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힘들 때 호~ 해주는 마음약방 그리고 마음편의점! 2025.9

2025. 9. 30. 15:04아티클 | Article/정카피의 광고이야기 | AD Story - Copywriter Jeong

Maeumyakbang(pharmacy) and Maeumpyeonijeom(convenience store) that cheer you up when you’re feeling down!

 

 

 

스무 가지 마음의 증상이 있다. 당장 응급실에 가야 할 중병은 아니다. 어떤 증상은 장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피식 웃으며 하나씩 읽다가 ‘어? 이거 남 얘기만은 아닌데?’ 하고 점점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나에게도 해당하는 증상이 최소한 서너 개 이상 있다. ‘의욕상실증’이나 ‘노화 자각 증상’, ‘습관성 만성피로’ 같은 증세는 매일 느끼기도 한다. 그런 증세를 없애는 특별한 처방이 있다면 당장 찾아가서 받아보고 싶을 지경이다.

 


마음약방 1호점 증상명(20개)
꿈 소멸증, 의욕 상실증, 가족 남남 신드롬, 급성 연애 세포 소멸증, 월요병 말기, 현실 도피증, 인생 낙오 증후군, 유행성 스마트폰 중독, 미래 막막증, 상실 후유증, 습관성 만성 피로, 예민성 경쟁 과다증, 마음 요요 현상, 노화 자각 증상, 긴장 불안 증후군, 자존감 바닥 증후군, 사람 멀미증, 후천성 실어증, 외톨이 바이러스, 분노 조절 장치 실종

서울문화재단_마음약방 1호점과 2호점_2015

이 20개의 마음 증상은 2015년 2월부터 5년 동안 서울시청 지하 활짝 라운지에 설치되었던 ‘마음약방’이라는 자판기에 나열된 것들이다. 자판기에는 20가지 증상에 따른 처방 키트가 구비되어 있어서 동전 500원을 넣고 하나를 고르면 증상에 대한 처방전이 나온다. 어른 손바닥만 한 처방전 상자 안에는 시, 그림, 영화 등의 예술작품 추천 목록이나 테마 지도, 비타민제 등이 들어 있다.
예를 들어 ‘월요병 말기’ 증상의 처방 상자 안에는 이철수 화백의 그림 ‘좋은 날’과 당 떨어진 ‘야그너(야근+er; 야근하는 사람)’의 에너지 충전을 위한 엿, 그리고 서울의 문화예술 명소를 안내한 지도가 들어 있다. ‘미래 막막증’의 처방약은 시장 산책길 지도, 영화 처방, 이철수 화백의 ‘잡초’ 그림 그리고 반창고로 구성되어 있다.

