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의 건축] 도무스 코리아 2026.10

2026. 10. 31. 10:25ㆍ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domus
Korea

 

1928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건축가 지오 폰티가 창간한 domus는 세계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건축·디자인 잡지 가운데 하나이다. 라틴어로 ‘집’을 뜻하는 이름처럼 건축에서 출발했지만 가구와 제품, 예술과 생활문화까지 영역을 넓혀왔다. 알레산드로 멘디니를 비롯한 여러 건축가와 디자이너가 편집을 이끌었고, 거의 한 세기에 가까운 시간 동안 세계 건축과 디자인의 변화를 기록해 왔다.

이러한 domus의 한국 로컬 에디션으로 2018년 11월 창간된 잡지가 도무스 코리아이다. 최욱 이탈리아 건축사가 발행인을 맡아 0호에서 시작해 11호까지 12권을 만들었다. 책의 내용이 너무 좋아서 12권으로 마친 것이 사뭇 아쉽지만, 이탈리아의 유서 깊은 잡지가 한국에 소개되는 동시에, 한국의 미감을 해외에 전하는 위대한 여정이었다고 생각된다.

 

 

발행 기간 동안 구독한 경우, 정기적으로 배송받을 수 있었다. 사진은 이중 포장용 골판지 박스

 

번역판이 아닌 새로운 도무스
도무스 코리아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이 책이 단순한 domus의 번역판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90여 년간 축적된 도무스의 수많은 기사 가운데 각 호의 주제에 맞는 글과 작품을 다시 찾아내고, 여기에 한국의 전통건축과 근현대 건축, 그리고 동시대의 건축과 디자인을 함께 담았다.


그러다 보니 한 권 안에서 서로 다른 나라와 시대의 건축이 자연스럽게 만난다. 오래전 domus에 소개된 해외 건축이 지금의 한국 건축과 나란히 놓이기도 하고, 한국의 고건축 사진 사이에 현대건축이 등장하기도 한다. 과거의 기사를 다시 싣는다는 의미의 아카이브라기보다 오래된 자료를 지금의 질문에 맞추어 다시 읽어내는 편집에 가깝다.


12권 전체를 관통하는 큰 주제는 ‘Korean Aesthetics, 한국의 미감’이다. 한국적인 건축이 무엇인지 형태나 재료 몇 가지로 정의하기보다 매 호 하나의 단어를 꺼내 여러 시대와 분야의 작업을 함께 바라보는 방식을 택했다.


0호의 주제는 ‘담다, 펼치다(Enfold, Unfold)’이다. 김중업의 이경호 주택과 정재헌의 양평 펼친 집이 등장하고, 오스카 니마이어의 카노아스 주택, 리나 보 바르디의 유리의 집, 발레리오 올지아티의 알렘 주택처럼 서로 다른 시대와 지역에서 만들어진 건축이 함께 놓인다. 개별 작품만 보면 이미 다른 책에서 접했던 건축도 있지만 ‘담다, 펼치다’라는 하나의 주제 아래 다시 모아놓으니 작품 사이에서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관계가 생긴다. 이것이 도무스 코리아를 읽는 재미 가운데 하나이다.

 

 

2호에서는 ‘공감각(空感覺)’이라는 조금 낯선 단어를 꺼낸다. 흔히 여러 감각이 동시에 작용한다는 공감각(共感覺)을 떠올리지만 이 책에서는 ‘빌 공(空)’자를 쓴다. 비어 있는 공간 안으로 빛과 소리, 냄새와 촉감 같은 여러 감각이 들어오고 나가는 상태를 이야기한다. 사진가 구본창의 사진과 김수근의 경동교회, 피터 매클리의 라 콘준타 뮤지엄, 제임스 터렐의 작업, 스튜디오 뭄바이와 최욱의 가파도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 등이 한 권 안에서 만난다. 서로 닮지 않은 건축들을 형태가 아닌 ‘감각’이라는 기준으로 묶어놓은 것이다.


5호의 ‘안팎(Anpak)’은 우리말로 너무나 익숙한 단어지만 건축에서는 꽤 근 본적인 질문이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안과 밖이 구분되지만 한국의 전통공 간에서는 그 경계가 그렇게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대청과 마루, 툇마루와 마당처럼 안이 밖으로 이어지고 밖이 다시 안으로 스며드는 공간이 존재한다. 이 호에는 명재고택, 운조루, 일두고택, 허난설헌 생가, 선교장 등의 사진이 실 렸다. 여기에 아일린 그레이, 리나 보 바르디, 가에 아울렌티, 샤를로트 페리앙 등의 작업과 이엠에이 건축사사무소의 최만린미술관, 건축사사무소 김남의 쿼드, 최욱의 소전서림 등이 함께 등장 한다.


