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초의 영원 2026.3

2026. 3. 31. 10:20아티클 | Article/정카피의 광고이야기 | AD Story - Copywriter Jeong

0.2 Seconds of Eternity

 

 

 

1년 넘게 불을 피우지 않은 엄마의 부엌에는 오래된 주방도구들만 아마도 끝나지 않을 휴가를 보내고 있다. 투박한 양은 쟁반, 무거운 유리접시, 튼튼한 스테인리스 냄비, 찌그러진 국자, 까맣게 색이 변한 은수저… 대부분 50년 넘게 사용했던 물건이다. 아마 엄마가 새댁이었을 때부터 쓰던 것도 있을 것이다. 그 냄비에 끓인 동태찌개를 먹던 때, 나는 어렸고 냄비는 젊었다. 그 은수저로 밥을 뜨던 시절, 엄마는 건강했고 수저는 반짝였다. 어린 내가 자라 집을 떠나고, 건강했던 엄마가 퇴원할 기약 없이 병원에 있기까지 수 십 년이 흐르는 동안 그릇은 비교적 멀쩡하게 제 모습과 기능을 지키고 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쟁반과 밥그릇은 변함없이 그대로인데 엄마는 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지? 엄마나 내가 이 세상을 떠나도 얘들은 오래오래 썩지 않고 남아있을 거야. 생명이 없는 물건들을 쓰다듬으며 그것들의 역설적이게도 영원한 수명을 생각한다. 2025년 이케아 포르투갈의 광고가 허구가 아닌 다큐처럼 느껴진다.

 

 

#오래된 이케아의 탁자, 침대, 서랍장이 보이는 화면 위로, 그 가구 주인들의 메시지가 자막으로 나타난다.
루테 테세이라 “결혼생활은 끝났는데, 탁자는 여전히 여기 있네요.”
알레나 지후노바 “이 침대는 내 전 남자친구보다 오래갔어요.”
앤-마리 로크 “이 말름(MALM) 서랍장은 내 모든 연애보다 오래되었어요.”
#이케아 가구를 사용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고 내레이션이 흐른다.
어떤 사람들은 이케아 가구가 오래가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많은 관계들보다 더 오래가는 것처럼 보이네요.
왜 그럴까요? 간단합니다.
이케아 가구는 복잡하지 않거든요.
전 애인 얘기도 안 하고, 코를 골지도 않으며, 사람을 평가하지도 않습니다.
숨겨둔 비밀이 있지도 않고, 여자 친구의 키가 더 크다고 불안해하지도 않죠.
이케아 가구는 다정하고, 우리 아이들을 자신의 아이처럼 받아들이며, 좋은 때나 나쁜 때나, 지저분한 순간까지 함께해 줍니다.
그래서 이런 ‘관계’들이 25년 넘게 이어지는 걸까요?
아니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이케아 가구가 더 튼튼해서일까요?
휴우… 사랑도 이만큼 오래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삶은 집에서 일어납니다.

IKEA포르투갈_기업PR : Life Happens at Home_영상광고_2025

 

2024년 이케아는 포르투갈 진출 20주년 맞았다. 이를 기념해 포르투갈 내에서 가장 오래된 이케아 가구를 찾는 캠페인을 열었다. 수천 명의 고객이 자신의 집 한쪽을 지켜온 오래된 가구들을 인증하며 사연을 보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공통점이 발견되었다. 많은 이들이 이 가구가 자신의 연애나 결혼 생활보다 더 오래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한 것이다. 이케아는 이 재미있는 사실에 주목해, ‘삶은 집에서 일어납니다’라는 캠페인을 선보였다. 제품이 물리적으로 얼마나 견고한지 주장하는 대신, 세월이 흘러 사람의 관계가 변해도 20년 이상 계속 사용하는 가구를 보여주는 광고가 캠페인의 첫 영상이다. 크리에이티브는 포르투갈 리스본에 있는 독립 광고대행사 우지나(Uzina)가 개발했고, 78 Films라는 프로덕션이 제작을 맡았다.
이케아 제품군 중 내구성이 가장 뛰어난 제품은 주방 가구라고 한다. 진출한 나라 어디서나 25년 동안 품질 보증을 해주는 것이 이러한 자신감을 뒷받침한다. 캠페인의 두 번째 영상은 주방 가구의 튼튼함을 보증 기간 숫자로 강조하지 않고, 사람의 사랑과 비교하여 설명했다. 사람의 마음은 부엌에서 냄비가 끓어 넘치듯 쉽게 변하고 기복이 심하지만, 이케아의 주방은 그 모든 감정의 폭풍을 25년 동안 묵묵히 견뎌낸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Na)
(#수면 가운을 입고 냉장고를 여는 남자)                 가끔 아침에 눈 뜨자마자 그녀 생각부터 하고.
(#싱크대 서랍을 발로 차서 닫는 여자)                    가끔 발로 차버리고 싶은 심정이고.
(#오븐 앞에서 쿠키가 구워지기를 기다리는 아이)   가끔은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부글부글 끓어 넘치는 가스레인지 위의 냄비)       가끔은 사소한 일에 끓어오르고.
(#싱크대 위를 행주로 닦는 손)                               가끔은 다정하고.
(#고기망치로 고기를 두드리는 남자)                      가끔은 무뚝뚝하고.
                                                                            이렇게 변덕스러운 기분 변화에 버틸 사랑이 있을까요?
                                                                            사랑도 이케아 주방만큼 오래갔으면 좋겠어요.
자막)                                                                    25년 보증
                                                                            삶은 식탁에서 벌어집니다.
                                                                            삶은 집에서 일어납니다.