서울문화재단_마음약방 처방전_2015

마음약방 자판기는 시민들의 호응에 힘입어 같은 해 12월 대학로 서울연극센터에 2호점이 설치되었다. 젊은이들이 많이 오가는 대학로의 특성에 맞춘 21가지 증상과 처방전이 제시되었는데, 재치 있는 이름과 처방 상자에 쓰인 설명이 재미있으면서도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마음약방 2호점 증상명과 설명(21개)
꿈 소멸증 _ 꿈이 조금씩 떨어져 흩어지네요. 가슴 한가운데가 텅 빈 것 같아요. 
용기 부전 _ 마음은 굴뚝 같은데 언제나 실천할 용기가 솟아오르지 않네요. 
미래막막증 _ 정말 출구가 있나요? 그렇다면 왜 빛이 보이지 않는 거죠?
작심3ill-ness _ 올해의 계획! 계획한 일을 반드시 끝까지 완성한…
외톨이 바이러스 _ 내버려 두세요. 어차피 난 혼자였어요. 
피터팬 증후군 _ 어른스럽게 인정할게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요. 
월요병 말기 _ 일주일에 하루쯤 덜 살아도 괜찮습니다. 좀 건너뛰고 싶네요!
과민성 멘탈장애 _ 뇌가 충격을 잘 흡수하지 못 하나 봐요. 정신이 쉽게 나가요. 
상실 후유증 _ 왜 시작해야 하죠? 어차피 떠나갈 건데.
열정 페이즈 _ 이거 치명적인 전염병 맞죠? 제 주변엔 다 비슷한 사람들뿐인데. 
상사병 _ 상사의 발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두근두근 뛰어요. 
자존감 바닥 증후군 _ 나를 싫어하지 마세요. 이미 내가 충분히 싫어하고 있으니까.
급여 상실증 _ 아니, 쓴 기억도 없는데 통장잔고가 왜 벌써 바닥난 거죠?
유행성 스마트폰 중독 _ 무인도에 가지고 갈 것 3가지:스마트폰, 배터리, 보조배터리
급성연애세포소멸증 _ 겨우 애인이 생겼는데 왜 자꾸 솔로로 돌아가고 마는 거죠? 
분노조절장치 실종 _ 다 부숴버리고 싶어요. 이유는 묻지 마세요.
아르바이트라우마 _ 올해까지만 하고 꼭 좋은 데 취직해야지. 작년에도 그렇게 결심했었죠.
경력발달장애 _ 이게 뭐죠? 몇 년을 일했는데 왜 모든 게 그대로냐고요!
가족남남 신드롬 _ 우린 같은 지붕 아래 살아요. 그게 끝이고요. 
스펙티쉬 강박증 _ 저 좀 이상해요. 스펙을 쌓는 야릇한 상상을 해야만 흥분이 돼요! 
예민성 경쟁과다증 _ 누군가는 내 뒤에 있어야 해요. 그래야 안심이 되니까.

 

 

서울문화재단이 밝힌 마음약방 운영 결과를 보자. 5년의 운영 기간 동안 1호점인 시청에서 시민 호응도가 가장 높았던 것은 ‘미래 막막증’이었다. ‘유행성 스마트폰 중독’, ‘현실 도피증’, ‘의욕 상실증’, ‘급성 연애 세포 소멸증’ 등이 그 뒤를 이으며 총 7만 4,251개가 판매되었다. 청년 세대 버전인 대학로 2호점에서는 ‘상사병’, ‘열정페이즈’, ‘현실 도피증’ 순서로 선택되었고 총 4만 93개가 팔렸다. 1호점과 2호점의 판매량을 합하면 11만여 명의 시민이 마음약방을 이용한 셈이다. 마음약방 캠페인은 세계 최고 권위의 국제 광고제인 ‘칸 라이언즈 크리에이티비티 페스티벌(Cannes Lions Creativity Festival)’의 라이언즈 헬스(LIONS HEALTH) 의약 부문에서 은상과 동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다.

마음약방은 문을 닫았다. 그렇다고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여러 증상들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특히 외로움이나 우울과 같은 증상은 가볍게 넘기기 어려운 수준으로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인구주택총조사(전수)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1일 기준 한국의 1인 가구 수는 804만 가구로 전체 가구의 36.1%로 나타났다. 세 집 중 한 집은 1인 가구인 셈이다. 1인 가구의 증가에 더해 대도시의 속도와 경쟁은 외로운 사람을 점점 더 많이 만들고 있다. 서울연구원의 2022년 조사에 따르면 서울 1인 가구의 62.1%가 “외롭다”고 대답했고, 사회적 고립은 13.6%에 달했다. 서울시가 파악한 서울의 고립·은둔 청년은 약 13만 명으로 추정된다. 고독사의 절반 이상이 중장년 남성이며,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자살률 평균의 2배가 넘을 정도로 위기 수준이 높다는 진단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서울시는 2024년 10월, 5년간 4,513억 원을 투입하는 ‘외로움 없는 서울(외·없·서)’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WHO가 외로움을 전 세계적 보건 위기로 규정한 흐름에 발맞추어, 서울시 또한 외로움을 공공 보건 문제로 규정하고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 실천의 하나가 올해 3월 관악, 강북, 도봉, 동대문 네 군데 사회복지관에 문을 연 ‘서울마음편의점’이다. 서울마음편의점에 가면 누구나 외로움 자가 진단 체크리스트를 작성한 뒤 무료로 라면이나 햇반, 커피와 차를 마실 수 있다. 안마의자나 반신욕기, 족욕기를 사용할 수 있고 문화 활동, 동호회, 전문가 상담, 각종 소모임에 참여할 수도 있다.
마음편의점엔 운영 시작 한 달 만에 4,483명이 방문했고, 세 달 누적 이용자가 1만 4천여 명을 넘어섰다. 이용자의 3분의 2는 65세 이상 어르신이었지만, 청년·중장년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각 지점은 지역별 특성에 맞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누군가에겐 사회로 나오는 첫 발걸음을, 또 누군가에겐 하루를 버틸 힘을 제공하고 있다.