8호 ‘터(Ground)’와 10호 ‘땅(TTang)’은 이어서 살펴보아도 재미있다. 터는 사람이 자리를 정하고 건축을 놓는 행위와 관계되고, 땅은 그보다 더 근원적인 건축의 출발점으로 확장된다. 8호의 앞뒤에는 향단, 도동서원, 도산서원, 옥산서 원 등의 사진이 등장하고, 알바로 시자의 레싸 다 팔메라 해수풀장, 제프리 바와의 루누강가를 거쳐 최욱의 3.1 빌딩과 에브리 아키텍츠의 중림창고 등의 작업이 등장한다. 국적도 시대도 다른 건축이지만 땅을 어떻게 읽고 건축을 어떻게 앉힐 것인가라는 질문 으로 바라보면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건축을 하나의 물체로 바라보기 보다 그것이 놓이는 땅과 주변과의 관계에서 이해하려는 태도가 12권 전체를 관 통하는 중요한 흐름 가운데 하나로 보인다.


사진으로 다시 보는 한국건축
도무스 코리아에서 글과 건축작품만큼 눈길을 끄는 것은 한국의 전통건축을 담은 사진이다. 매 호 주제에 맞추어 고택과 정원, 서원과 궁궐, 도시와 땅을 촬영한 사진들이 책의 시작과 끝, 그리고 프로젝트 사이사이에 들어간다. 단순히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사진이라고 하기에는 사진이 차지하는 비중도 크고 완성도도 높다. 이 연재글을 본 책을 좋아하시는 분 여럿이 도무스 코리아도 소개하면 좋겠다고 이야기하는 이유 역시 이 사진들 때문으로 보인다. 또한 책이 절판된 이후 전체 12권 세트를 판매하는 사람도 거의 없는 것과, 구입가격 대비 중고책이 더 비싼 것도 책의 예술적 가치를 증명해 보이고 있다.


5호만 하더라도 명재고택, 운조루, 일두고택, 허난설헌 생가와 선교장을 보여주는 별도의 화보가 구성되어 있다. 건축물 전체를 정확하게 기록하는 일반적인 건축사진과는 조금 다른 느낌을 준다. 기둥과 벽, 처마와 마당, 그 사이의 빈 공간과 빛을 보여주면서 각 호가 이야기하려는 하나의 감각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12권을 차례로 펼쳐놓고 이 사진들만 다시 살펴보아도 또 하나의 한국건축 사진집처럼 읽을 수 있다.

 

 


12권으로 완성된 한국의 미감
마지막 11호의 주제는 ‘합(Hahb)’이다. 김종성과의 인터뷰와 서울 힐튼호텔 아카이브, 한국 모더니티에 대한 글, 그리고 지난 호에 참여했던 많은 사람들의 장소와 사물에 대한 기억이 담겼다. 마지막에는 최욱과 윤희영이 ‘합, 한국의 미감’을 주제로 대화를 나눈다. 0호의 ‘담다, 펼치다’에서 시작했던 이야기가 마지막에는 ‘합’이라는 단어에 도착한 셈이다.


도무스 코리아는 12권밖에 발행되지 않았다. 하지만 처음부터 ‘Korean Aesthetics, 한국의 미감’을 주제로 3년간 12권을 제작하기로 계획했다. 그렇게 표지생각하면 매달 새로운 정보를 전달하다 사라진 잡지라기보다 하나의 질문을 12개의 주제로 나누어 탐구하고 마침표를 찍은 시리즈처럼 느껴진다.


무엇보다 이 책에는 한국 건축을 세계 건축의 주변부에 놓지 않으려는 태도가 있다. domus라는 90년 넘는 거대한 아카이브에서 필요한 것을 꺼내오면서도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한국의 전통건축과 근현대 건축, 동시대의 디자인과 나란히 놓았다. 그 사이에서 무엇이 닮았고 무엇이 다른지를 독자가 스스로 발견하게 한다.


그래서 도무스 코리아는 발행 당시의 새로운 건축을 확인하기 위해 보는 잡지라기보다 시간이 지난 지금 다시 펼쳐보았을 때 더 흥미로운 책인지도 모른다. 12권의 책장 사이에서 ‘한국적인 건축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직접적으로 정의하지 않으면서도 끊임없이 묻고 있기 때문이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12권 어디에도 한 문장으로 적혀 있지 않다. 대신 터와 땅, 안과 밖, 비어 있는 공간과 오래된 건축의 사진 사이에 흩어져 있다. 그것을 다시 찾아보는 일이 지금 이 책을 펼쳐볼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글. 박정연 Bahk, Joung Yeon
본지 편집국장

 

 

 

박정연 건축사·그리드에이(Grid-A) 건축사사무소


건축사 박정연은 전북대학교 건축공학과와 서울대학교 대학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실무를 쌓은 후 그리드에이(Grid-A)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사회 속에서 건축의 역할과 이를 만드는 건축사들이 놓여진 상황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laquin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