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0. 31. 10:20ㆍ아티클 | Article/정카피의 광고이야기 | AD Story - Copywriter Jeong
Questions in October
가끔 나는 나에게 묻는다. 
만약 내가 죽는 날을 미리 알게 된다면 어떨까? 나의 여명이 딱 1년이라면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래도 출근을 하고, 밥상을 차리고, 서울에 살고 있을까? 혹은 내게 남은 수명이 몇 년쯤 되면 아쉽지 않을까…? 나이가 들어 경증의 치매에 걸린 분이나 정신은 온전한데 거동이 불편한 분들의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친구나 선후배들의 부모님 얘기다. 겨우 30여 년 전만 해도 노인 소리를 들을 나이의 자식들이 더 연로한 부모님들을 돌보느라 동분서주하는 모습도 흔하게 본다. 베이비부머들의 돌봄 노동은 자식을 너머 부모에게로 끝없이 이어진다.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병상에 계신 내 엄마를 보며 어떻게 죽을 것인가 해답 없는 질문을 자꾸, 자꾸 한다. 그럼에도 마치 영원을 살 것처럼 하루하루를 흘려보내고 있다. 그런데 이런 넋두리가 무색해지는 일본의 광고를 한 편 보았다. 남은 수명이 1년뿐이라는 선고를 받은 아기가 주인공인 생명보험사의 기업 광고였다.
사진 몇 장과 자막만으로 구성된 광고는 엄마가 쓴 편지 같은 느낌의 자막으로 시작된다. 
1992년 10월 15일, 신으로부터의 선물이 도착했습니다. 
아이의 이름은 아키유키. 태어난 계절의 ‘가을(秋)’과 남편이 좋아하는 ‘눈(雪)’을 합쳐 아키유키(秋雪;あきゆき)라 이름 붙였습니다. 
아이가 태어난 기쁨도 잠시, 겨우 생후 한 달에 부모는 청천벽력과 같은 이야기를 듣는다. 
다운증후군. 합병증 때문에 여명은 1년이라고 했다. 감기에 걸리면 그것으로 끝이라고 했다. 
화면에 움직임은 없다. 오직 정지된 사진과 자막으로 나타낸 부모의 심경만이 화면을 메운다. 움직이지 않는 사진에 점점 자라는 아키유키의 모습, 하루하루의 기적 같은 변화가 또렷하게 담겨있다. 
그럼에도 조금씩 커가는 모습을 보는 기쁨. 무엇을 보아도, 무엇을 하여도 아이는 늘 행복해 보였습니다. 
세 살, 특수학교에 입학한 아키유키는 운동회에서 한 걸음, 한 걸음 결승선을 향해 걸어간다. 그 장면에 간절한 자막이 겹쳐진다. 
삶이란…. 그저 있는 힘껏 살아내는 것. 
마지막 자막은 아키유키를 떠나보낸 뒤에 남은 부모의 마음을 보여준다. 
아키유키와 보낸 6년의 나날들. 너를 만나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을 것들…. 고마워요.

자막의 문장들은 광고의 카피라기보다는 부모의 일기장에 가까워 보인다. 꾸밈없는 단어와 표현이 오히려 더 깊은 울림을 남긴다. 화려한 영상미도, 배우의 연기도 없지만 그 최소한의 장치로, ‘살아 있는 것의 무게’를 시청자의 가슴에 남긴다. 
이 광고는 메이지생명(현 메이지야스다생명)에서 진행한 ‘제1회 「행복한 순간」 사진 콘테스트’에 출품된 작품인 「단 하나의 보물」을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다. 일본의 사이타마 현에 사는 가토(加藤) 부부는 다운증후군을 가지고 태어나 6년을 살다가 하늘나라로 간 장남 아키유키의 사진을 응모하여 은상을 받았다. 아키유키의 사연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사진을 보기 원했고 그 결과 아키유키 생전의 모습을 엮은 90초 기업 이미지 광고가 탄생하게 되었다. 이 TVCM은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켜 교육 현장에서 생명의 소중함을 가르치는 교재로 쓰고 싶다는 요청이 쇄도했다고 한다. 또 일본의 민간방송연맹이 주최하는 국제방송(IBA)상을 비롯해 뉴욕페스티벌, 런던국제광고상, ACC전일본CM페스티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메이지생명의 단 하나의 보물 편은 전형적인 새드버타이징(Sadvertising) 광고라 할 수 있다. 비교적 최근에 마케팅/광고 업계와 미디어 칼럼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새드버타이징(Sadvertising)은 sad와 advertising을 합친 신조어이다. 광고(advertising)가 슬픔(sadness), 감정적인 공감, 감동적인 이야기를 주로 다룰 때 쓰는 용어다. 관객의 감정을 자극해서 브랜드나 메시지에 대한 유대감을 형성하려는 광고 방식을 말한다. 새드버타이징 광고로 유명한 태국의 보험 회사 ‘태국생명보험’에서 올해 7월에 공개한 『지워지지 않는 사랑, 엄마의 문신』 편을 보자.

