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전히 어른이 되는 도중(途中) 2026.5

2026. 5. 31. 10:20아티클 | Article/정카피의 광고이야기 | AD Story - Copywriter Jeong

I Am Still on the Journey to Becoming an Adult

 

 

 

중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나는 이제 다 컸다고 생각했다. 겨우 만 열세 살, 발육도 덜 된 꼬마 주제에 엄마보다 내가 더 책을 많이 읽고 아빠보다 내가 더 영어 단어를 많이 안다고 그이들의 말을 귓등으로 들었다. 스물이 된 나는 세상을 다 아는 것처럼 교만했다. 등록금 한번 스스로 벌어본 적 없는 주제에 밥벌이에만 급급한 기성세대에게 분노했다. 그러다 마흔이 되어서는 어릴 때 그리던 근사한 마흔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나를 마주하고 절망했다. 그 후로 또 이 십여 년이 흘렀는데 나는, 사는 일이 여전히 낯설고 여전히 자신이 없다.

어른은 누구일까? 내가 어른이 되었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동일본여객철도(JR동일본)의 포스터를 보면 말없이 술잔을 기울이거나 꽃을 조용히 바라보는 행동이 어른됨의 증거일 수도 있는 모양이다. 

 

어른은 누구나, 여행의 도중.


어른이란 무엇일까?
어느덧 나이도 꽤 들었고,
가끔은 그런 생각을 멍하니 하게 된다.
말없이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일까?
꽃이나 불상을 조용히 바라보는 모습일까?
이제는 이상적인 모습도 하나가 아니고,
그 답은 쉽게 찾기 어렵다.
어른이 된 지금도 우리의 여행은 계속된다.
고민과 불안은 끝이 없지만,
달라지는 풍경과 때로는 예상치 못한 길을 즐기면서.

 

JR동일본 _ 「어른의 휴일 클럽」 _ 인쇄광고_2025

 

JR동일본이 「어른의 휴일 클럽」을 홍보하기 위해 2025년 3월부터 새로 시작한 캠페인의 포스터이다. 「어른의 휴일 클럽」은 50세 이상의 여행객을 대상으로 2005년 5월 시작된 JR동일본의 회원제 서비스이다. 이 클럽의 회원이 되면 JR동일본 및 홋카이도 노선의 운임 할인과 전용 패스를 제공받는다. 또, 포인트 적립과 지역 문화 강좌에 초대받는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어른은 누구나, 여행의 도중(途中).’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기획된 2025년 캠페인은 도쿄역을 배경으로 한 ‘등장 편’을 시작으로, 부부가 함께 후쿠시마의 아이즈를 여행하는 TVCM을 공개하며 중장년층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자막) 오랜만에 아내와 후쿠시마로.
#지역의 전통 공예품 ‘아카베코(빨간 소)’ 인형에 눈을 그려 넣는 체험을 하는 부부
아내)       (남편의 작업을 보며) 진지하네. 응, 느낌 좋아.
남편)       눈이 중요하니까.
아내)       아, 그 정도로 크게 그리는구나.
#도심 속 사무실에서 정장을 입고 일하는 자신의 현재 모습을 떠올리는 남편
남편(O.V) 어느덧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젊은 시절 생각했던 어른과는 꽤 다른 것 같다.
                우리는 어떤 어른으로 살아가면 좋을까?
#호수에서 보트를 타는 부부
아내)        (보트를 젓는 남편에게)이제 어디로 가?
남편)        아직, 안 정했어.
자막)        어른이란 뭘까?
Na)          어른은 누구나, 여행의 도중.
                50세부터의 여행에, 어른의 휴일 클럽.
                JR동일본

 

JR동일본 _ 「어른의 휴일 클럽」_영상광고: 「후쿠시마•아이즈」 편 _ 2025

 

어른이 된 후에 뭐가 달라졌을까? 결혼을 하면 어른이 된 것일까, 부모가 되면 어른이라고 할 수 있나? 나는 언제 어른이 되었다고 깨달았지? 곰곰이 되돌아보니 내게 어른이 되어버렸다는 자각은, 대학을 졸업하는 순간 들이닥쳤다. 나 아닌 다른 ‘어른’들이 정해준 시간표대로 진학과 졸업을 반복하다가 대학문을 나서는 때가 되었을 때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다’라는 막막함을 느꼈다. 이제 아무도 내게 무엇을 하라고 강요하지 않겠구나, 빼도 박도 못하고 내 일은 혼자 알아서 책임지는 어른이 되어야 하는구나…. 자유로움보다 두려움이 컸다. ‘아름다운 자유’보다 복종이 더 달콤하다던 한용운의 시구(詩句)에 저절로 공감이 갔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나만 속수무책이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어른이 된 뒤에도 누구나 갈팡질팡하는지도 모르겠다. 광고 속의 부부는 다음 행선지가 어디인지도 아직 정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JR동일본은 한발 더 나아가 어른은 누구나 ‘여행의 도중’에 있는 존재이고 ‘어른이 되면 모두 변해간다’라고 위로한다. JR동일본의 2026년 광고는 어린 시절의 친구들이 중년이 되어 함께 여행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같이 떠난 세 친구 중 한 명이 갑작스럽게 조기 퇴직 소식을 꺼내기도 하고, 바닷가에서 자전거를 타며 과거의 사소하고 우스꽝스러운 기억을 끄집어내 서로를 놀리고 웃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심각한 얘기를 하는 순간에도 분위기는 가볍고 유쾌하다. 미성년의 시절을 동시에 겪은 뒤 비슷하게 나이 들어가는 친구와 여행을 한다면 미숙한 어른인 내 모습도 너그럽게 봐줄 수 있을 것 같다. 

