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 혁명 시대와 미래 도시 공동 주거의 방향 2019.2

2022. 12. 15. 09:03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건축담론

 

도시의 공동주택

Architecture Discussion Urban Apartment House

 

 

 

편집국장 註

 

건축 담론은 너무 무겁지 않게, 논문처럼 딱딱하지 않으면서도 우리 건축계가 고민하고 있는, 또는 고민할 만한 키워드를 중심으로 전개합니다. 다양 한 관점과 생각들을 소개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아주 추상적 주제부터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부분까지 다루려 합니다. 가벼운 이야기부터 무거운 논쟁의 소재도 담으려 합니다. 물론 한 두 편의 글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거나 큰 힘을 발휘하지는 않겠지요. 그래도 우리는 생각의 기회를 한번 마련하고 싶었습니다. 가장 많은 건축사들이 보는 건축사지는 짧게라도 생각할 여지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모든 건축이 명작일 수 없지만, 철학이 바 탕이 되는 작품은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혹시라도 요청하시는 담론주제가 있다면 망설이지 마시고,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직접 참여하고 싶으신 분들의 연락도 좋습니다.

저희 지면의 한계 상 더 많은 토론을 하지 못하지만 여러분들께서 이 기회를 통해 확산시키고, 깊이를 다듬어 가시길 바랍니다.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and the Direction of Future Urban Apartment Housing

 

시대적 키워드인 4차 산업혁명은 ‘초연결’과 ‘공유’의 시대 진입을 의미한다. 첨 단기술의 발달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며 그 변화는 도시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그동안 우리 도시는 자원의 제약으로 발생하는 공간의 불평등을 감내해 왔 지만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초연결과 공유를 통해 도시의 오랜 난제를 풀어낼 수 있는 기회 역시 제공하고 있다.

도시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살고(live), 일하고(work), 여가와 문화(play) 를 즐기는 기능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이 속에서 교육과 산업이 자연스럽게 촉진되면서 도시는 기존의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수요에 대응하여 스스로 진 화해 왔다. 이러한 기능의 변화는 도시의 물리적 공간형태의 영향을 받아왔으며, 그 영향은 대체로 업무와 산업, 여가 공간에서 이루어져 왔다.

연결과 공유의 관점에서 도시 주거에 대해 생각할 때가 되었다. 공유와 개방, 다 양성, 도시재생 등 공간에 대한 패러다임의 변화는 주거유형의 다양화를 요구하 고 있다. 그러나 주거 공간은 우리 도시의 대부분을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물리적 으로는 변화에 적응하기 어려운 대규모 아파트 단지 형태가 절반을 차지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더 나은 주거환경을 원하는 사용자의 선호와 대량공급을 동시에 해결하려는 주택정책에 힘입어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지속적으로 확대 재생산되어 왔다.

 

그림 1 르코르뷔지에의 빛나는 도시(출처: http://www.fondationlecorbusier.fr/corbuweb/)

 

아파트 역시 과거 산업혁명의 산물이다. 20세기 초 산업혁명에 따른 급격한 도 시 인구 증가 등 대변혁은 도시에 새로운 주거형태를 요구했다. 이에 르코르뷔지 에(Le Corbusier)는 미래의 이상도시인 “빛나는 도시 (Radiant City, 1935)” 와 도시공동주거인 “유니테 다비타시옹(Unité d’Habitation)”, “조경녹지 위의 아파트(Towers in the park)” 개념을 제시하였다. 르코르뷔지에의 계획은 서 구 도시에서도 국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여러 논란이 있어왔고 평가도 극단적 으로 나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개념이 가지는 중요한 의미는 도시건축 을 통하여 산업혁명을 일상생활과 연결해낸 혁신을 가져왔다는 것과, 도시를 산 업의 수요처와 시장으로 만들어낸 건축의 산업으로서의 역할이다.

