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9. 30. 15:06ㆍ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Architecture Criticism _ Riverwatch House
A proposition for living in harmony with nature, not possessing
남한강변에 자리한 ‘와유화원’은 이름부터 하나의 선언처럼 다가온다. 와유(臥遊)란 그림을 마치 야외 풍경을 구경하듯 집에 누워 즐긴다는 뜻이라고 한다. 예로부터 풍류를 즐기던 선비들이 집 안 사랑방에 앉아 병풍이나 족자 속의 명승지를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유람하던 그 풍경이, 현대 주거의 형태로 되살아난 셈이다. 그러나 이 집은 그림이 아니라 실제 강을 눈앞에 두고 있다. 건축가는 ‘누워서 유람한다’는 개념을 물리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강의 흐름을 정면으로 마주하게끔 긴 매스를 들어 올려 앉혔다.
사용자의 시선을 유도하는 틀이 되다
이 배치는 주어진 환경을 작정하고 즐기기 위하여 명료한 논리를 선택한 듯하다. 2층에 주요 생활공간을 두고, 1층을 비워 정원과 다실, 차고를 배치한 구성은 풍경을 마음껏 받아들이기 위한 공간 전략이다. 동쪽으로 난 파노라마형 입면은 강을 향해 열려 있고, 서쪽 도로변 입면은 비교적 닫혀 있다. 사람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강 쪽으로 이끌리고, 외부로부터의 시선은 차단된다. 마치 건물 자체가 ‘강을 바라보는 틀’이 되어 사용자의 시선을 유도하는 셈이다. 양평의 남한강변이라는 입지에서 실내에서는 풍경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입면적 배치로는 열린 면과 닫힌 면의 대비로 공간의 성격을 명확히 구분한 점이 돋보인다.
매스를 1층에서 띄운 결정은 환경적 맥락에 대한 섬세한 대응이 되기도 한다. 강변은 습한 지역이다. 습기는 저층일수록 더 크게 느껴지고 또 한여름의 반사광은 이를 극대화시키기 때문에 건물을 들어 올림으로써 주요 생활공간의 쾌적함을 확보함과 동시에, 1층을 비워 개방감 있는 하부 공간을 만들었다. 이로 인해 건물은 땅에 묵직하게 붙어 있는 대신, 살짝 떠 있는 듯한 가벼운 인상을 준다. 열주들을 매스의 안쪽으로 배치한 것도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하부의 반 외부 공간은 정원을 자연스럽게 끌어들이고 그 옆에는 다실과 차고가 자리하여 외부 풍경이 부드럽게 이어진다.
외장재로 선택된 노출콘크리트는 흔히 차갑고 단단한 이미지로 인식된다. 그러나 이 집에서는 거푸집에 나무판을 덧대어 송판 무늬를 남겼다. 콘크리트 표면에 새겨진 나뭇결의 패턴은 재료의 기계적인 차가움을 누그러뜨리고, 오히려 은근한 온기를 품게 한다. 이는 강변의 자연스러운 풍경과 건물의 물성을 이어주는 중요한 장치다. 빛이 비스듬히 콘크리트 표면을 스칠 때, 나뭇결의 음영이 살아나며 하루의 시간과 계절의 변화를 미묘하게 드러낸다. 건물은 그 자체로 조망의 틀이면서, 동시에 시간과 자연의 흐름을 담아내는 캔버스가 된다.
1층, 누각에 오른 듯한 시각적 효과 제시
1층의 중심에는 다실이 있다. 이 다실은 단순히 차를 마시는 방이 아니다. 집의 관문이자 사회적 무대, 그리고 사적인 생활과 외부 교류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한다. 손님이 집주인의 사적 공간을 거치지 않고 바로 들어올 수 있는 위치에 자리하며, 삼면이 통창으로 열려 있어 마치 정원에 둘러싸인 정자에 앉아 있는 듯한 개방감을 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선의 흐름이다. 다실에 앉으면 정면에는 강이, 양옆으로는 반외부 공간이 이어진다. 왼편으로는 처마를 받치는 듯한 열주들이 나열되어 있어, 비록 1층이지만 누각에 오른 듯한 시각적 효과를 준다. 오른편에는 야외 주방과 다이닝 공간이 마련되어, 차 한 잔에서 식사까지 다양한 외부 생활이 가능하다. 다실에서 2층으로 향하는 계단실의 설계는 ‘과도기적 경험’을 만들어낸다. 계단의 마감은 노출콘크리트로, 천장과 바닥의 재질과 색을 외부와 비슷하게 마감하여 실내이지만 마치 외부에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방문자는 이 계단을 오르며 점진적으로 강을 향한 개방성에 노출된다. 처음에는 정원과 주변 경관이 부분적으로 보이다가, 2층에 이르면 갑작스럽게 동쪽 전면의 파노라마가 시야를 가득 채운다. 이 순간은 건축이 의도한 ‘풍경의 극장’이자, 거주자가 매일 경험하는 소소한 드라마다.