영상은 문신 가게 안에, 그 장소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할머니가 등장하면서 시작된다. 할머니를 본 타투이스트는 “누가 엄마 돈 훔쳐왔어? 엄마가 찾으러 왔다.”며 조롱한다. 할머니는 꿋꿋하게 종이쪽지를 내밀며 거기 적힌 글자를 팔에 새겨 달라고 한다. 타투이스트는 글자의 의미를 묻지만 할머니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상관 말라고 말한다. 
장면은 과거로 돌아간다. 할머니가 약국에서 약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곤란을 겪던 순간이다. 
약사 뭘 드릴까요? 
할머니 기다려, 지금 기억하려고 애쓰고 있잖아! 
다시 문신 가게, 타투 기계의 소음과 고통을 참는 할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할머니 약 이름이야. 
타투이스트 직접 먹을 약인가요? 
할머니 아들 거야. 아들은 한 달에 한 번씩 이 약을 먹어야 해. 
다시 약국의 할머니, 결국 아들에게 전화해서 묻는다. 
할머니 여보세요? 네가 먹어야 하는 약 이름이 뭐지? 
아들 엄마 그럴 필요 없어요. 내가 사면 돼요. 
할머니 이미 약국에 와있어. 엄마가 살게. 
아들 그러면 지갑을 찾아봐요. 내가 오래 전에 넣어 둔 쪽지가 있어요. 
지갑 속에는 약 이름이 적힌 종이가 들어 있다. 아들이 써준 그 글자들이 곧 엄마 팔에 새기는 문신 도안이 된다. 할머니의 팔에 새겨진 약 이름이 화면에 가득 보인다. 
할머니 난 알츠하이머야. 잊어버리고 싶지 않아. 
타투이스트 이 부분의 글자도 새겨드릴까요? 
할머니 응 
종이 위 글자 잊지 말아요, 엄마 사랑해요. 
할머니 난 이 부분도 잊어버리고 싶지 않아. 
타투이스트 네, 날카롭고 또렷하게 해드릴게요. 하지만 피는 살짝 날 수 있어요. 
그제서야 굳은 표정을 풀고 살짝 웃는 할머니. 아들은 어릴 때부터 천식으로 고생했다. 엄마는 아픈 아들을 노심초사 돌보고, 아들은 ‘엄마 사랑해요’라고 팔하트를 만들며 말하곤 했다. 세월이 흘러 알츠하이머를 앓는 노인이 된 엄마의 팔에는 아들의 사랑한다는 메모까지 문신으로 남았다. 그리고 문신을 다 새긴 엄마가 아들에게 다시 전화를 한다. 
할머니 엄마가 잊어버리기 전에 말할게. 엄마는 널 사랑한다. 
자막 누구에게나 삶을 특별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있다
나 자신이 누군인지는 잊어버려도 절대 잊고 싶지 않은 아들의 약 이름과 아들의 사랑! 광고는 엄마란 어떤 존재인가,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를 조용히 묻는다. 이 광고를 연출한 아타 메와디 감독은 자기 또래, 즉 30대 세대는 모두가 삶의 의미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고 태국의 온라인 잡지 「The Cloud」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저는 삶이란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무엇을 위해 하고 있는지를 알아야만 비로소 의미가 생긴다고 느낍니다. 사람은 누구나 늘 자기 삶의 의미를 생각한다고 믿습니다.” 
겨우 6년에서 멈춘 삶도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삶도 눈부시게 아름답다. 여섯 살 어린이의 전 생애가 겪은 생채기도 60 넘은 노인이 헤쳐온 상처도 모두 눈물 나게 쓰라리다. 태국과 일본, 4,700km 떨어진 다른 나라에서 만들어진 두 편의 광고를 보며 나는 내게 다시 묻는다. 죽을 때까지 기억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살아있을 때 꼭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삶의 끝 날을 알게 되면 당장 그만 둘 일은 무언지 계속하고 싶은 일은 어떤 것인지! 
매달 마감이 괴롭지만, 이 칼럼을 쓰는 일은 죽을 날을 알게 되어도 계속 이어가고 싶은 일의 목록에 들어간다. 행복하다.
https://www.meijiyasuda.co.jp/enjoy/cm/dear/2001/live/?utm_source=chatgpt.com
메이지야스다생명_기업PR_단 하나의 보물 편_ 2001_ 홈페이지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N2RoA62HEUY&t=7s
타이생명보험(TLI)_기업PR_지워지지 않는 사랑: 어머니의 문신 편_2025_유튜브 링크
글. 정이숙 Jeong, Yisuk 카피라이터

정이숙 카피라이터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카피라이터로 광고와 인연을 맺었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을 시작으로 한화그룹의 한컴, 종근당의 벨컴과 독립 광고대행사인 샴페인과 프랜티브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로 일했다. 지금은 디지털 마케팅 에이전시의 CD로 퍼포먼스 마케팅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응답하라 독수리 다방(2015)』, 『광고, 다시 봄(2019)』, 『똑똑, 성교육동화(2019)』 시리즈 12권, 『김민준의 이너스페이스(2020)』가 있다.
abacab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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