 바로 알 수 있다. 어쩌면 감성적 요소들이 새로운 이익을 만들어낼지도 모르고 그렇게 되면 인간적 도시 만들기가 동력을 얻어 가속화할지 모르겠다. <사진 3>

이 과정에서 주목할 부분은, 도시의 세부적 완성도를 높이는 것의 핵심 단위들이 건축이라는 점이다. 단지 영역별, 기능별로 두부모처럼 잘린 법적 대지를 채우는 역할을 넘어서서 감성을 자극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건축이다. 법규에서 정한, 경제성에 충실한 체적채로서의 건축은 인간적 가치를 담아내지 못한다. 건축 하나하나에 어떤 가치와 생명력을 불어 넣느냐에 따라 도시의 성격과 환경이 바뀌어 버린다. 수많은 사례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특히 사회 변화에 잘 대응하는 카멜레온처럼 유기적 전환이 가능한 경우가 그렇다. 지나치게 엄격하고, 정의가 내려진 경우는 오히려 경직되어 사회가 변화할 때 지속 가능성이 사라져 버린다. 이런 흔적들은 여러 건축사들과 이론가들, 도시계획가들의 성과물에서 발견할 수 있다.


20세기 초중반 경직된 도시의 예상하지 못한 틈에서 인간적 도시가 어떻게 가능하고 만들어지는지 주목한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의 관찰이 대표적이다. 건축사(아키텍트)는 아니었고 전공자는 더더욱 아니었지만, 도시가 인간의 상호작용과 사회적 다양성을 촉진하는 것이 어떤 가치를 갖는지 설명했다. 그 과정에서 이웃, 즉 사회적 관계가 공간에서 어떻게 형성될 수 있는지 주목하고 강조했다. 제인 제이콥스의 이런 시각에 상당수 공감하고 동의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윌리엄 화이트(William Whyte)라는 도시 학자는 보행자 행동에 주목해 공공 공간의 도시에서 역할을 강조하고, 디자인 방향을 제시하게 되었다. 이들의 주장을 잘 살펴보면 만지고 체험할 수 있는 스케일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이 스케일은 건축의 스케일로 구성된다.

최근 호주 시드니와 여러 도시들에 직접 개입해서 증명하고 있는 덴마크의 얀 겔(Jan Gehl)의 성과 또한 흥미롭다. 보행자 친화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도시 환경을 강조하는 그의 이론을 보면 건축적 구성과 다양한 관계, 공공의 외부 공간과 개별 건축의 관계에 대한 정의와 구성을 제안하고 있다. 이런 연구자들, 건축사들의 제안들을 보면 섬세한 구성으로 되어있음을 알 수 있다. 


조금 경직된 서두였지만, 흥미로운 우리의 사례를 생각해 보면 무릎을 치며 공감할 내용들이 있다. 바로 한옥마을의 대명사인 서울 종로구 북촌 일대의 주거 공간과 건축이다. 굳이 한옥이 만들어내는 건축적 환경과 가치, 관광자원적 경제성을 언급하고 싶지 않다. 토지 경제성도 없는 규제가 강한 북촌 일대, 행정구역 상 종로구 계동과 가회동 일대를 바라보면 경제적 개념에서 해석도, 이해도 되지 않는 것을 목격한다. 토지의 생산성과 경제적 가치가 무형의 요인으로 인해 존속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가치가 경제적 실익을 만들어내는 현장인 것이다. 이를 베블런 경제 효과라고 말할 수도 있을 듯하다. 결과야 이렇지만, 경제적 성과를 목표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이 동네의 시작은 솔직히 돈보다는 인문적 가치에 대한 인정에서 비롯되었다.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도시 행정가와 도시계획가, 수많은 연구자들과 건축사, 건축사들의 지난한 노력과 참여로 주민들이 공감하고 이해하면서 특정인의 주도가 아닌 시간과 공감의 통시적 과정에 만들어졌다. 그런데, 과잉 관광 같은 부작용이 있음에도 북촌 일대의 고전형태 마을은 원주민, 즉 지주들에게 재개발 같은 방식이 아니어도 경제적 이익을 제공했다. 덕분에 고밀도 개발이 아닌 방식에도 동의하게 된 것이다.

