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비평] 크래커_크래커를 맛보는 세 가지 방법 2026.9

2026. 9. 30. 11:40ㆍ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Architecture Criticism _ Cracker
Three Ways to Experience the ‘Cracker’

 

서울을 방문한 외국 건축사들에게 도시를 안내하다 보면 익숙한 풍경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될 때가 있다. 특히 성수나 홍대 앞 같은 번화가를 함께 거닐다 보면, 격자형의 정돈된 도시에 익숙한 이들은 혼성적인 건물들의 형태와 크기, 매끄러우면서도 들쑥날쑥한 가로 경관을 보며 생경함과 호기심을 드러내곤 한다. 번화가의 오래된 소규모 상업 건물 입면은 언젠가부터 조적이나 타일 대신 갈바륨 강판과 미장재로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 몇 번의 접기와 용접, 미장으로 건물의 얼굴을 변신시키는 이 빠르고 가벼운 시공법은 SNS를 스크롤하며 새로운 장소를 소비하는 대중의 속도를 따라잡는 한편, 상업가로의 경관을 스마트폰 화면처럼 매끄럽고 평평하게 만들고 있다.


‘크래커(Cracker)’가 위치한 신촌 역시 이러한 특징이 집약된 장소다. 상업 및 숙박 용도의 이 건물은 두 개의 대형 쇼핑몰과 이들을 연결하는 스카이브리지 아래, 소규모 상업 건축물들로 채워진 혼성적 가로의 한복판에 자리한다. 그런데 노말은 매끄러움보다는 거친 질감을, 미장보다는 조적을, 평평함보다는 요철을 만드는 전략을 택했다. 그래서일까. 이 건물의 이름은 ‘크래커’다. 울퉁불퉁한 단면과 구멍, 노릇한 벽돌의 질감이 크래커를 연상시키는 한편, 그 작명에 담긴 설계 의도가 궁금해진다.


프로젝트 소개글에는 노말이 구현하고자 한 도시적 전략이 상세히 드러난다. “건물이 단순한 건축적 보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신촌이 다시금 문화적 활력을 되찾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라거나 “신촌의 화려한 상업적 맥락을 일정 부분 유지하면서도, 정돈된 입면과 공간 구성을 통해 다시금 문화적 교류의 장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라는 대목이 그러하다. 글로 명시되지는 않았으나, 노말은 설계 과정에서 고민한 도시적 전략을 ‘크래커’라는 이름으로 은유한 것으로 읽힌다. 그 은유의 결을 따라 독해를 시도해 본다.


얇고 바삭한 과자인 크래커는 단독으로 먹기도 하지만, 납작한 면 위에 다른 음식을 토핑(Topping)으로 얹어 먹기 마련이다. 모서리를 살짝 잡고 수프나 커피에 디핑(Dipping)하거나, 잘게 부숴 크럼블(Crumble)로 올려 먹기도 한다. 이처럼 크래커는 스스로의 개성을 지니면서도, 어떤 방식으로 조합되든 함께하는 음식의 질감과 풍미를 배가시킨다. (바스락거리는 특유의 식감과 소리는 덤이다.) 혹시 이러한 크래커의 다면적인 속성을 건물을 통해 구현하고, 이를 도시적 맥락으로 확장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은 아닐까. (※어원을 찾아보니 크래커는 항해를 떠나는 선원들이 장기간 보관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구멍을 뚫어 수분을 제거한 빵에서 유래했으며, 먹을 때 나는 바스락거리는 소리에서 그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건물이 면한 주 가로인 신촌로(폭 8m) 변 입면은 폭 약 10m, 높이 약 15m의 소규모임에도 저층부(1층), 중층부(2·3층), 상층부(4층)로 명확히 나뉜다. 주 입면은 얇은 조적 프레임 벽(비주얼라이저 패턴 1.0B 영롱 쌓기)이 중·저층부의 좌우를 감싸고 있으며, 중앙부는 창과 돌출된 보로 처리되어 있다. 소형 건축물임에도 볼륨과 입면을 삼단으로 구성한 것은, 여러 차례 증축을 거치며 다층적 형태를 갖게 된 기존 건물의 역사적 레이어를 대수선 후에도 남기기 위함으로 보인다.

