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2. 1. 11:10ㆍ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건축담론
편집국장 주
건축담론을 시작합니다. 매달 다양한 건축계 필진들을 모시고, 우리 건축계가 고민하고 있는 여러 주제들을 논하려고 합니다. 우리 환경은 4차 산업 혁명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뿐만 아니라 초개인화 되는 개인 경제시대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국가적으로는 인구감소와 고령화가 세계 유래가 없이 전개되고, 도시재생이라는 이슈가 일본에 이어 우리나라의 국가 정책 전면에 등장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건축계가 주도적으로 새로운 시선과 방향을 제시해야 할 때입니다.
월간 건축사는 국내 유일의 건축사 발행지로 책임감을 가지고, 건축담론 코너를 시작하려 합니다. 지면특성상 매월 각기 다른 주제로 약 1~2편의 글이 실릴 예정입니다. 너무 무겁지 않게, 하지만 의미는 강하게 나아가겠습니다.
589호 첫 주제는 “건축사에게 지방자치선거란? 그리고 법과 제도란?”입니다.
건축사는 우리 생활에 가장 밀접한 건축법과 소통하는 전문가입니다. 건축은 소유관계를 떠나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줍니다. 그런 만큼 섬세해야 하고, 미래를 준비해야 합니다.
6월은 우리나라 지방자치선거가 있습니다. 지방자치선거는 각 지역의 단체장을 뽑는 것으로 정파를 떠나 생활경제에 밀접한 영향을 주는 것으로 상상력이 풍부하고, 섬세한 리더를 찾아내야 합니다. 건축은 항상 이들의 주요 공약과 실천 대상입니다. 건축사는 당연히 이들과 함께 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건축사들은 이들의 브레인으로 역할을 다 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 결과 엉뚱한 세계 제일의 세금 낭비들이 속속 만들어 졌습니다. 적어도 건축사는 이를 지적할 수 있는 전문가입니다. 그런 만큼 건축사의 풍부한 상상력과 실천력을 활용할 수 있다면 국민 생활에도 보다 풍요로운 환경이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02 정책과 제도, 건축사업무환경, 그리고 석정훈 회장의 협회
Policy and System, Architect's working conditions and KIRA with the president Mr. Seok
6.13 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다. 선거가 국민들에게 중요하게 다가오는 것은 선거를 통해 바뀌어 질 정책과 제도가 국민들의 삶에 매우 큰 영향을 주고 있다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각 지자체 출마자들은 공약이란 형태로 자신이 당선될 경우 펼쳐질 정책과 제도를 홍보할 것이며, 공약은 필요에 따라 현행의 법과 제도가 큰 폭으로 변경될 것을 전제하기도 한다. 기존의 관행과 질서에 대해 변경 폭이 큰 공약은 그 자체로 임팩트가 커서 유권자의 변화에 대한 공감과 선택여부에 따라 출마자의 당락을 좌우하는 절대적 요소가 되곤 한다. 당연히 선거에서 이기고 싶은 출마자들은 유권자의 공감과 지지를 이끌만한 공약을 앞 다투어 제시할 것이며, 공약에 대한 공감과 그에 따른 지지의 크기는 공약의 실현가능성보다 우선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유권자들이 공약의 제안자가 최소한, 공약의 실현을 위한 법과 제도의 변경 등 공약실현을 위한 최선의 노력을 할 것이란 선의를 믿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공약은 출마자가 이루려는 더 나은 세상의 모습에 대한 시선 또는 시각을 반영하는 것이며, 그 시각에 대한 공감여부에 따라 유권자들은 표를 행사한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출마자들의 건축 관련 공약은 과연 얼마나 될까? 각 지역 출마자들의 공약에 인간의 삶에 매우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건축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삶의 질을 높일 건축적 공약이 포함되어 있을까? 그들의 공약에 건축 관련 공약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면, 과연 그들의 눈에 지금의 건축 환경은 개선의 여지가 전혀 없는 완벽한 환경으로 보이는 것일까? 그들은 그들 지역구 주민의 더 나은 삶에 관심이 없는 것일까? 우연히 건축적 가치에 안목이 있는 출마자가 있어 더 나은 건축 환경을 위한 공약이 나온다면 유권자들이 그 공약의 가치를 인정하고 표를 줄 수 있을까? 왜 유권자들은 그들이 매일 매일 생활의 근거가 되는 건축 환경의 개선공약이 나오기를 기대하지 않고 있을까?