서울마음편의점 동대문점 모습 © 서울시 홈페이지 뉴스

마음편의점은 자연스럽게 마음 약방을 떠올리게 한다. 마음 약방이 유머러스한 마음 증상 진단명과 문화 처방으로 시민들의 호기심과 미소를 이끌어냈다면, 마음편의점은 ‘정서적 안전망’을 편의점 형식의 일상 서비스로 재설계했다. 전자가 가벼운 처방전으로 공감을 이끌었다면, 후자는 느슨한 연결을 통해 고립감을 줄이는 데 중점을 두었다.
서울 마음편의점은 2027년까지 서울의 25개 모든 자치구에 1개씩으로 확대될 예정이라고 한다. 작은 편의점 한 칸이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의 온도를 바꿀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가까운 곳에 편히 들러 혼자이지만 함께 있음을 느낄 수 있는 문턱 낮은 장소가 있다면 든든한 마음이 들겠다. 천만 명 가까운 서울 사람 가운데 나와 통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느껴질 때는 무인도에 있는 것보다 더한 고독이 찾아온다. 그럴 때 마음편의점에 가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 라면을 나누어 먹으면 위로가 될 것 같다. 나만 혼자 쓸쓸한 건 아니구나, 동병상련에, 막막한 기분이 덜어질 것 같다.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겨울도 멀지 않았다. 독감 예방주사를 맞기 전에 외로움 예방접종을 해야겠다. 문정희 시인의 시집을 사고 김훈 작가의 책도 한 권 사고, 오래 소원했던 친구와 저녁 약속도 해야지. 따뜻한 솥밥을 나누어 먹으며 추위를 감당할 힘을 키워야지. 바다 건너 먼 곳에 사는 친구에게는 긴긴 편지를 써야겠다. 여고생 때처럼 초를 켜고, 일렁이는 촛불빛 때문에 네가 보고 싶다고 써야지….
외로운 줄도 모르고 언제나 바쁜 당신, 다른 이를 돌보느라 스스로를 돌볼 여유가 아직도 없는 당신, 계절이 오가고 낙엽이 물드는 것을 휴대전화 액정에서만 보는 당신- 당신도 나와 함께 외로움 예방주사 한 방 맞지 않을래요?



 

 

글. 정이숙 Jeong, Yisuk 카피라이터

 

 

 

정이숙 카피라이터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카피라이터로 광고와 인연을 맺었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을 시작으로 한화그룹의 한컴, 종근당의 벨컴과 독립 광고대행사인 샴페인과 프랜티브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로 일했다. 지금은 디지털 마케팅 에이전시의 CD로 퍼포먼스 마케팅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응답하라 독수리 다방(2015)』, 『광고, 다시 봄(2019)』, 『똑똑, 성교육동화(2019)』 시리즈 12권, 『김민준의 이너스페이스(2020)』가 있다.

abacab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