 

자막)        후쿠시마 ․ 하마도리(福島 ․ 浜通)를 옛 친구와.
#식당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세 친구
Na)          어른이 되면 누구나 변해 간다.
남자 1)     나 회사 그만두려고 해.
남자 2)     뭐? 조기 퇴직?
#자전거를 타고 해변을 달리는 세 친구
남자 3)     그때 너, 뛰어서 도망갔잖아!
남자 2)     도망 안 갔거든. 그냥 편의점 갔던 것뿐이라고.
Na)          그래도 자전거 하나만으로 우리는 그 시절로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른은 누구나, 여행의 도중.
                50세부터의 여행에, 어른의 휴일 클럽.
                JR동일본

 

JR동일본 _ 「어른의 휴일 클럽」_영상광고: 「후쿠시마•하마도리」 편 _ 2026

 

어른이란 무엇인가? 나이로 부풀어 오른 어린 아이다. 
(What is an adult? A child blown up by age.)


프랑스의 작가 시몬 드 보부아르 (Simone de Beauvoir)의 정의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나이가 인간을 저절로 완성된 존재로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고 보았다. 사회는 일정한 나이에 이르면 책임과 역할에 걸맞은 안정과 확신을 갖추기를 기대하지만, 실제 인간은 그 기대만큼 단단해지지 않는다. 나이를 먹는 동안 달라지는 것은 신분과 책임의 크기이지, 불안과 망설임까지 함께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른이라는 말은 종종 성숙을 뜻하는 것처럼 쓰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흔들리고, 망설이며, 여전히 스스로를 이해하려 애쓴다.

JR동일본이 내세운 ‘어른은 누구나 여행의 도중’이라는 캠페인 슬로건은 보부아르의 통찰을 광고 카피로 옮긴 것처럼 보인다. 어른은 이미 완성된 사람이 아니라, 계속 움직이고 변하는 사람이라는 뜻일 것이다. 2025년 광고 속의 부부는 다음 행선지를 아직 정하지 못한 채 노를 젓고 있고, 2026년 광고에서 중년의 친구들은 갑작스러운 퇴직이라는 변화를 마주하면서도 옛 기억을 꺼내며 웃는다. 삶의 중요한 순간은 물론이고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우리는 자주 방향을 고민하고,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길을 만나며, 선택을 이어 간다.

나는 여전히 어른이 되는 도중에 있다. 드디어 나의 미성숙에 대한 변명을 찾았다. 아니, 변명이 아니라 위안이다. 삶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뜻이고, 여행이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니까. 나는 오늘도 어떻게 살아야 재미있을지 궁리하는 도중이고,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야 덜 억울할지 고민하는 도중에 있다. 정답은 없고 고민과 불안도 끝이 없다. 그래서 그럴수록 그렇기 때문에! 예상하지 못했던 길과 기대하지 않았던 풍경을 즐기는 수밖에. 오월 꽃 같은 계절부터 만끽해야겠다. 

 

 

https://www.youtube.com/watch?v=6TTXWWfbNs8
JR동일본_「어른의 휴일 클럽」_영상광고: 「후쿠시마•아이즈」 편_2025_유튜브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f4ZiKFH-IUY
JR동일본_「어른의 휴일 클럽」_영상광고: 「후쿠시마•하마도리」 편_2026_유튜브 링크

 

 

 

글. 정이숙 Jeong, Yisuk 카피라이터

 

 

정이숙 카피라이터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카피라이터로 광고와 인연을 맺었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을 시작으로 한화그룹의 한컴, 종근당의 벨컴과 독립 광고대행사인 샴페인과 프랜티브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로 일했다. 지금은 디지털 마케팅 에이전시의 CD로 퍼포먼스 마케팅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응답하라 독수리 다방(2015)』, 『광고, 다시 봄(2019)』, 『똑똑, 성교육동화(2019)』 시리즈 12권, 『김민준의 이너스페이스(2020)』가 있다.

 

abacab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