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4. 30. 10:20ㆍ아티클 | Article/정카피의 광고이야기 | AD Story - Copywriter Jeong
Speaking with Flowers
선암사에 매화가 피었단다. 누구는 아침에 눈뜨자마자 달려가 절 마당 가득한 매화 향을 만나고 왔단다. 다른 누구는 제주에 갔는데 동백은 이미 뚝뚝 떨어졌고, 대신 유채꽃이 환하게 웃더란다. 또 누구는 창덕궁 매화를 보러 갔다가 허탕을 치고 말았더란다. 비와 진눈깨비가 오락가락하던 쌀쌀한 3월 어느 수요일, 끝이 아득한 일을 쌓아두고 봄꽃 소식을 듣는다.
남도의 꽃구경은커녕 출퇴근길 아파트 마당에서 마주치는 산수유꽃에 눈길 줄 여유조차 없으니, 오감이 활짝 열리는 꽃호강은 좀처럼 내 차례까지 돌아올 것 같지 않다. 그래도 눈앞에 꽃잎이 어른거린다. 봄꽃 모두 지고 나면 내 봄을 여읜 설움에 삼백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울게 될까 봐 책상에서도 꾸준히 꽃을 생각한다. 짐작하셨겠지만, 나는 지금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과 이상의 『이런 시(詩)』를 흉내 내는 중이다.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 한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 수 없소이다.
내 차례에 못 올 사랑인 줄은 알면서도
나혼자는 꾸준히 생각하리라.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이상, 『이런 시』 부분
어디 봄꽃뿐이랴! 내 한평생에 아무리 소원해도 내 차지는 되지 않았을 지나간 인연들을 떠올린다. 생각 끝에, 애만 태우다 돌아선 풋사랑도 딸려 나온다. 내 마음 담은 꽃말 가진 꽃 한 송이 보내기라도 해 볼 것을, 부질없는 후회가 솟기도 한다.
꽃에 마음을 담아 전하는 습관은 아주 먼 옛날, 그리스•로마 신화나 종교 의례에서 식물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던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중세 시대에는 기사들이 사랑하는 여인에게 꽃을 바치며 충성을 맹세하는 낭만적인 풍습으로 발전했고, 그림이나 정원의 꽃들은 저마다의 의미를 품은 상징이 되었다. 18세기 지금의 튀르키예 지역인 오스만 제국의 궁전에는 꽃과 물건을 조합해 비밀 편지를 보내던 ‘셀람(sélam)’이라는 독특한 풍습이 있었다. 이 풍습이 유럽에 소개되면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을 무례하다고 여겼던 19세기 빅토리아 시대(1837~1901) 영국에서 꽃말은 그야말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이 시기 꽃말은 꽃의 종류와 색, 배치로 감정을 전하는 ‘플로리오그라피(Floriography)’라는 체계로 발전했다. 당시의 꽃다발은 보낼 때부터 받을 때까지 세심한 규칙에 따라 읽어내야 하는 ‘암호 통신’과도 같았다. 사랑의 고백이나 사과, 단호한 거절 등 전하려는 의미가 꽃의 종류와 색깔은 물론 꽃을 건네는 손이 어느 쪽인지, 리본 매듭을 어디에 묶었는지에 따라 달라졌다. 행동 하나하나에 숨겨진 메시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수많은 꽃말 사전이 출간되면서 누구나 꽃 한 송이로 속마음을 전하거나 해석할 수 있게 되었다. 꽃을 받는 사람이 어떤 사전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내서, 그 사전에서 정의한 의미를 가진 꽃을 보내기도 했단다. 산업혁명이 정점에 달했던 시기인 만큼, 온실 기술의 발달로 도시 어디서든 사계절 내내 꽃을 구할 수 있게 되면서 꽃말은 일상의 언어가 되었다.

꽃말의 역사를 더듬으니 세계적인 꽃 배달 서비스인 ‘미국꽃배달협회(FTD, Florists’ Telegraph Delivery)’의 전설적인 슬로건 ‘꽃으로 말해요(Say It With Flowers)’의 탄생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미국꽃배달협회(FTD)는 1910년 미국에서 설립된 세계 최초의 꽃 배달 전문 협회이다. FTD는 당시에는 혁신적이었던 전신망(Telegraph)을 활용해 먼 곳까지 꽃을 보내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A 지역의 화원이 B 지역으로 꽃을 보내 달라는 주문을 받으면, B 지역에 있는 화원에 모스 부호로 메시지를 전송한다. 전보를 받은 B 지역의 화원은 주문대로 꽃다발을 만들어 배달하는 시스템을 만든 것이다. 이로 인해 미국 전 지역의 화원들은 물리적 거리와 배송 시간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었다.
FTD의 슬로건인 ‘Say It With Flowers’는 100년 넘게 사용되고 있는 광고 역사상 가장 장수한 슬로건의 하나이다. 이 슬로건은 1917년 보스턴의 광고인 패트릭 오키프(Patrick O’Keefe)가 미국 화훼협회 회장이었던 헨리 펜(Henry Penn)과 술을 마시며 나눈 대화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펜이 꽃으로 말할 수 없는 것은 없으며 꽃을 보내는 행동이 모든 것을 표현한다고 이야기하자 오키프가 그 말에 영감을 받아 슬로건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Say It With Flowers’는 1918년 FTD의 어머니날 광고 캠페인에 처음 등장했다. 그 후 영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의 광고와 매장 간판 등에 널리 사용되며 꽃 배달 서비스의 대명사가 되었다.
꽃으로 말해요(Say It With Flowers)