5년 전쯤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모토로 한 영국 런던의 친환경 중심의 에코빌드전시회를 방문하였을 때, 행사장의 중간 중간에 있던 토론장과 발표장에서 “우리는 어떤 정당을 지지해야 할까?”하는 주제로 많은 곳에서 토론과 발표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나서 영국의 건축사들이 단지 전문적 지식인의 영역과 굴레에 머물러 있지 않고 정치세력에게 전문가들의 시선에서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해법들을 제시하고 그것의 실제적 적용을 위해 설명하고 설득하고 압박하는 모습을 보며, 적지 않은 충격을 느낀 경험이 있다. 사실 영국 런던은 에코빌드전시회를 방문하기 5~6년 전까지는 출장 또는 여행으로 여러 번 방문한 경험이 있었다. 그때마다 성장이 정체된 선진국 대도시의 무기력한 거리활력만이 느껴지던, 수년 만에 방문했던 같은 그곳에서, 식당과 술집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줄을 서야만 하고, 곳곳에 공사현장이 벌어져 마치 한창 최고의 발전시기를 누리는 활기찬 개발도상국의 중심 도시에 서있는 것 같이 갑자기 변해버린 그 이상한 광경이, 충격적 경험과 대비가 되며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나중에 전해들은 바로는 지구환경의 변화에 대한 이슈가 세상의 큰 이슈중 하나로 부각될 즈음에, 어떤 나라도 피해갈 수 없는 매우 중대한 문제로 판단한 영국정부는 다른 나라보다 앞선 선제적 정책과 대응으로(예를 들면 모든 건물에 대한 에너지 효율등급을 매기고, 저효율 에너지건물에 대해서는 일정기간의 유예기간을 주고 유예기간이 지나면 과태료를 부담시키며, 초기에 고효율 건물로 개축할 경우 보조금을 지급하는 강제적 법규를 시행하는 등) 세계적 이슈를 선점하며 그 분야에 대한 세계적 강자로 자리 매김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 성공적 변화의 동력의 중심엔 건축사를 포함한 건축전문가들의 정책입안자들에 대한 설명과 설득의 노력이 있었고, 다소 힘든 과정을 겪더라도 결국 국가와 국민의 큰 이익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줄만큼 충분히 국민에게 설득하고 홍보하여 정책의 제도화를 이뤄낸 쾌거였다. 그로인한 직접적 효과로 건축경기가 활성화되고, 타 산업과의 관련도가 높은 건축경기의 속성상 국가경제의 전반이 활성화 되는 매우 성공적인 결과를 맺게 되었다. 물론 입법과정에서 부담증가에 대한 시민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겠지만 전문가 집단의 열정과 노력이 영국을 쇠퇴해가는 무기력한 국가에서 변화의 선봉에 서서 웅비를 다시 꿈꿔볼 수 있는 활기찬 국가로 변화시켰다.
