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의 건축] 건축에 대한 모든 것을 담아내려는 거대한 괄호 와이드AR 2026.9

2026. 9. 30. 10:30ㆍ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WIDE Architecture Report (AR)
A Giant Bracket Intending to Contain Everything About Architecture

 

1996년에서 2006년까지 발행되었던 ‘건축인 POAR’ 이라는 책이 있었다. 공간지의 편집장이었던 전진삼이 창간하고 주간을 맡았다. 월간으로 126호가 발행된 후 휴간되었는데, 올해 기준으로 30년 전에 시작해 10년간 지속된 것이다. 휴간 이후 약 1년을 준비하여 새로운 이름으로 창간한 것이 와이드AR이다. 때문에 창간호가 2008년인 점과, 발행 호수가 100호를 넘긴 점만 볼 것이 아니라, 그의 전신인 건축인 POAR를 함께 생각한다면, 전진삼을 중심으로 이어져 온 건축저널리즘의 계보는 올해로 30년에 이른다.

 

 

창간호의 시작에 실린 축하 메시지에는 방향을 잃고 헤매는 건축전문지들 가운데에서 자기 이야기만이 아닌, 상대를 인정하는 말을 통해 작가를 인정하고 평론가를 인정하는 새로운 장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 한국 건축을 담아내는 커다란 그릇이 되었으면 하는 이야기도 있다. 이에 대해 전진삼 발행편집인 겸 대표는 ‘처음 내디딘 걸음이 오래도록 꿋꿋하게 이어지도록 하겠다’고 답하고 있다. 발행 주기가 격월간으로 정해진 것에도 이러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꾸준히 더 다양한 이야기를 깊이 있게 다루기 위해 적정한 주기를 찾은 것으로 보인다.


책의 구성은 기존의 건축전문지의 느낌과 사뭇 다르다. 작품사진과 일부 도면을 필두로 설계자의 설명이 더해지는 구성에서 벗어나, 대담이나 집담회 형식으로 나눈 이야기가 많은 분량으로 실리고 비평글이 더해진다. 또한 건축사진가의 다큐 형식의 사진작업들을 비롯해 건축에서 한 발 더 나아간 분야를 다루려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이미 작품으로 인정받은 건축사뿐만 아니라, 신진건축사들을 비롯해 예비 건축사들의 이야기까지 귀 기울여주려는 노력도 보인다.


작품에 대한 글이 많고, 신진건축사들의 이야기와 계획 중인 작품에 대한 내용까지 다루는 점은 초반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또 한 가지 인상적인 것은 책의 초반부에 중소규모 건축사사무소들이 한 페이지씩 광고를 싣는 것이다. 다른 건축전문지에는 건축재료와 시공사들의 광고 비중이 높다고 생각되는데, 책 속에서 이야기의 주체가 되는 건축사들이 동시에 광고주가 된다는 것이 이 잡지를 아끼고 응원하는 또 다른 표현처럼 보였다. 그래서 와이드AR을 볼 때마다 본지(월간건축사지)에도 건축사님들이 광고를 한다면 같은 마음이 느껴지리라 생각한다.

 

창간호(2008.1~2월), 7호(2009.1~2월)

 

이야기장에서 등용문으로 - 땅집사향 세미나
와이드AR의 시작을 이야기하며 꼭 언급해야 할 세미나가 있다. 바로 ‘땅집사향‘이다. 땅과 집과 사람의 향기라는 뜻인데, 전진삼은 2006년 서울 신당동에 있던 임근배 건축사의 그림건축사사무소 사무실에서 그림건축의 직원 교육을 위한 내부 세미나로 땅집사향을 시작했다. 한 달에 한 번, 한 명(또는 한 팀)의 이야기손님을 초청해 건축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2006년 10월 이후 지속해 오며 시즌으로 구분하여 기획 주제는 조금씩 바꿔가고 있다.


초기에는 국내 건축책 저자를 초청했고, 건축과 연관된 전문지의 편집장이나 일간지의 문화부 관계자들을 초청하기도 했다. 2013년에는 ‘기획의 시대, FIELD-ISSUE-VISION’이라는 대주제로 건축기획을 다뤘고, ‘건축사진가 열전—이미지 건축의 거처’라는 별도 시즌도 진행되었다. 2014년에는 홀수 달에는 선배 건축사를 ‘Strong Architect’, 짝수 달에는 후배 건축사를 ‘Young Architect’로 초청해 세대를 교차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2016년부터는 ‘Architects in Korea’라는 이름의 건축사 초청강의가 중요한 축이 된다. 중견·원로, 국내에서 활동하는 외국 건축사를 비롯하여 새롭게 등장한 신진 건축사까지 폭넓게 거론하고 기록하고 있다.

