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건축사의 요즘 생각들 2025.9

2025. 9. 30. 15:04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Current thoughts of a rural architect

 

 

 

대학교를 졸업하고 공부를 더하기 위해 상경해 대학원을 마친 뒤 건축사사무소에서 일을 시작했다. 잠깐의 외도였지만 건설사에서 일해 보기도 했으나, 적성에 맞지 않아 다시 설계를 하게 됐고, 시간이 지나 고향으로 내려왔다. 이후 건축사 시험에 합격해 개업을 했다. 이런 루트는 많은 개업 건축사들의 기본적인 경로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시작 방식은 비슷하더라도 사무실 운영 방식이나 디자인 접근 방식은 모두 다를 것이다. 아직 나만의 운영 방식은 정해지지 않았다. 좋은 것이 있으면 무조건 시도해 보고, 시행착오를 겪는 중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요즘 드는 생각들을 적어 보려 한다.

1. 예전부터 젊은건축가상에 관심이 많았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건축사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떻게 디자인을 발전시켜 가는지가 궁금했다. 또한 그들의 결과물에서 배울 점을 찾아 나에게 적용해 보는 것이 좋았다. 그렇게 젊은건축가상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졌다.
매년 심사를 지켜보면서, 건축계에서 유명한 분들로 구성된 심사위원이 유명 아틀리에 출신들의 작품을 심사하고, 그러한 작품들이 마치 건축계를 이끌어갈 대표작인 것처럼 평가되는 것에 이질감을 느꼈다. 대한민국 시장에서 그러한 분들에게 설계를 의뢰하는 비율보다 지방의 작은 사무실에서 설계하는 비율이 훨씬 높다. 대중적인 건축은 몇몇 아틀리에에서 진행하는 작품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상품으로 팔리는 건축물일 것이다. 어쩌면 그러한 건축물이 현재 대한민국 건축의 대표성을 지닌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2. 요즘 우리 업계에서는 업무대가 산정에 대한 논의가 많다. 나 역시 업무대가를 정확히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논의되는 내용은 대부분 설계비에 집중돼 있다. 건축사의 주요 업무는 설계와 감리다. 설계비도 정당하게 받아야 하지만, 감리비 역시 제대로 산정돼야 한다.
해체 감리는 상주감리로 진행돼 상당한 비용이 책정되며, 현재도 그 비용이 결코 높다고 보기 어렵다. 공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안전사고를 고려하면 충분히 필요한 수준이다. 그러나 일반 건축 감리를 보면 상황이 다르다. 신축이나 증축 건축물의 감리자는 공사 중은 물론, 준공 후 수십 년이 지나도 건축물 문제에 대해 사실상 무한 책임을 지는 구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감리비는 해체 감리비에 비해 턱없이 낮게 산정되고 있다.
물론 두 경우를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건축 감리의 책임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건물이 언제 해체될지, 사용 기간이 얼마나 될지, 이용 인원이 얼마나 될지 등 수많은 변수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도 책임은 그대로 감리자에게 부과된다. 이제는 설계비뿐 아니라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 감리비 산정 방식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2024ss sketchgame 전시회 © 올바른건축사사무소


3. 경기가 어렵다. 코로나 시기 이후 금리가 올랐고, 현장의 재료비와 인건비까지 모두 상승했다. 오르지 않은 것은 설계비뿐인 듯하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요즘 자주 드는 생각은 ‘어떻게 하면 사무소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까’라는 것이다.
건축은 인구 수와 필연적으로 연결돼 있다. 그러나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고 있으며, 이에 따라 신축이나 증축을 위한 허가 건수도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앞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어려운 여건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직 뚜렷한 해답은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하게 느끼는 점은 ‘지속적으로 배워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릴 적 공부하지 않으면 부모님이 “배워서 남 주냐?”라고 핀잔을 주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우리는 결국 ‘남을 위해’ 배우는 것이다. 건축법을 비롯한 수많은 법규들은 매년, 심지어 한 해에도 수십 번씩 바뀐다(한 논문에 따르면 건축 관련 법규 개정은 연간 수십 건에 달한다고 한다). 현장에서 사용되는 재료와 시공 방법도 매달, 매년 새롭게 업데이트된다.
이처럼 기술과 제도가 빠르게 변화하는데 우리가 배우지 않고 안주한다면, 결국 도태돼 아무도 우리를 찾지 않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배워야 하고, 배운 것을 주변을 돕는 데 활용해야 한다. 사무실을 지속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디자인, 영업, 직원 관리 등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지만, 배움의 중요성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
 
