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자신을 정의하는 ‘나만의 건축’이 목표, “소통과 고민의 깊이가 건축의 질 담보”_이호성 건축사 2026.2

2026. 3. 19. 14:34아티클 | Article/인터뷰 | Interview

The goal is to create ‘my own architecture’ that defines oneself: “The depth of communication and concern guarantee the depth of architecture.”

 

 

월간 <건축사> 2월호 표지를 장식한 ‘향약원 별관’은 클라이언트의 회사 규모가 확대되면서 기존 연수원 시설(향약원 본관)로는 소화가 불가능해 직원의 교육과 휴식 등 복지시설 개념으로 새롭게 구성된 공간이다. 건축물은 크게 복지시설 3개동과 부대시설 1개동으로 나뉘며, 저층부에는 접근이 쉽고 외부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부대시설이, 상층부에는 프라이버시를 고려한 복지시설이 배치됐다. 연 초부터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 설계자 이호성 건축사를 만나 향약원 별관 프로젝트에 따른 에피소드와 건축적 목표 등을 들어보았다.

 

월간 <건축사> 2월호 표지를 장식한 ‘향약원 별관’의 설계자 이호성 건축사(주.건축사사무소 리을)

 

# 대지해석에 많은 시간 할애,
건축주 만족 보며 ‘선택에 대한 확신’

 

박정연_인터뷰를 위해 시간 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합니다.

 

이호성_반갑습니다. 이호성 건축사입니다. 지난 1997년부터 실무를 시작해 2006년에 ‘리을인텍스트’를 설립했습니다. ‘건축사사무소 리을’은 공간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벽, 바닥, 지붕)가 한글 자모와 닮았다는 점에 착안했는데요. 특히 닫혀있는 ‘ㅁ’이 아닌, 열려있는 형태인 ‘ㄹ’을 통해 외부와 유연하게 소통하는 건축을 하고 싶었습니다. 소통과 기본적인 요소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설계를 진행해 오고 있습니다.

 

박정연_주요 작품들을 살펴보고 왔는데요. 느낀 점이 대지에 대한 해석이 독특한 것 같습니다. 특별한 노하우가 있을까요?

 

이호성_정형화된 프로세스가 있거나 그렇진 않습니다. 대지에 대한 부분, 또 주변 콘텍스트(Context)에 신경을 많이 쓰는 정도라고 생각해 주시면 좋을 것 같은데요. 설계자가 대지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건축물의 모습이 확연히 달라지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니까요. 헤이리에 있는 아다마스253의 경우 대지와 길의 관계성을 찾는데 시간이 걸린 케이스입니다. 곡면도로를 활용하려고 보니 입구를 어떻게 낼 것인가와 같은 고민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헤이리가 갖는 건축 규제도 있다 보니 이런 과제들을 해결함에 있어, 대지에 대한 철저한 분석에서부터 심혈을 기울이는 것이죠.
건축물 내부와 외부가 다르지 않고, 대지 역시 내가 설계하는 건축물이 들어설 땅과 인접한 땅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조화가 중요한 것이니까요.

 

박정연_‘향약원 별관’을 작업하게 된 계기에 대해 말씀 부탁합니다.

 

이호성_2013년, 공주시 금계산 자락에 ‘향약원’을 설계했습니다. 지금은 본관이 됐죠. 당시 맞은편으로 펼쳐지는 단풍과 설경이 너무나 아름다워, 이 풍경과 건축이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지 치열하게 고민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로부터 딱 10년이 지난 어느 날, 건축주께서 다시 연락을 주셨습니다. 회사가 성장하여 기존 공간만으로는 부족하니, 직원들을 위한 별관 설계를 맡아달라는 것이었죠. 본관의 설계자로서 무척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향약원 별관은 그렇게 10년의 시간을 건너 다시 이어진 특별한 인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향약원> 본관 © 문정식

 

# 본관이 가진 성격과 조화 이루며,
주변 마을이 가진 작은 스케일도 반영해 ‘윈윈’

 

박정연_본관과 비교해 보면 재료의 색상을 비롯해, 톤, 매스 등이 무척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상호 관계성을 가지면서, 한편으로는 개별성도 갖고 있다고 보입니다.