 

<북측 전경> © 노경

 

입면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기존 구조체와 필지 경계선 사이의 좁은 공간에 세워진 조적 프레임 벽이다. 타공 패턴의 벽체가 양옆으로 서 있는 모습은 마치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앞을 내다보는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상하로 밀도를 달리하는 타공 패턴은 내부 계단실로 바스락거리는 빛의 질감을 떨어뜨리고, 길을 지나는 이들로 하여금 건물 내부의 행위와 구성을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들여다보게 한다. 이 독립된 외피는 가로변 다른 상업건물들처럼 ‘얇고 가볍다’는 속성을 공유하면서도, 타공을 통해 입면을 적극적으로 비워낸다. 이러한 비움은 건물 전면에 난립하는 간판 부착을 자제하게 만들고, (구멍을 통해 수분을 비워 오래 보관할 수 있게 한 크래커처럼) 건물이 정갈한 모습으로 오래 남아 신촌의 변화를 지켜보게 할 것이다. 프레임 벽 상부인 4층에서는 크래커 위의 토핑처럼 두툼한 볼륨의 구조가 드러난다. 직선의 프레임 벽 뒤에 숨어 있던 승강기실과 계단실이 곡면의 형상으로 올라서고, 셋백 된 4층의 창은 신촌의 풍경을 내다보는 전망대로 기능할 것이다.


다시 시선을 가로로 옮겨본다. 프레임 벽은 인접 건물들과 입면 선을 맞춤으로써 주변과 담백한 관계를 형성한다. 곡면 처리한 모서리와 프레임 벽 후면으로 돌출된 보 하부의 진입공간은 보행자를 자연스럽게 내부로 끌어들인다. 이러한 곡면 어휘는 실내로 이어져 협소한 공간 안에서 필요한 기능들을 밀도 있게 수용한다. 요철이 있는 크래커의 단면을 잡았을 때 안정감이 느껴지듯, 저층부의 디자인은 건물을 가로의 움직임과 경관에 밀착시킨다.


노말의 홈페이지를 살펴보면 이들은 프로젝트마다 항상 직관적인 이름을 부여해 왔다. 서촌의 ‘두꺼비집’, 강남의 ‘콘크리트 샌드위치’, 종로의 ‘콤포타블(Komfortable)’ 등 혼성적인 도시 맥락 속에 지어진 작업에서는 고지도로부터 대지의 과거 기록을 읽어내는 집요함이 드러난다. 도시의 역사와 맥락을 짚어내고 그 변화의 가능성까지 고민하는 노말의 치밀함이 ‘크래커’에도 겹겹이 담겨 있다. 개성 있는 이름들 뒤에 숨은 고민의 깊이를 가늠해 보며, 이들이 다음 프로젝트에서 펼쳐낼 새로운 전략을 기대하게 된다. 노말의 바람처럼 ‘크래커’가 신촌의 변화를 이끄는 시작점이자, 새로운 도시 문화 정체성을 형성하는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글. 지강일 Ji Kangil

한국예술종합학교

 

 

 

지강일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미국건축사(AIA)·LEED AP BD+C

 

한국예술종합학교와 하버드대학 디자인대학원(GSD) 졸업 후 Rafael Vinoly Architects, Perkins&Will, OMA 등에서 실무와 연구를 했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9년 김남주와 Studio DOHGAM을 설립해 환경과 기술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건축, 전시, 설치작업 등 영역을 넘나들며 활동하고 있다. 주요 프로젝트로는 서울도시건축전시관(공동), 춘천 버스 공영차고지, 한국-스위스 수교 60주년 기념전시(Good Design Award) 등이 있다.

 

ortebaum@kart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