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6. 21. 17:10ㆍ아티클 | Article/연재 | Series
Architecture built by modernity, history created by the architecture ① On the disappearing Pimat-gil
더는 길이 아니었다. 차와 인파로 분주한 종로와 달리, 그토록 정감 넘치던 골목이 이젠 동굴처럼 변해버렸다. 기억은 물론 햇볕마저 앗겨, 그늘져 어두워진 표정의 피맛길은 분명 슬픔에 흐느끼고 있었다.
이 길 모든 게 이제 마뜩잖다. 십여 년 전부터 생겨난 껄끄러움이다. 빌딩 사잇길인지, 싫은데 마지못해 내어준 공간인지 상량조차 어렵다. 같이 동무하며 지역과 문화, 역사공동체를 이루던 피맛골은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춰버렸다.
도시에서 ‘길과 골’은 다르게 읽어내야 한다. 길은 하나의 통로이자 흐름이며, 도시 골간을 이룬다. 골은 크고 작은 여러 길이 서로 얽히고 이어져 자연스레 만들어진 공간이다. 길이 선이라면 골은 면이라 할 수 있다.
늘 번잡하기만 한 종로 뒷길이다. 신도시 한양을 만들면서 고관대작이 탄 말(馬)을 피(避)하라고 하급 관리에게 권력이 내어준 능동과 융통, 관용이었다. 피맛길이다. 광화문 네거리에서 흥인지문에 이르는 자연스레 만들어진 ‘공간조직’을 그렇게 불렀다. 이 길이 쌓여가는 시간에 따라 새로운 문화를 짓더니, 다른 그것들과 구불구불 서로 잇대어 골을 만들어냈다. 피맛골이다.
길에 고만고만한 집들이 모여 해장국과 빈대떡, 막걸리에 생선구이를 선보이는 서민 전유 공간으로 탈바꿈하였다. 골은 청진동, 공평동, 인사동 일대에서 6백여 년을 넘겨 자리했으니 하나의 문화였고 역사였으며, 시대의 표상으로 자리매김했었다. 노동과 휴식, 주거와 일상 활동을 매개하던 점이지대였다. 하지만 그 유려하던 골의 흔적은 이젠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시늉으로 남겨진 길에선 어떤 기억도 떠올리기 어렵게 되었고, 골이 지워진 자리는 몇 거대한 직육면체 사무용 빌딩이 차지해 버렸다. 무척 낯설고 생경한 풍경이다.
피맛길과 골
도시와 이를 이루는 공간조직은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다. 생성-성장-전성기를 지나 쇠퇴-재생-변형하는 순환적 과정을 밟는다. 따라서 시대 변화에 따라 낡아가고 때론 그 생명을 다하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결국 유기체적 관점에서 공간의 생명력을 담보하는 첩경은, 그곳이 ‘장소 기억’으로 지켜낼 가치를 가졌느냐 여부다. 장소 기억은 과거를 현재에 소생시켜 또 다른 사회적 기억을 생성하고 이를 확대 재생산하는, 즉 한 장소가 갖는 ‘고유 능력’의 다른 의미다. 따라서 장소 기억은 ‘시각과 청각, 후각, 촉각과 미각’이 총동원되어 작동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마치 한 장소에서 잊히지 않는 기억이나 추억이 만들어지는 것 같은 이치다. 이런 오감(五感)이 수백 년 피맛길(골)을 특별한 곳으로 기억하도록 작동해 왔다. 피맛길(골)은 이처럼 장소 기억에 무척 충실한 공간조직이었다.
이를 시대순으로 회상해 보면 생성기엔 ‘능동적인 회피의 길’이었다. 처음엔 하급 관리가, 시간이 지나면서 서민이 고관대작의 말을 피하는 공간이었다. 피맛길(골)이 왕조 5백 년을 지나오면서 자연스레 ‘서민 공간’으로 성장해온 셈이다.
일제 강점기엔 ‘저항의 길’이었고, 상대적인 박탈감을 끌어 안아주던 골이었다. 청계천 이남 일본인 거주지의 눈부신 근대화에 대항해 묵묵히 전통을 지켜내며 살아남았다.
독재 권력의 극심한 횡포에 ‘망각과 회상의 길’로 자리매김했다. 권력의 야만성에 짓눌린 시민들이 이곳에서 쓰리고 아픈 기억을 걸쭉한 막걸리 몇 잔으로 달래거나 지워내곤 했다. 매캐한 최루가스를 피해 찾아들던 굽은 길이었고, 그득한 술잔을 부딪다 연인이 되기도 했던 골이었다.
민주화 이후에는 ‘역사와 현실의 삶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전성기를 구가했다. 전선 줄이 얽히고설킨 오래된 공간과 손때 묻은 노포 낡은 벽에 온갖 사연이 포도알처럼 맺힌 골이었다. 하지만 이젠 깡그리 지워져 사라진 피맛골을, 유기체로서 어디에 자리매김했다 해야 하나?
종로 르네상스
길과 골을 지워낸 주범은 ‘종로 르네상스’다. 르네상스는 본시 인간성 회복이라는 ‘부흥과 재생’ 아니던가? 거대한 직육면체 사무동에서 어떤 인간성을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작은 집들이 차지하던 수백 작은 필지를, 자본과 권력이 거대한 하나의 필지로 강제 병합시켰다. 수백의 개개 필지가 가진 기능이 다 사라져, 하나로 획일화되었다. 수백의 추억과 사연, 문화가 거대 필지 안으로 뭉뚱그려져 사그라들었다. 좁고 굽어 변화무쌍하던 골목의 수백 년 쌓인 역사가 순식간에 휘발해 버렸다. 부흥이 아닌 말살이었고, 재생이 아닌 들어내기였다. 자본과 권력이 결탁해 만들어낸 낯선 풍경은 이제 자꾸만 이 길을 ‘피하고 꺼리게’ 만든다.
