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9. 30. 10:40ㆍ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The Humanities of Hanok Viewed From the I Ching (Book of Changes)
Toegye Embraces the Universe at Jeongudang Pond
연재순서
1. 서론 –역사적 고찰
2. 퇴계, 9자 연못에서 우주를 품다
3. 8각 기둥의 교훈을 실천한 남원 몽심재
4. 경복궁 아미산 굴뚝은 왕비의 수신서(修身書)
5. 두 개의 섬이 있는 보길도 세연지
6. 도산서원 기숙사의 방문짝 수는 왜 다를까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서원 9곳 중 주향자 본인이 관여한 곳은 세 곳이다. 돈암서원은 주향자인 김장생이 양성당을, 부친인 김계휘가 경회당을 지어 후학을 양성하던 곳인데 그의 사후 3년 뒤 두 건물을 중심으로 서원을 조성하였다. 병산서원은 하회 풍산 유씨 가문의 교육기관으로 주향자인 유성룡이 생전에 병산서원 터에 자리 잡은 후, 사액서원이 되었다. 나머지 한 곳이 도산서원이다. 이곳은 주향자인 퇴계 이황의 거소가 남아 있는 유일한 곳이다.
퇴계의 도산기(陶山記)를 보면, 그는 벼슬을 버리고 은거하고자 세 번이나 집을 지었으나 모두 실패한 후 네 번째 찾아낸 곳이 지금의 도산서원이다. 그는 이곳에 4년에 걸쳐 도산서당을 짓고 이후 제자들의 기숙사인 농운정사를 완성하였다. 도산서당이 중요한 것은 서원의 주향자로서 실체적 삶을 찾아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 때문이다.
도산서당은 방 한 간, 마루 한 간 부엌 한 간의 세 간 짜리 검박한 집이다. 방은 완락재(玩樂齋)라 하는데, 이는 주세붕의 명당실기(明堂室記)에서 차용한 것으로 ‘완상하며 즐기니 이곳에서 평생토록 지내도 싫지 않겠다’는 뜻이다. 마루는 암서헌(巖棲軒)이라 하였는데 이는 ‘학문에 대한 자신을 오래도록 가지지 못한 바, 바위에 깃들어 조그마한 효험이라도 바란다’는 뜻이다. 이렇듯 자신이 고른 땅에 대한 은근한 자부심과 자신의 학문에 대한 겸손은 도산서당의 시에서 온전히 드러난다. 1, 2, 3연에서 ‘순임금과 도연명을 따라갈 수는 없다’면서도 마지막 4연에서는 ‘백수로 돌아왔으니 이에 숨어 살겠다’ 고 자신의 심경을 진솔하게 털어놓는다.


퇴계의 자상함과 사랑은 서당 동쪽 화계에 매화, 대나무, 국화, 소나무를 심어 절우사(節友社)라 이름 짓고, 서당 앞 몽천(蒙泉)은 물론 서당을 출입하는 사립문에까지 미친다. 사립문은 초가삼간에 사는 백성들 집에 싸리로 만든 보잘것없는 문이다. 그런데도 주역에서 글귀를 가져와 유정문(幽貞門)이라 명명하고, 또 시를 지었으니, 2연과 4연에서 ‘새로운 기운이 사립문에 비치누나/ 유정한 데에 도가 있어 평탄함을 깨닫겠네’라고 읊조린다. 이처럼 퇴계에게 있어서 도산서당과 주변의 자연은 단순히 머무는 공간이 아니라 성리학적 이치를 깨닫고 실천하는 수양의 장소였는데, 그 방점은 작은 연못인 정우당에 있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위 9개의 서원 중 네 곳에 연못이 있는데, 소수서원의 탁청지는 한 변 길이가 40m나 되고, 남계서원도 8평 정도의 연못이 2개소에 있으며, 병산서원 광영지도 폭은 좁지만 가운데 섬까지 있는 장방형의 천원지방 연못이다. 그런데 도산서당 마루 아래쪽에 있는 작은 연못은 이들에 비하여 턱없이 작아 섬조차 없다. 그래도 퇴계는 정우당(淨友塘)이란 이름을 붙이고 이를 찬양하였다. 정우당은 다른 연못과 달리 다듬은 화강석으로 상부를 마감하여, 정갈하기 그지없다.
物物皆含妙一天 만물은 저마다 하늘의 묘한 이치를 머금었거늘
濂溪何事獨君憐 염계는 어찌하여 그대만을 사랑했던고
細思馨德眞難友 향기로운 덕 곰곰이 생각하니 참으로 벗하기 어려워
一淨稱呼恐亦偏 오직 깨끗하다 일컬음 또한 치우칠까 두렵구나
퇴계는 이 시를 통하여 성리학의 태두인 염계 주돈이의 ‘나는 오직 연꽃을 사랑한다’는 애련설을 논하면서, ‘나는 깨끗하다는 쪽으로만 치우칠까 두렵다’ 고백하고 있다. 그렇다면 연꽃의 십덕(十德)도 넘어서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하려면 다른 서원처럼 좀 더 크게 만들어 제자들도 함께 즐기며 연꽃의 십덕(十德)을 가슴에 새기게 해야지, 검약도 좋지만 이건 너무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퇴계가 도산서당은 물론 기숙사인 농운정사도, 공부 잘하라고 공(工)자 형태로 설계한 사실을 알게 되자, 정우당을 작게 만든 이유도 실측해 보면 실마리를 풀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실측 결과, 한 변의 내부 길이는 2.7m로 정방형이었다. 미터법에 의한 2.7이란 숫자는 의미가 없다. 그러나 조성 당시의 척관법으로 환산하면 9자, 즉 9라는 숫자를 마주하게 된다.
9는 주역에서 양의 극치로 궁극과 완성을 뜻한다. 천문지리에서도 하늘을 구천(九天)이라 함과 같이 우주적, 상징적으로 완전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퇴계는 연못의 9라는 의도된 수치를 통하여 양의 극치이며 우주적 질서를 모두 담은, 현실적으로 가장 작지만 가장 큰 연못을 만든 것이다.
퇴계는 작은 연못에서 피어나는 몇 송이 연꽃에서 천만 송이 보다 더 많은 연꽃을 완상 하면서 혼자 그윽한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가장 작은 9자와 연못에서 이와 비교할 수 없는 우주적 평안을 얻었을 것이다.
9자 정우당을 보며, 세상은 물질에 있지 않고 정신에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글. 장양순 Chang, Yangsoon
前 본협회 이사 및 감사·본지 및 대한건축사신문 편집국장·건축사사무소 창건축

장양순 건축사, Columnist · 건축사사무소 창건축
홍익대 및 동 대학원에서 한국건축사를 전공하고, 대한건축사협회의 임원으로 본지 편찬위원장, 건축사신문 초대 편집국장과 건축문화대상 시행위원장을 역임하면서, 홍익대, 강원대, 명지대 및 한서대에서 40년 간 제자를 육성했다. 저서로 『한옥 건축학개론과 시로 지은 집』, 『툇마루 한담』 등이 있고, ‘본 협회 50년사’ 건축사지 500호 별책 등을 편찬했다. 가곡 ‘논개’, 동요 ‘무지개 떴다’, ‘건축사 찬가’ 등 작곡 활동과 더불어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cyss11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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