 

이호성_’향약원 별관’은 풀어야 할 숙제가 만만치 않은 프로젝트였습니다. 직원 복지와 워크숍이라는 복합적인 기능을 담아야 했고, 무엇보다 3미터 이상의 단차가 있는 경사지를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관건이었습니다. 여기에 계획관리지역의 법적 제한과 기존 연수원과의 연계성, 그리고 조용한 시골 마을과의 관계 설정까지 깊은 고민이 필요했죠.
지형을 거스르기보다 순응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3개의 복지시설과 1개의 부대시설을 경사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배치했습니다. 특히 지형의 레벨 차를 이용해 일부를 지하층으로 구성했는데, 이곳은 땅에 묻혀 있지만 전면이 열려 있어 지면과 바로 소통할 수 있는 쾌적한 공간이기도 합니다.
디자인적으로는 ‘재료의 물성’과 ‘매스의 분절’을 통해 조화를 꾀했습니다. 땅과 맞닿은 저층부는 석재로 마감해 건물이 마치 언덕의 일부인 것처럼 자연에 스며들게 했고, 상층부는 가벼운 백색 매스 3개로 분절해 얹었습니다. 이는 기존 연수원이 가진 ‘가로로 긴 단일 매스’의 거대함과 대비를 이루면서, 마을의 작은 스케일과도 조화를 고려한 디자인이었습니다.

 

박정연_말씀하신 대로 여러 방향으로 기울어진 지형 위에 세 동의 건물을 배치하고, 일부동은 지하로 또 상부는 외부 휴게 공간으로 활용하는 등 각 동들마다 특색과 의미를 부여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조망에 대한 배려인지, 아니면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이호성_ 배치와 계획에는 크게 세 가지의 목적이 담겨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이웃과 마을에 대한 배려’입니다. 이곳은 낮은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소박한 시골 마을입니다. 그런 곳에 우리 건물만 높게 솟아올라 주변 스카이라인을 해치거나, 마을 분들에게 위압감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경사지의 레벨 차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건물의 일부를 지하로 계획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전체적인 높이를 한 개 층 정도 낮출 수 있었죠. 덕분에 마을 주민들의 조망권을 가리지 않으면서, 기존 마을 풍경에 거슬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외부 공간의 풍요로움’을 위한 배치 전략입니다. 흔히 볼 수 있는 기계적인 일자 배치의 나열을 피하고 싶었습니다. 대신 건물들을 ‘ㄷ’자 형태로 배치하여 동 간의 거리를 조절하고 그 사이사이에 마당을 두었죠. 이렇게 함으로써 진입 마당, 휴게 마당, 선큰 공원, 파고라 등 성격이 다른 다양한 외부 공간을 만들어 낼 수 있었고, 공간의 깊이감도 더할 수 있었습니다.
끝으로 ‘프라이버시 확보와 자연 조망’을 위한 창에 대한 고려입니다. 세 동이 모여 있다 보니 자칫 서로의 시선이 부딪힐 수 있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 창호 계획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동끼리 마주 보는 창은 최소화하고, 외부 공용공간 쪽으로도 시선을 차단하거나 최소한의 창만 내어 프라이버시를 지켰습니다. 대신, 주요 창들은 모두 대지 바깥의 자연을 향해 열어두어 이용객이 방해받지 않고 온전히 풍광을 즐길 수 있도록 의도했습니다.