청진동 일대가 재개발지구로 지정된 건 1977년이다. 이때부터 수백의 작은 필지를 몇 큰 필지로 병합하려는 ‘전면재개발’이 구상되었다. 그러나 토지소유주는 물론 상인들의 노력으로 한때 자율로 환경을 개선하려는 ‘수복 재개발’로 방향을 바꾼 적도 있었다. 골을 보존하여 장소 기억을 지켜내려는 눈물겨운 ‘싸움이자 버티기’였다. 그러나 ‘디자인 서울’을 외치며 자본과 결탁한 도시 권력은 노골적으로 길과 골을 공격해 들어왔다. 자본과 권력이 외쳐댄 ‘미려한 도시환경’이란 구호는 그들이 자행한 폭력의 다른 이름에 불과했다.
우리 도시 재생 역사는 이처럼 무자비했다.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행한 철거는 전쟁과 방불했다. 곳곳에서 한 골과 생활공동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갔다. 이른바 ‘철거재개발’이란 전가의 보도였다. 토지이용 효율 제고라는 필지 병합의 눈가림이었고, 거대 필지로 얼굴을 바꾼 건폐율과 용적률 착취의 다른 이름이었다. 철수와 영희가 뛰어놀던 길과 골을 밀어버리고, 그 안에 오롯하던 생활공동체 지우기였다. 모든 것을 싹 쓸어버리는, 권력이 자본을 앞세워 단위 공간조직을 흔적도 없이 지워낸 행위에 불과했다. 결국 극한의 건폐율과 용적률 게임을 우린 자랑스럽게 ‘도시 근대화’라 칭하며 자위하기 바빴다. 극한 욕망의 광기였으며, 오래도록 인간 삶이 녹아있는 역사 공간이 얼마나 우수한 자산인가를 망각한 횡포였다.
유럽 역사 도시라면
유럽 역사 도시가 이런 상황에 직면했다면 어찌 대응했을까? 과연 깡그리 지워낼 수 있었을까? 그리스·로마 문명이 뿌리내린 역사 도시를 걷다 보면, 하찮아 보이는 돌멩이도 정해진 고유 자리가 있음을 알게 된다.
베네치아를 보자. 이 도시는 중세 이후 거의 변화가 없었다고 해도 무방한 도시다. 작은 운하를 메워버리고 그 자리에 거대 건축물을 세웠다면, 과연 물의 도시 베네치아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1797년 나폴레옹에 의해 멸망한 베네치아는 도시를 보존하려 오히려 방치에 가까운 도시 정책을 시행한다. 이 도시가 현생은 물론 미래 인류에게 어떤 자산으로 작동하게 될지를 가늠해 본다면 답은 더욱 간명해진다.
운종가는 시전(市廛) 역할과 유교 이념에 충실하게 계획된 신도시 한양의 동-서를 잇는 주간선도로였다. 이때 운종가를 따라 남북으로 피맛길이 생겨난다. 폭 2미터 내외의 좁은 길이었지만 충분히 인간적이었고 거리낌 없는 공간이었다. 광화문 네거리에서 흥인지문에 이르는 구간이다. 운종가 폭은 해방 후까지 약 17미터(영조척(營造尺=30.65cm)으로 55척)였다. 이 길이 한국전쟁 후 확장되어 폭 40미터 도로가 된다. 남쪽으로 편중된 확장이었다. 이로 인해 남측 최초 피맛길은 거의 사라지고 없다.
북측 피맛길인 광화문네거리~탑골공원 구간의 수난도 유별나다. 1901년 한성전기회사 사옥이, 그 옆으로 1907년 종로 기독교 청년회관(YMCA)을, 1931년 화신백화점을 세우면서 종로1가∼2가 피맛길 절반이 사라진다. 지금의 SC제일은행 본점 자리 앞에 가는 선으로 남아있던 흔적은 도로 확장과 직선화에 밀려 교통광장으로 흡수되어 버린다. 종로1가∼2가 피맛길 중 YMCA에서 탑골공원에 이르는 길은 겨우 살아남았으나, 이웃한 골이 재개발로 철거되면서 우스운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종로2가∼3가 구간의 돈화문로는 그나마 뚜렷한 흔적을 보이나, 종묘∼흥인지문 구간은 군데군데 끊기고 변형되었다. 애써 찾아보지 않으면 피맛길인지 그냥 골목인지 구별하기조차 쉽지 않다.
온전하진 않지만 가냘픈 형태로 남아있는 피맛길과 골을 어떤 힘과 기억으로 보존해 나갈 것인가? 자본의 거센 공격에 그저 위태로워 보일 뿐이다. 피맛길이여, 부디 장소 기억으로 온전하게 살아남을 힘을 스스로 갖게 되기를.
글. 이영천 Lee, Yeongcheon 오마이뉴스 기자
이영천 기자 · 오마이뉴스
도시공학 학사(홍익대학교), 도시계획 석사(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계획기술사(1999). 엔지니어링사에서 도시계획 업무를 시작으로 건설사에서 오랜 기간 사회간접자본 투자사업에 종사했다. 자유기고가로 한국도로협회 계간지 <도로교통>에 다리 에세이 연재 중이다. 인터넷 매체 ‘오마이뉴스’에 다리 및 근대건축 관련 에세이를 연재했고, 현재 도시 관련 에세이 연재 중이다. 저서로 『다시, 오래된 다리를 거닐다』와 『근대가 세운 건축, 건축이 만든 역사』가 있다.
shrenrhw@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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