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지면, 여전히 쓰이는 건축 1986년 9월호 『건축사』에 실린 이대유치원을 다시 보다 2026.9

2026. 9. 30. 10:50ㆍ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Old Site, Architecture Still in Use
Revisiting Ewha Womans Univ. Kindergarten Featured in Vol. September 1986 『Architect』

 

한때 『월간 건축사』의 지면을 채웠던 건축을 다시 만납니다. 시간이 흐르면 건축은 달라집니다. 건물의 표정이 달라지고, 주변의 도시가 변하고, 그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쌓입니다. 그리고 같은 건축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역시 달라집니다. ‘그해, 그달의 건축’은 과거의 지면을 오늘의 현장으로 불러오는 아카이브입니다. 오래전 소개됐던 건축 작품을 다시 찾아가고, 당시의 기사와 비평을 다시 읽으며, 그때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건축의 의미를 오늘의 시선으로 살펴봅니다. 과거의 기록과 현재의 현장이 만나는 자리. 그 사이에 흐른 시간을 통해 건축의 가치와 변화를 발견하는 만남을 이어가고자 합니다. 오늘, 오래된 기록을 펼쳐 다시 건축을 만납니다. <편집자 주>

 

월간 건축사 1986년 9월호(210호)에 게재된 이대유치원
1986년과 2026년

 

음악 애플리케이션은 몇 년 전 이맘때 자주 들었던 노래를 다시 꺼내주고, 사진 저장소는 잊고 있던 어느 날의 장면을 불쑥 보여주곤 한다. 그렇게 다시 만난 기록은 지나온 시간과 함께, 처음에는 미처 보이지 않던 의미를 새롭게 보여주기도 한다. 이번에는 그렇게 시간을 되짚어보듯, 1966년 창간 이후 이어져 온 『건축사』의 지면 가운데 40년 전 9월호로 돌아가 한 꼭지를 살펴본다.2)


1980년대에 들어서며 유아교육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제도적 지원도 본격화되던 시대적 흐름 때문이었을까. 1986년 9월호 『건축사』에는 ‘이대유치원’과 ‘찬해유치원’, 두 개의 유치원 작품이 나란히 실려 있다. 그중 이번에 다시 들여다본 것은 (주)정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의 이대유치원이다. 오래된 흑백 지면에는 당시의 사진과 도면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인쇄는 다소 흐릿해졌지만 나란히 이어진 박공지붕과 커다란 아치창의 윤곽은 여전히 선명하다.


지면을 넘기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단일한 형태보다 서로 다른 기하학적 요소들이 한 건물 안에서 맞물리는 방식이었다. 정면을 이루는 주요 요소는 반복되는 박공지붕과 커다란 아치창, 사각형의 격자창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들은 입면 위에 평면적으로 놓이는 데 그치지 않는다. 박공면은 지붕선에서 한 번 끊기며 상부의 삼각형 윤곽을 또렷하게 만들고, 그 아래로는 벽면 밖으로 돌출된 원형기둥이 입면에 깊이를 더한다. 서로 다른 크기와 깊이를 가진 요소들이 겹쳐지며 하나의 정면을 만든다.


기하학적 변주는 정면에만 머물지 않는다. 도면을 따라 측면으로 돌아서면 크고 작은 원형창이 나타나고, 배면에서는 곡선계단을 둘러싼 촘촘한 격자창이 반원형으로 휘어 기둥과 보의 사각 프레임 안에 놓인다. 하나의 정면에서 모든 것을 보여주기보다, 건물을 따라 움직이며 시선이 옮겨질 때마다 직선과 곡선, 원형과 사각형이 서로 다른 관계로 다가온다.


이처럼 형태를 나누고 관계를 맺는 방식은 공간 구성에서도 드러난다. 외부에서 하나의 큰 매스를 여러 박공으로 나누었듯, 내부에서도 원아실은 하나의 균질한 공간으로 묶이기보다 각각의 영역을 이루며 홀을 통해 연결된다. 입면에서 읽히던 기하학은 내부에서 공간의 경험으로 이어져, 박공지붕의 경사는 높은 박공 천장으로 나타나고 아치창과 원형창은 서로 다른 크기와 형태로 빛과 시선을 받아들인다. 배면의 사각 프레임 안에 놓인 반원형 격자면의 안쪽에서는 계단과 난간이 곡선을 따라 휘어 오른다. 밖에서 보았던 기하학적 선과 면은 안에서 높이와 개구부, 동선의 흐름으로 체감된다.


결국 이 건물에서 기하학은 외관을 꾸미는 데에만 머물지 않는다. 큰 덩어리를 나누고 각 부분에 서로 다른 성격을 부여하며, 다시 홀과 계단으로 관계를 맺는 공간 구성의 방식으로도 이어진다. 이것이 당시 설계자가 어린이의 호기심을 위해 의도한 장치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시선과 움직임에 따라 공간이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읽힌다는 점은 4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인상적이다.


지면을 따라 건물을 한 바퀴 돌아본 뒤 이 건물의 지금이 궁금해졌고, 찾아보니 이대유치원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 남아 유치원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흑백 지면에서 보던 건물을 실제로 마주하니 인상은 훨씬 따뜻했다. 40년 전 지면에서 보았던 박공지붕과 아치창, 원형창과 배면의 조형은 실제 건물에서도 여전히 확인할 수 있었고, 평면과 입면 위의 선으로 접했던 요소들은 크기와 깊이, 재료를 가진 입체적인 모습으로 다가왔다.


외부에서만 살펴본 만큼 내부의 현재 모습과 세부적인 변화까지는 직접 확인할 수 없었지만, 분명한 것은 이 건물이 40년이 지난 지금도 아이들을 맞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건축이 오래 남는다는 것은 완공 당시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존하는 것만을 뜻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안에서 생활과 쓰임이 끊이지 않고, 새로운 세대가 같은 공간을 다시 사용하는 것 또한 건축이 시간을 이어가는 한 방식일 수 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장소조차 쉽게 사라지는 요즘, 건물이 사라지면 그곳에 얽힌 풍경과 기억도 함께 희미해진다. 그런 시간 속에서 40년 전 계획된 건축이 여전히 같은 용도로 사용되며 새로운 아이들의 일상을 품고 있다는 사실은 건축사로서 꽤 낭만적으로 다가온다. 오래된 『건축사』에는 건물의 첫 장면이 남아 있고, 실제 건물에는 그 이후의 생활이 이어지고 있다. 40년 전 지면에서 만난 건축이 지금도 살아 있는 장소라는 사실만으로도, 오래된 기록은 꽤 반가운 현재가 되었다.




글·사진. 이수정 Lee Sujung
건축사사무소 우주

 

 

이수정 건축사 · 건축사사무소 우주

 

홍익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졸업 후 (주)황두진건축사사무소와 주식회사다올건축사사무소에서 국가유산부터 동시대 건축까지 두루 경험한 뒤, 현재는 건축사사무소우주를 운영하고 있다. 건축이 놓이는 장소와 시간을 세심하게 살피며, 오래도록 자연스럽게 남는 건축을 만들고자 한다.


architects_uju@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