4. 작은 주택을 설계하는 데 주어지는 시간은 많지 않다. 가끔은 오늘 상담하고 내일 공사를 시작할 수 있는지 묻는 분들도 있다. 이런 시장 환경 속에서 매 프로젝트마다 레퍼런스를 찾고 스터디할 시간은 항상 부족하다. 그래서 틈이 날 때마다 SNS를 활용한다. 다른 지역의 작품을 살펴보고, 좋은 사례가 있으면 스크랩해 스터디 자료로 삼는다. 최근에는 스테이블 디퓨전을 활용한 AI 건축도 배우고 있다.
작년에는 페이스북을 통해 ‘SKETCHGAME’이라는 온라인 프로그램에 참여해 100장의 스케치를 완성했고, 다른 건축인들과 함께 작은 전시회도 열었다. 올해는 일본 건축 잡지를 번역·공유하는 온라인 모임에 참여하고 있으며, 그 모임과 함께 9월에는 오사카 박람회도 관람할 예정이다. 최근에는 온라인을 통해 외국 건축회사의 자료를 공유해 주는 분을 만나, 그곳에서 받은 자료를 보는 즐거움에 빠져 있다.
대도시와 달리 시골은 건축적 한계가 뚜렷하다. 인구와 자본이 줄고, 건축 프로젝트의 수도 급격히 감소한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프로젝트가 줄어든다고 손을 놓기보다, 이런 배움과 활동을 통해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기대한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다.

5. 얼마 전 이사를 했다. 출퇴근 거리가 기존 15분에서 5분으로 줄었다. 물론 도시의 출퇴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나에게는 의미 있는 변화다. 그래서 올가을에는 자전거로 출퇴근을 해 보려고 한다.
이사한 집은 여전히 아파트다. 처음 이사를 결심했을 때는 단독주택을 짓고 싶었다. 그래서 여러 대지를 알아보고 계획도 세워 봤지만, 제한된 예산으로는 나의 욕심을 채우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결국 아파트 생활을 이어가게 됐다. 그렇다고 주택에 대한 꿈을 버린 것은 아니다. 여전히 스케치북에 어떤 날은 거실을, 또 어떤 날은 주방을 그리며, 언젠가 지어질지 모르는 나만의 집을 계획한다. 그러다 보니 사업주들이 느끼는 감정을 조금은 이해하게 됐다.
언젠가부터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 중 하나는 ‘남의 돈으로 나의 이상향을 실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건축이 어렵다고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어려운 용어와 표현으로 건축주를 설득하며 사업주의 이상이 아닌 우리의 이상을 실현해 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런 방식은 20세기의 르 코르뷔지에도, 지금의 많은 프로젝트에서도 볼 수 있다. 물론 이 방식이 전적으로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자본과 사업주의 이상, 그리고 나의 이상이 일치하면 좋은 프로젝트가 완성될 가능성은 높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프로젝트가 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대중이 조금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건축이 필요하다. 누군가 “여기 창문은 왜 있어요?”라고 물었을 때, “차경의 요소를 끌어와 내부로 열린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라고 말하는 것보다 “저쪽 경치가 좋아서 창문을 냈어요”라고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다면 더 좋겠다.



 

글. 강기수 Kang, Kisu 올바른건축사사무소

 

강기수 건축사·올바른건축사사무소

 

2010년 고려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2017년 지역에 다양한 형태의 건축물이 조성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개소했다. 현재 공공건축을 중심으로 지역의 소규모 건축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으며, 주요 작업으로는 한절마마을회관, 정감록문화마을회관, 상주외국인재단 기숙소 등이 있다.

abrarchi1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