1980년대가 되면서 FTD는 당시 유명한 미식축구 선수 멀린 올슨(Merlin Olsen)을 모델로 내세워 적극적인 캠페인을 선보였다. 구매자가 상황이나 필요에 맞는 꽃을 쉽게 고를 수 있도록 각 꽃다발에 재치 있는 이름을 붙였고, 머그컵이나 토트백 같은 선물을 꽃과 함께 구성하여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다.
멀린 올슨이 조그만 꽃병을 들고, ‘키 195cm에 몸무게 111kg이나 나가는 저 같은 거구가, 왜 상대를 쓰러뜨리는 태클(tackling) 대신 기분을 맞춰주는 간지럼(tickling)’을 택했는지 아십니까?’라고 묻는 광고는 보는 이의 미소를 자아낸다. FTD는 계속해서 힘내요꽃다발(Pick-Me-Up Bouquet), 정말고마워꽃다발(Thanks-a-Bunch Bouquet), 커다란포옹꽃다발(Big Hug Bouquet) 등을 출시해, 이 말이 필요한 주변 사람에게 선물하라고 심각하지 않은 어조로 설득했다. FTD가 전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꽃으로 말하라고, 말로 다 하지 못한 마음을 대신 전해주는 것이 꽃이라고.
작은 꽃다발에 큰 마음을 담아보세요.
주변에 뭔가 잘 해낸 사람이 있다면, 가까운 FTD 꽃집에서 간지럼꽃다발(Tickler Bouquet)을 보내보세요. 티클러 꽃다발은 싱싱하고 알록달록한 꽃들을 부담 없는 가격에 즐겁게 담았습니다. “잘했어요!”라는 말을 꽃으로 전하기에 딱입니다.
비서에게 해피엔딩이 있는 선물을 보내세요.
FTD의 베스트셀러꽃다발(The Best Seller Bouquet)은 진짜 북엔드가 달린 가죽 장정 책 모양의 용기에, 싱싱한 꽃을 아름답게 담은 특별한 선물입니다. FTD 책상위꽃봉오리화병은 감사한 마음을 전하는 또 다른 참신한 방법입니다. 출장 중이라도 괜찮습니다. 가까운 FTD 꽃집에 전화 한 통이면 됩니다.

지금은 굳이 꽃에 숨은 꽃말에 마음을 숨겨 보내지 않아도 된다. 문자 한 번이면 마음을 전할 수 있고, 이모티콘 하나로도 감정을 드러낼 수 있다. 그래도 여전히 우리는 꽃을 보낸다. 기쁜 날에도, 슬픈 날에도, 말이 부족할 때에도. 꽃말을 몰라도 상관없다. 꽃은 그 자체로 이미 충분한 ‘소리 없는 말’이니까.
지금 내가 사랑하는 ‘내 사람들’에겐 어떤 꽃다발이 필요할까, 또 내게는 어떤 꽃말을 가진 꽃이 필요하지? 내맘대로 고르라면 음··· 나는, 빈둥빈둥꽃다발을 받고 싶다. 오랫동안 소식이 뜸해 보고 싶은 당신에게는 낮술한끼?꽃다발을 보내야겠다. 봄이 다 가기 전에 내 꽃이 당도하거들랑 두 팔 벌려 반갑게 맞아주시라. 얼굴 잊기 전에 어서 만나자고 정다운 기별도 잊지마시라!
글. 정이숙 Jeong, Yisuk 카피라이터

정이숙 카피라이터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카피라이터로 광고와 인연을 맺었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을 시작으로 한화그룹의 한컴, 종근당의 벨컴과 독립 광고대행사인 샴페인과 프랜티브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로 일했다. 지금은 디지털 마케팅 에이전시의 CD로 퍼포먼스 마케팅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응답하라 독수리 다방(2015)』, 『광고, 다시 봄(2019)』, 『똑똑, 성교육동화(2019)』 시리즈 12권, 『김민준의 이너스페이스(2020)』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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