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미학, 건축과 지구·인간과 환경에 대한 고찰과 모색으로 빛날 수 있어” 2023.10

2023. 10. 31. 12:05아티클 | Article/인터뷰 | Interview

“Architectural aesthetics may shine through the consideration and exploration of architecture, the earth, humanity, and the environment.”

 

 

 

Structures of Landscape (DOMO) - Tippet Rise Art Center. Montana, USA, 2015 / Ensamble Studio © IWAN BAAN

안톤 가르시아 아브릴-소피아 본 에릭사우센-마우리시오 페소 대담
제4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참가로 방한
경기도 양평에 조성 예정 ‘메덩골 정원’ 건축 프로젝트 참여
재료적·건축 법률적 한계 등 제한된 요소 안에서 
아키텍트만의 가치 창출해 내는 것 중요



자연과 건축의 관계를 탐닉해 온 아키텍트 마우리시오 페소(Mauricio Pezo)와 소피아 본 에릭사우센(Sofia bon Ellrichshausen), 그리고 안톤 가르시아 아브릴(Anton Garcia-Abril)이 한국을 찾았다.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참여, 메덩골 정원 내 건축물 진행 상황 확인, 홍익대학교 강연 등 바쁜 일정 속에서도 건축 미학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안톤 가르시아 아브릴(Anton Garcia-Abril), 소피아 본 에릭사우센(Sofia bon Ellrichshausen), 마우리시오 페소(Mauricio Pezo) (좌측부터)


Q. 자연의 섭리를 존중하고, 건축과 지구, 인간과 환경에 대한 고찰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이 같은 관심이 시작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아브릴 건축은 자연 속에 녹아들면서 관계를 형성합니다. 자연이 있기에 건축이 발생하고 발전할 수 있습니다. 건축은 일종의 자연의 선물 같은 것입니다. 이러한 정의가 개인적인 흥미라기보다 아키텍트로서,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인류학적인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는 도시도 자연 속에서 생성되고 만들어진 것인 만큼 또 하나의 자연 현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다시금 우리는 자연 안에서 살아가고, 자연 속에 녹아든 건축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에 건축과 지구, 인간과 환경에 대한 고찰과 탐구는 자연스러운 과정인 것이죠.

페소·본 에릭사우센 저희는 조금 다른 의견입니다. 자연, 환경 자체를 숭배하고 건축과 자연이 동떨어져 있다는 믿음에 다소 회의적입니다. 자연 안에 건축이 있는 게 아니라 건축 자체가 자연이자 환경인 셈인 거죠. 저희가 건축을 두 번째 자연(Second Nature)이라고 말한 것도 이러한 사고의 결과물입니다. 인간과 인간 주변의 재료가 합쳐진 건축물이 곧 인간이자 자연인 하나의 융합체로 보는 편입니다.



Q. 재료에 대한 탐닉과 실험 이어가는 아키텍트이기도 합니다. 창의적인 방식으로 재료의 혁신을 추구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페소·본 에릭사우센 저희는 기존의 재료를 다른 관점으로 활용하는 데 관심이 많습니다. 재료 자체의 본질에 관심을 갖는 달까요. 예를 들어 콘크리트 자체보다도 이를 구성하는 돌과 시멘트를 프로젝트의 특징에 맞게 활용할 수 있을지를 고민합니다. 재료를 활용해 새로운 디자인을 적용해야 할 때는 협력사에 도움을 청하는 쪽입니다.
아브릴 재료보다는 재료가 주는 느낌, 물질성(materiality)에 주목합니다. 어떤 재료를 쓰느냐에 따라서 디자인적 의도를 구현함에 있어 다른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공간에 캐릭터를 부여하는 데 있어 재료의 물질성만큼 중요한 게 없습니다. 어떤 재료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자연과 사용자 간의 연결성을 부여할 수도 있습니다. 이 연결성이란 두 가지 의미를 함축합니다. 첫 번째 의미는 자연 그대로의 형상입니다. 본연의 모습을 재료로 활용해 자연과 사용자 간의 연결성을 추구합니다. 다른 의미로는 경험적인 연결입니다. 재료 본연의 형상과의 조우 자체가 사용자가 전달하는 특별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죠.



Q. “(콘크리트라는 재료를 통해) 영속하지 못할 장소에 영속하는 건물을 만든다”는 말을 하셨습니다. 이러한 건축 미학을 추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페소·본 에릭사우센 2015년 칠레에서 대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영속하지 못할 장소에 영속하는 건물을 만든다’는 미국의 아키텍트 데이비드 레더바로우(David Leatherbarrow)의 말을 인용한 것인데요. 대지진의 참혹한 현장을 목도하고 난 뒤에 공감하게 된 생각입니다. 건축물이 장소에 정체성을 부여함은 물론 사람들에게 물리적, 정신적 안정감을 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시에서는 오래된 빌딩이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랜드마크 같은 역할을 하니까요. 그런 장소성을 부여하는 게 건축의 역할이자, 해나가야 할 역할이라고 봅니다. 콘크리트를 언급한 것은 콘크리트가 칠레라는 해안 국가의 환경에 적합한 재료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콘크리트만이 영속성을 부여하는 유일한 건축 자재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Pezo von Ellrichshausen, RODE house, Chonchi, Chile, 2015-2017 Photography: © Pezo von Ellrichshausen


Q. “야생의 잔인함을 좋아하며, 그것이 건축 미학에 영향을 미친다”는 말을 하셨습니다. 도시에서 야생적(혹은 자연적) 요소를 살릴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아브릴 건축물은 제한된 요소와 싸우는 과정 끝에 완성됩니다. 도심의 밀도, 공간적 한계, 재료적 한계, 건축 법률적 한계 등 많은 요소가 건축 행위를 제한하는 요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한 요소 안에서 아키텍트만의 가치를 창출해 내느냐가 중요합니다. 건축의 가치는 건축물 그 자체일 수도 있지만 건축물에 담긴 공공적 가치나 사회, 문화적 의미로도 확대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건축의 매력이자 의미인 것이죠. ‘야생의 잔인함을 좋아한다’는 의미는 다시 말해 제한적 요소로부터 벗어나 최대한 자연적인 형상과 재료를 도입하려는 저의 지향점이기도 합니다.