 

<아다마스253> © (주)건축사사무소 리을


# VR 기법 적용해 공간의 깊이감 체험,
모든 프로젝트에 적극 활용 예정


박정연_향약원 별관 작업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이호성_이번 프로젝트에서 처음으로 VR(가상현실) 기법을 설계 프로세스에 도입했던 경험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건축사로서 늘 고민하는 부분이 2D 도면이나 모형만으로는 실제 건축물의 스케일감과 공간감을 완벽하게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일 겁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헤드셋을 쓰고 1:1 스케일로 모델링 된 공간을 직접 걸어보는 시도를 했습니다.
체험해 보니 건축물의 스케일이나 외부 공간의 깊이감, 그리고 거실과 방의 크기가 답답하지는 않은지 등을 직관적으로 체크할 수 있었습니다. 설계 단계에서 공간의 퀄리티를 사전에 검증할 수 있었던 매우 유의미한 경험이었고, 앞으로의 프로젝트에도 적극 적용할 계획입니다.

 

박정연_향약원 별관에서 건축사님이 꼽는 가장 매력적인 공간은 어디인가요?

 

이호성_우선 입체적인 외부 휴게공간을 추천합니다. 이곳은 주변에 특별한 즐길 거리가 부족한 입지적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때문에 머무는 가족이나 직원들이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특별한 기억을 가져가길 바랐습니다. 프라이버시를 위한 담장, 경사지로 생긴 다양한 레벨의 바닥, 여러 개의 계단 등이 조경과 적절히 어우러져, 단순하지만 단조롭지 않은 입체감 있는 외부공간이 만들어지게 됐습니다.
두 번째는 ‘창’입니다. 주변의 풍경은 그 자체로도 훌륭하지만, 건축사가 의도한 프레임(창)을 통해 볼 때 그 가치가 더 빛난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창, 전창, 파노라마 창 등 다양한 비례의 창을 통해 외부의 풍경을 실내로 가져왔고, 실제로 완공된 후 창으로 펼쳐진 풍경은 설계하며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 공간과 환경의
경계 없는 설계가 핵심

 

박정연_시기에 따른 그간의 설계 작품의 주요 변화, 공통점과 기타 등에 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이호성_‘아다마스253’을 시작으로 코스맥스 향약원, 클라우드, 그리드, 알베로산토 펜션, 제주 피제리아3657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해 오고 있습니다. 그간의 작업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있다면, 과거 사무소 이름인 ‘리을인 텍스트(Rieul Intext)’에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Intext’가 Interior, Exterior, and Context의 합성어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지금은 사명을 짧게 ‘리을’로 줄였지만, ‘공간(내부)과 환경(외부)의 경계 없이 전체를 하나의 맥락(Context) 안에서 다룬다’는 생각은 여전히 추구하고 있는 설계의 핵심입니다. 물론 제가 계획 할 수 없는 영역도 있습니다, 바로 ‘주변 환경과의 관계(Context)’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설계자가 통제할 수 없는 이 ‘맥락’이 설계의 방향을 결정짓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죠. 앞서도 밝혔지만 특별한 스타일을 고집하기보다, 대지가 처한 상황에 깊은 고민을 통해 저만의 해결책을 찾고 있습니다.

 

박정연_건축사님께서 추구하는 목표는 무엇이며, 더불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이호성_ 저에게 설계란, 제가 통제할 수 있는 ‘공간’과 통제할 수 없는 ‘환경’ 사이의 관계를 맺어주는 작업이며, 그 관계를 해석하는 방식이 시기마다, 프로젝트 마다 조금씩 다른 표정으로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볼 때 건축을 향한 일단의 목표는 저 자신만의 건축을 완성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설계공모 과정에서 매번 입상에 실패해 당선작 등 래퍼런스를 참고해 작품을 출품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흉내를 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 색을 잘 표현하는 것이 개인적인 발전이나 사회적으로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아 ‘나만의 건축’을 찾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아울러 건축주와의 소통, 시공자와의 소통 강화를 통한 소위 말하는 ‘모두가 윈윈 하는 건축’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해가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표지작으로 선정돼 기쁘게 생각하며, 독자들께서도 많은 소통을 통해 좋은 결실을 맺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합니다.



글 박관희 기자

사진 안상진 기자

 

이호성 건축사 Rhee Hoseong
(주)건축사사무소 리을
<서울특별시건축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