 

225회 땅집사향 포스터
통권 100호, 2026년 1~2월

 

와이드AR의 시작을 이야기할 때 잡지보다 먼저 시작된 ‘땅집사향’이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실제로 전진삼은 땅집사향이 현장의 이슈를 다루는 하나의 ‘건축저널’이자 와이드AR의 모태 공간이었다고 회고했다. 잡지가 사람을 모은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 건축을 이야기하던 자리가 잡지로 이어졌다는 관점이다. 20년간 꾸준히 이어온 땅집사향은 점점 더 의미를 더하며, 좋은 작품을 완성하려 발버둥 치는 신진건축사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게 해 주어 주목받을만한 사람을 발굴해 그들의 생각과 작업을 건축계에서 주목하도록 해주는 작은 등용문 역할을 하고 있다.

 

더 넓고 깊어지기를, 그리고 계속되기를
와이드AR 창간 당시부터 내세웠던 관심은 지방(locality), 지역(region), 소수(minority), 진정성(authenticity)이었다. 이름 자체가 넓은 시선을 가지고 더 많은 것을 언급하고 주목하여 다루겠다는 선언이다. 유명한 건축물과 건축사만을 반복해서 소개하기보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건축사와 쉽게 주목받지 못했던 작업, 건축을 둘러싼 사회적 현상과 비평에도 지면을 내어주었다.

 

 

한 건축사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WIDE WORK, 특정한 건축적·사회적 주제를 끌어내는 WIDE ISSUE, 조금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다루는 WIDE DEPTH REPORT 등으로 초기 구성을 갖추었다. 넓은 시선은 유지하면서 작품을 보여주는 방식에 좀 더 적절한 방식을 찾아 조금씩 변화, 그리고 진화했다. 건축물을 ‘보여주는 잡지’보다 건축에 대해 ‘이야기하는 잡지’를 지향했던 셈이다.


건축비평과 연구자를 발굴하는 일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2008년에는 건축 역사와 이론, 미학과 비평 분야의 신진 연구자를 지원하는 심원건축학술상의 기획과 출판에 참여했고, 2010년에는 건축평론동우회와 함께 ‘와이드AR 건축비평상’을 제정하여 새로운 건축비평가를 찾으려 했다. 당선자를 뽑지 못한 해가 있었음에도 이러한 시도를 지속했다는 사실은 건축비평의 토양을 넓히려 했던 잡지의 방향을 보여준다. 심원건축학술상에 대해서는 기회가 되면 추후에 다뤄보도록 하겠다.


와이드AR을 소개하기에 약간의 불안감도 있었다. 오랫동안 건축비평과 글쓰기를 이야기해 온 잡지를 소개하다 자칫 내 졸필의 바닥만 드러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그래도 20년에 가까워지고 있는 와이드AR의 기록들을 살펴보며 작품 하나하나가 아닌 우리 건축계를 이끌어온 많은 분들의 고민이 담겨있는 것이 느껴졌다. 초기 와이드AR의 제호를 보고 있으면 WIDE의 ‘i’가 마치 등대처럼 보였다. (열쇠구멍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건축계의 다양한 이슈들을 비추겠다는 취지로 보였다. 그리고 올해 발행된 통권 100호의 표지에는 W( )DE라는 제호가 자리하고 있다. (64호부터 이렇게 표기되고 있음). 이제는 등대처럼 비추는 것을 넘어, 이상하리만큼 넓게 열려진 커다란 괄호 안에 수많은 건축 이야기를 담아내겠다는 의미처럼 읽힌다. 그 넓고 넓은 괄호 안에 더 많고 깊은 이야기가 담기길 바란다. 그리고 꾸준히 이어지리라는 것에는 의심이 없다.



 

글. 박정연 Bahk, Joung Yeon
본지 편집국장

 

 

 

박정연 건축사·그리드에이(Grid-A) 건축사사무소


건축사 박정연은 전북대학교 건축공학과와 서울대학교 대학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실무를 쌓은 후 그리드에이(Grid-A)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사회 속에서 건축의 역할과 이를 만드는 건축사들이 놓여진 상황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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