 

 

<사진 4> 21세기 도시는 기계적인 질서보다는 개인의 감정 개입이 가능한 느슨한 범위로 질서를 요구한다. 감정 공간의 필요가 증대하고 있다. 7-80년대 정비된 미국 산타바바라 다운타운의 풍경


북촌 일대가 여전히 지속 가능한 존속과 성장이 가능한 이유는 동네를 구성하는 하나하나의 건축들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관계, 즉 인간적 스케일의 관계를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그것은 건축의 크기일 수도 있고, 스타일일 수도 있다. 건축의 프로그램이나, 상업적 활용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한옥이라는 건축 형식의 가이드라인을 주었지만 세부적으로 개인들의 다양한 해석을 허용했기에 결과의 의외성이 나타난 점이다. 즉, 느슨한 제한 속에서 개별적인 해석의 창의적 표현과 성과로 북촌의 지속 가능성이 존재할 수 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이 지역은 충분히 인간적이라는 점이다. 바로 이 점이 토지생산성과 가용성도 낮은 동네를 기호공간화 했고, 사람들이 찾게 만들었다. 우리 도시들이 놓쳤던, 여전히 지금도 놓치고 있는 요소들. 대표적으로 만들기에 크지 않은 요인들… 그것은 인간의 속성에서 출발하는 부분들이다. 호기심과 자극, 여유와 일탈, 경험의 가치 등 지극히 감성적인 요구에서 작동한 결과물이다. 사람들은 걸어 다니면서 이런 감성을 경험한다. 걸어 다니는, 즉 보행이라는 기본적 인간의 속성을 유지하면서 다양한 기능과 요구를 수용하고, 공예적 가치의 미학적 표현으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사람의 오감을 끝없이 자극하고 개입의 가능성을 열어두었기 때문이다. 
이런 열린 가능성을 단일한 방향으로 제한하게 되면 북촌의 생명력은 소멸될 수밖에 없다. 천만다행으로 이런 경직된 시도들은 한 번씩 ‘꺾일 수 없는 마음’이 점차 꺾이면서 가능해진 것이다. 1970년대 전통 보존 지역으로 경직된 정책으로 쇠락하고 슬럼화되던 곳은, 규제 개혁으로 이를 해제하자마자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전통성이 파괴되었다. 이를 아쉬워한 민간의 노력으로 ‘전통건축_한옥’이라는 큰 목표를 두고 탄력적으로 구성한 개선된 제도는 특성을 유지하면서도 변화에 적응하는 건축을 만들어냈고, 이런 건축은 시대와 호흡했다. 살아있는 건축으로 도시 환경을 재탄생 시킨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읽을 수 있는 포인트는, 큰 구호는 아니지만 자잘한 감성을 소비하고 즐기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공간의 요소들이 점점 강조되고 있고, 건축은 이를 다양한 공간의 콘텐츠로 창조하고 있다. 이런 건축들이 오늘의 도시를 새롭게 변화시키고 있는 듯하다. 볼만하고 느낄만하고, 그리고 머물고 살고 싶게 만드는 섬세한 콘텐츠가 건축인 것이다. <사진 4>

 

 

 

 

글. 홍성용 Hong, Sungyong 건축사사무소 NCS lab

 

 

홍성용  건축사·건축사사무소 NCS lab

 

홍성용은 건축사(KIRA), 건축공학 박사,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건축의 크로스오버를 오래 전부터 주장했다. 『영화속 건축이야기(1999)』, 건축사가 쓴 최초의 경영서적 『스페이스마케팅(2007)』, 『하트마크(2016)』 등의 저서가 있다. 1998년 부터 다수의 건축 및 인테리어 설계작업 활동 중이다.

ncslab@ncsarchitec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