우리 건축사들은 작금의 대한민국의 건축사 업무 환경이 1990년대 후반에 일어난 IMF이래로 지속적으로 나빠져 지금은 버티기가 힘들만큼 최악의 상태라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한다. 그러나 건축사의 업무환경을 최악의 상태로 추락하도록 만들어버린 것은 스스로 전문가의 중요한 의무와 역할을 방치하고 내팽개친 우리 건축사와 건축사협회의 책임이 가장 크다는 생각이 5년전 영국을 방문했던 이래로 나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만약에, 얼마 전 시민 대토론 때에야 등장했던 원자력 전문가들이 일찍부터 대한민국 원전 시스템에 대한 안전성과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유망한 산업으로서의 가능성을 국민과 정치집단에 지속적으로 홍보하고 신뢰를 줬어도 대한민국에서 원전의 점차적 완전폐쇄라는 정책이 시행될 수 있었을까? 나는 시민 대토론 방송에서야 처음으로 원전을 반대했던 수많은 국제적 환경운동가들이 지구환경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효과적 수단으로 화석연료의 대안으로 원전을 받아들이며 지지자로 전향한 사례들을 그때 처음 접해 보았다. 원자력 전문가들은 원전폐쇄가 정책적으로 결정된 이후에야 그들의 전문지식으로 확신하게 된 원자력의 안전성과 우리나라에서 원자력이 갖는 의미와 가치, 에너지 수단으로서의 대체할 수 없는 유용성 등을 설명하려 했으나 상황은 버스가 떠난 뒤 손 흔드는 겪이 됐다. 그나마 마지막의 노력덕분에 그들의 우리나라 원전부문의 국제 경쟁력에 대한 호소는 먹혀 수출 길 까지는 막히지 않았으나, 원전이 안전을 이유로 폐쇄되는 국가에서 적게는 수조원에서 유지관리까지 수백조원까지 확대될 수 있는 원전수출을 장려한다는 정책은 그야말로 코미디같은 정책이다. 곧 없어질 자동차회사의 자동차를 구입할 소비자가 있을 수 없는 것처럼, 원전을 완전 폐쇄할 예정의 국가로부터 최소 수십년간 운영해야할 원전을 수입할 나라는 없다고 확신한다. 원자력 전문가들이 가장 피하고 싶은 정책이 실행되도록 방치한 책임은 원자력 전문가들에게 있다. 수년 내에 밥줄이 끊길 원자력 전문가집단은 결국 그들의 전문가로서의 책임방기로 인해 그들과 원자력종사자, 그리고 원자력으로 꿈을 펼쳐보겠다며 청춘을 불사르고 있는 학생들의 운명과 더불어 원전산업을 통한 대한민국의 웅비의 기회마저도 나락으로 빠뜨린 대역죄를 범한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는 이제까지의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한 엄청난 속도의 변화의 물결을 목도하고 있다. 생존을 위협할 정도로 늘어난 자연재해와 기후와 환경의 변화, 인구구조의 변화와 그에 따른 사회문제의 변화, 빈부격차의 심화, 잦아진 국가 간 교류와 인구이동에 의한 변화, 엄청난 속도의 기술과 과학의 발달 및 그로인한 경제시스템의 변화, 기타 등등 한 페이지를 할애하고도 모자랄 만큼의 변화들이 지금의 세상에서 전 지구적 차원으로 그 속도와 크기를 정확히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벌어지고 있다. 변화하는 세상에서는 힘센 놈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변화의 방향을 제대로 직시하고 그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한 놈만이 살아남는다고 한다. 변화의 시기에 사회에서의 전문가의 역할은 자기분야와 관련된 변화를 먼저 감지하고 변화에 효과적이고 적절하게 대응할 방법을 찾아 국민과 정책입안자에 알리고 힘을 모아 올바른 방향으로 사회를 이끌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산업혁명이 일어나 세계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고 있을 당시, 우리나라는 세상의 변화를 감지하고 메이지유신을 통해 국가시스템을 개조하고 힘을 키운 일본에 의해 참탈 당하고 식민지가 되어버렸던 치욕의 역사를 갖고 있다. 불과 수십년 동안 일어난 세상의 변화에 대한 대응의 차이는 세계적 경제·군사 대국의 위상을 가진 국가와 노예국가라는 엄청난 결과의 차이를 가져왔었고, 그 결과를 온몸으로 체험한 우리가 선조들의 실수를 또다시 되풀이할 수는 없다.