2층은 동쪽에 길게 배치된 주방, 식당, 거실, 데크, 주인침실이 하나로 이어지는 오픈스페이스 구조다. 이러한 구성은 거주자가 집 안 어디에 있든 강변 조망을 즐길 수 있게 한다. 식탁에서 아침을 먹으며, 소파에 기대 오후를 보내며, 침대에 누워 하루를 마무리할 때까지 강은 끊임없이 시야에 들어온다. 반면 서쪽에는 다용도실, 팬트리, 화장실, 드레스룸 등 보조 공간을 집중 배치해 기능성과 조망의 질을 모두 확보했다.
이 층의 중심에는 데크가 있다. 데크는 단순한 외부 발코니가 아니라 집의 심장부에 가까운 공간이다. 1층과 2층을 수직으로 잇고, 공용과 사적 영역을 수평으로 이어주는 매개다. 이곳에서는 건축이 풍경을 방해하지 않도록 모든 요소가 절제되어 있다. 난간은 투명한 유리로, 바닥 타일은 콘크리트 톤과 비슷하게 마감해 시선이 멈추지 않고 강으로 흘러가게 한다. 계단실과 복도는 동측 풍경을 가득 담은 창을 통해 집의 중앙에서 각 층의 주요 채광을 담당하고 있다.
절제의 미학, 공간의 표정을 바꾼 전략
이 집의 가장 큰 미덕은 절제다. 강변이라는 강렬한 맥락 앞에서 화려한 조형이나 값비싼 외장재로 경쟁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 투박한 콘크리트와 단순한 매스, 질감 최소화로 풍경을 배경이 아닌 주인공으로 세웠다. 건축가는 스스로의 존재감을 드러내기보다, 거주자의 삶과 자연의 관계를 전면에 두었다. 이는 동양적 미학의 중요한 요소인 ‘비움’과 ‘여백’의 개념을 현대 건축 언어로 풀어낸 사례로 볼 수 있다.
다만 절제의 미학이 때로는 단조로움으로 이어질 위험도 있다. 내부 마감의 톤과 질감이 지나치게 통일되면, 장기 거주 시 시각적 피로가 누적될 수 있다. 이를 보완하려면 가변적인 가구 배치나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소품, 식물 등을 통해 공간의 표정을 바꿔주는 전략이 필요하다. 특히 강변이라는 환경은 계절 변화가 뚜렷하므로, 건축적 틀은 절제하되 생활 속 장치는 유연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면 더 풍부한 거주 경험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와유화원’은 단순한 강변 주택이 아니다. 풍경을 소유하는 대신, 풍경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고민한 결과물이다. 벽구조체에서 한 켜 물러난 열주의 배치, 동서 입면의 대비, 다실의 사회적 기능, 오픈스페이스의 수평적 흐름, 데크의 매개성등 다양한 시도들이 유기적으로 엮이며, 거주자는 집 안에서조차 유람하는 경험을 누린다. 이 집은 과시적이지 않다. 대신 강과 마주한 자리에서 건축이 할 수 있는 최선, 즉 물러서서 비켜주는 것을 선택했다. 그 태도야말로 이 집이 강변에서 오래도록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글. 강재원 Kang, Jaewon 건축사·곧 건축사사무소(주)
강재원 곧 건축사사무소(주)·건축사
홍익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7년 실무경험 뒤 ‘곧 건축사사무소(주)’를 개소했다. 기획과 설계, 시공뿐만 아니라 건축물이 실제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까지가 건축의 전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모든 과정이 즐겁게”를 표어로 삼고있다.
01@beforel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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