 

 

SGAE Headquarters. Santiago de Compostela, Spain, 2007 / Ensamble Studio © Roland Halbe
Ca’n Terra. Menorca, Spain. 2019 / Ensamble Studio © IWAN BAAN
Pezo von Ellrichshausen, POLI house, Coliumo, Chile, 2003-05 Photography: © Pezo von Ellrichshausen
Pezo von Ellrichshausen, INES Innovation Center, Concepcion, Chile, 2009-21Photography: © Pezo von Ellrichshausen


Q. 제4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에 출품한 파빌리온을 소개한다면.

페소·본 에릭사우센 저희가 갖고 있던 주제와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가 겹쳐 흥미롭게 진행한 작품입니다. 비엔날레가 진행된 송현동에 건축물로서의 파빌리온의 역할과 도시적 맥락에서의 순기능을 관람객들이 느껴보기를 바란다는 주제적 측면에 공감했습니다. 출품작 페어 파빌리온(Pair Pavilion)은 땅이라는 자연물이 가진 포용적 특성을 건축으로 담아낸 작품입니다. 심플한 도형과 구조체를 활용해 관객들에게 다양한 해석을 유도했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삼각형 구조물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좁고 긴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서로 모르는 사람들끼리 마주하게 됩니다. 우리는 내가 아닌 타인을, 송현동의 과거와 미래를, 나아가 세계적 변화와 같은 거대담론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무한히 타자의 시선과 마주하고, 스스로 윤리성을 제고해야 하는 존재이지만 복잡한 도시 생활자는 그것을 간과하기 일쑤니까요. 이번 비엔날레를 통해 그것을 상기해 보았으면 합니다.

 

 

마우리시오 페소·소피아 본 에릭사우센의 제4회 서울도시비엔날레 출품작 ‘페어 파빌리온(Pair Pavillon)’ © PRONE
Pezo von Ellrichshausen, INES Innovation Center, Concepcion, Chile, 2009-21 Photography: © Pezo von Ellrichshausen


Q. ‘지구의 건축’이라는 주제로 진행한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개막 포럼 내용을 소개한다면.

아브릴 ‘지구의 건축’은 앙상블 스튜디오가 해온 프로젝트와 연결성이 짙은 주제입니다. 앙상블 프로젝트가 지난 20년간 진행한 모든 프로젝트는 시기와 지리적 위치가 달랐고 주어진 조건도 같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일관되게 건축과 지구의 관계와 인간이 환경에 남기는 흔적 등 이에 대한 기회, 전달을 추구했습니다. 개막 포럼에서는 자연 환경의 잠재력을 활용한 초기작부터 현재의 메덩골 정원 프로젝트를 관통하는 앙상블의 가치를 공유했습니다.

 


Q. 경기도 양평에 조성될 국내 최초의 인문학 예술정원인 ‘메덩골 정원’ 내에 두 분의 건축물이 들어갑니다. 작품 소개와 소감 등을 말씀 부탁드립니다.

페소·본 에릭사우센 비엔날레 출품작을 비롯한 프로젝트 외에도 레스토랑 건축물 등을 진행합니다. 아직은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지만 함께 일하는 메덩골 정원 팀이 새로운 아이디어도 제안하고 창조적인 예술의 중요성을 존중해 즐겁게 작업 중입니다.

아브릴 메덩골 정원은 미적인 면만 추구하지 않고 인문학 정원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앙상블 스튜디오는 방문자 센터(Visitor Center)를 작업하고 있습니다. 정원의 첫인상인 만큼 정원의 지향점을 담아내는 건축물이 되리라 기대합니다.

 

마우리시오 페소(Mauricio Pezo)
소피아 본 에릭하우스(Sofia bon Ellrichshausen)
예술·건축 스튜디오인 ‘페소 본 에릭하우센’의 설립자로, 현재 예일대 객원교수다.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 건축전(2018)에서 심사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페소 교수의 건축물은 미가공 상태의 거친 콘크리트 등의 자연 친화적 소재와 직선을 활용한 미니멀한 구조가 특징이다.
안톤 가르시아 아브릴(Anton Garcia-Abril)
아내이자 동료인 데보라 메사와 함께 건축 스튜디오인 ‘앙상블 스튜디오’를 설립했다. 현재 MIT 교수를 역임하고 있다. 안톤 교수는 자연의 잠재력을 활용하고 최신 기술을 적용하는 등 ‘건축사’의 역할을 확장하고 재정립하고자 하는 시도를 이어오고 있다.

 

 

 

대담

박정연 편집국장

참여

안톤 가르시아 아브릴 Anton Garcia-Abril_ 앙상블스튜디오(Ensamble Studio)

소피아 본 에릭사우센 Sofia bon Ellrichshausen_ 페소 본 에릭하우센(Pezo Von Ellrichshausen)

마우리시오 페소 Mauricio Pezo_ 페소 본 에릭하우센(Pezo Von Ellrichshausen)

조아라 기자

사진

장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