IKEA 포르투갈_기업PR : Cooking_영상광고_2025

 

사랑의 민낯과 한계를 과하지 않은 유머를 섞어서 보여주며 제품의 특성을 끼워 넣는다. 맞아 사랑은 끝나도 식탁은 남고, 사람이 떠나도 도마나 칼을 버리진 않지. 내게도 여러 번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피식 웃는다. 캠페인은 포르투갈 전역에서 TV, 디지털, 옥외, 라디오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전개됐다. 실제 20년 묵은 이케아 가구를 가진 소비자가 나와 가구에 얽힌 사연을 밝히는 영상도 만들어졌다.
옥외광고가 던지는 카피는 좀 더 노골적이고 유머러스하다.


침대에 가고 싶은 마음이 식지 않고 그렇게 오래 지속되는 관계는 아주 드물어요.
6개월 넘게 이 (소파 같은) 포근함을 유지하는 연애가 몇이나 될까요?
사랑도 (25년 품질보증하는) 이케아 주방만큼 오래갔으면 좋겠어요.

IKEA포르투갈_기업PR_옥외광고_2025

 

이케아는 말한다. 삶은 집에서 일어난다고, 가구가 사랑보다 오래가기도 한다고. 그러나 집이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침대가 있어도 잠을 대신 자주지 못 하고, 소파가 포근한 포옹을 대신해 주지 못한다. 그래서 25년 멀쩡한 식탁보다 6개월 만에 끝났어도 전부를 걸었던 연애가 더 소중하다. 냄비보다 오래가지 못한다고 사랑을 포기할 수는 없다.
상념은 멋대로 흘러 엄마의 부엌으로 되돌아간다. 50년을 버틴 냄비는 그대로인데, 엄마는 병원에 누워 있다. 생명이 없는 것들은 오래 남고, 생명이 있는 우리는 금세 사라진다. 우주 138억 년의 역사를 1년짜리 달력으로 환산한 코스믹 캘린더(Cosmic Calendar)에 따르면 지구의 탄생일은 9월 14일이고, 인류의 조상 호모 사피엔스가 나타난 건 12월 31일 밤 11시 56분쯤이다. 여기에 한 개인의 인생을 대입하면 100살을 산다고 해도 겨우 0.2초에 불과한 시간이란다. 그 찰나의 시간 동안, 내 곁에서 식탁이 아닌 밥을 함께 나누어 준 사람들. 그들의 체온이 있기에 나는 0.2초짜리 인생이라는 것을 잊고 영원히 살 것처럼 살고 있다. 주방 국자보다 짧은 수명을 가진 주제에 불멸의 존재처럼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다.
0.2초를 영원처럼 흥청망청 쓸 수 있게 뒷배가 되어준 내 모든 관계들이, 새삼 고맙다.

 

 

https://www.youtube.com/watch?v=1MDkoV3w6mQ
IKEA_기업PR : Life Happens at Home_영상광고_2025_유튜브 링크

 

https://vimeo.com/1123212549?fl=pl&fe=cm
IKEA_기업PR : Cooking_영상광고_2025_비메오 링크



 

글. 정이숙 Jeong, Yisuk 카피라이터

 

 

정이숙 카피라이터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카피라이터로 광고와 인연을 맺었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을 시작으로 한화그룹의 한컴, 종근당의 벨컴과 독립 광고대행사인 샴페인과 프랜티브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로 일했다. 지금은 디지털 마케팅 에이전시의 CD로 퍼포먼스 마케팅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응답하라 독수리 다방(2015)』, 『광고, 다시 봄(2019)』, 『똑똑, 성교육동화(2019)』 시리즈 12권, 『김민준의 이너스페이스(2020)』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