나는 석정훈 회장님을 5년전 영국에 다녀온 이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에 처음 알게 되었다. 그 전에는 학연, 지연을 포함한 어떠한 인연도 없었던 분이었으나, 몇 번의 만남의 과정에서 석정훈 회장님의 건축사 업무환경, 협회의 역할 등을 포함한 건축계 전반환경에 대한 변화의 필요성과 그 변화를 이뤄내야 할 우리시대 건축사로서의 사명감에 대한 회장님의 인식과 신념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고, 석회장님이 서울 회장 출마하실 때부터 도와드리며 단순한 조력자를 넘어 동지적 관계를 맺어왔다. 석회장님을 도와드리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개최 1년전 쯤 만해도 반드시 실패할 것만 같았던 UIA세계건축사대회를, 개인적으로는 매우 큰 리스크임에도 불구하고, 공동위원장을 맡으시며 성공시킨 것이었다. 개최 1년전 쯤의 상황은 정말 암울하였다. 사협회, 가협회, 학회의 3단체의 공동주최로 유치된 UIA대회의 준비과정은 유치당시의 초심에서 벗어나 각자의 부담은 적게 지고 명분은 크게 얻으려는 각 단체의 이기적 모습들로 서로에 대한 불신과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상황이었으며, 건축사협회의 내부적 상황도 UIA행사가 마치 남의 행사인양 건축사들의 관심은 저조하고, 본협은 성공에 대한 노력보다 실패할 때를 대비한 면피방법을 찾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듯한 모습마저 보이고 있었다. UIA준비과정에 깊게 관여했던 사람으로서 단언하건데, 석정훈 회장님이 십자가를 지고 나서지 않으셨다면, 대회는 결코 성공적으로 마무리 될 수 없었다. 불신이 심화된 타 단체와의 설득과 소통노력, 불안해하는 서울시와 국토부와의 지속적 업무협력과 지원요청, 그리고 우리 건축사의 관심과 참여를 늘리기 위해 입술까지 터져가며 그 많은 지방건축사회의 모임을 직접 찾아다니며 관심과 참여의 지원을 호소하고 다니셨던 모습은 지금도 뇌리에 생생히 박혀있다. UIA행사를 건축사가 주도적으로 참여해 성공을 이뤄내면서, 우리 건축사들은 대한민국 건축계의 가장 믿을만한 주도세력으로서 인정받는 무형의 큰 자산을 얻어내었다. 밥그릇타령만하는 이익집단으로서가 아닌 전문가집단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이것은 우리가 앞으로 주도해서 만들고 싶은 건축사 업무환경 조성에 큰 자산이 될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바람직한 건축사 업무환경 조성은 결코 공짜로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수준의 정당한 업무대가는 국민과 정책입안자와 정책당국자 모두가 건축사 업무의 중요성과 가치를 인정하고 건축사 업무에 대한 대가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만큼의 충분한 일거리도 결코 공짜로 주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기존의 건축 환경만으로는 결코 지금의 각 분야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수용할 수 없음을 국가와 국민이 깨닫고 변화를 효과적으로 수용할 새로운 건축에 대한 필요성을 강하게 느낄 때서야 충분한 일거리가 제공될 수 있을 것이다.
석정훈 회장의 대한건축사 협회는 위기와 변화와 기회를 직시할 것이다. 우리 건축사들 모두의 힘을 모아, 우리가 당면한 위기의 본질을 파악하고 변화의 흐름과 방향을 직시하여 그 속에 담긴 기회를 활용할 것이다. 석정훈 회장의 대한건축사협회는 원자력전문가들의 실수를 결코 우리분야에서 일어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전문가로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정책을 선도적으로 만들고 국민과 정부를 설득할 기회와 도구를 우리 스스로 만들어 우리의 운명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시스템을 구축할 것이다. 공동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경쟁관계, 혹은 적대적 관계였던 단체를 포함, 건축 관련 단체의 힘을 모두 모아 건축을 경제, 사회, 문화의 가장 중심적인 위치에 놓일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전문가 집단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모습을 먼저 보이며 국민과 정책 입안자들의 신뢰를 반드시 얻어낼 것이다. 그 신뢰를 바탕으로 우리 건축사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순리로 받아들여지게 할 것이다. 대한건축사협회는 반드시 바뀔 것이다. 바로 앞에 벌어진 위기에만 임기응변으로 대응해서는 결코 주도적으로 우리의 운명을 이끌어 갈수 없다는 사명감을 갖고 건설의 시대를 이제는 벗어나 진정한 의미의 건축의 시대를 열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할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이 시대의 건축사가 우리였던 것이 그 무엇보다 큰 행운이었다고 칭송받는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최선을 다할 것이다.
글. 박원근 Park, Wongeun 대한건축사협회 미래전략단장 · 서초건축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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