 

르코르뷔지에의 아파트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아파 트와 아파트 단지는 도시화와 산업화가 급격하게 이뤄진 80년대에 주거 공급의 일환으로 양적인 증가와 정책실현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90년대 이후에 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아파트의 고급화가 이루어지면서, 단지 내 커뮤니티를 강조 한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초고층주상복합건물의 개발과 공급을 촉진하기도 했다. 이 같은 대규모 주거 단지들은 거주 환경과 주거 문화를 한 차원 끌어올렸다는 긍 정적 평가와 함께 도시 주거의 대표적 유형으로 계속 확대되고 있는 추세이다.

그림 2 재개발로 인한 기존 가로체계의 변화(위) 및 기형적 필지 전환(아래)

이 같은 긍정적 평가의 이면에는 대규모 아파트단지이기 때문에 나타날 수밖에 없는 문제점들이 누적되어 새로운 도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기성시가지에 들어선 대규모 아파트단지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기성시가지에서 재개발과 정비사업을 통하여 수백에서 많게는 수천 개의 집과 필지가 통합되고, 수십 개의 길들이 사라져 하나의 아파트단지가 만들어져왔다. 오랜 기간에 걸쳐 우리는 좋은 도시를 만들고 합리적인 시가지 조성을 목적으로 토지구획정리사업을 추진해왔다. 노력의 결과로 체계적이고 정연한 길과 개방적 인 블록들이 만들어졌지만, 대규모 아파트 재개발·재건축 사업으로 필지와 가로 체계를 기형적으로 변화시켰다. 도시 조직과 가로 체계는 오랜 기간 도시의 변화 를 반영한 역사적 산물이다. 도시의 이동패턴과 생활권을 반영하고 있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인한 도시 조직의 급격한 변화는 도시 전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최근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 개발은 내부 지향적 공간구성과 폐쇄적 인 단지계획으로 기존 가로체계와 도시 조직을 무분별하게 변형시키고 있다.

특히, 아파트 단지들의 게이티트 커뮤니티(gated community)화에 의한 문제 들이 대두되고 있다. 우리는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게이티드 커뮤니티를 접할 수 있다. 최근에 조성된 아파트 단지를 방문하기 위해서는 담장으로 둘러싸인 단지 외곽을 따라 단지 입구까지 돌아가야 한다. 그 이후에도 입구에 위치한 경비실을 통과해야 하고, 아파트로 들어가기 위하여 보안 장치가 설치된 출입문을 통과해 야 한다. 외부 출입자들도 별 불편 없이 드나들고 시설을 이용할 수 있었던 1990 년대 아파트와 비교하여 상당히 폐쇄적인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이 같은 경향은 아파트 단지를 넘어 초고층 주상복합건물, 타운하우스 등 고급을 지향하고 보안 을 중시하는 단지일수록 심화되고, 다양한 유형의 주거로 확산되고 있다. 게이티드 커뮤니티는 보안과 안전 등의 확보를 위한 특수한 상황에서 필요할 수 도 있지만, 폐쇄적 환경과 단지의 조성은 기존 도시 생태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우선, 단지의 완결성을 위하여 조성된 폐쇄적인 환경은 도시 가로망을 단절시키 고 생활 인프라의 불균형을 야기할 수 있다. 매일 다니던 동네 길을 막아 조성된 아파트 단지들이 동네 사람들을 다닐 수 없게 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아파트 재개발을 통해 지역생활 인프라를 공급하여 주변지역과 공유하고자 한 재개발은 게이티드화 되면서 취지를 잃었다. 오히려 주변 지역의 주거 환경은 재개발된 아 파트와 더욱 격차가 벌어졌다.

또 하나의 큰 문제는 공동체에 대한 부정적 영향이다. 기존 주거지역과 아파트단 지간 격차로 인해 ‘동네’는 사라지고 공동체 의식도 약화되면서 아파트단지와 기 존 주거지 주민간의 사회적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외부사람들의 출입을 엄격 히 제한하는 것이 특정 계층의 고급 주택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고급화, 차별화를 강조한 부동산 홍보 전략으로 활용되어 폐쇄성 높은 게이티드 커뮤니티가 고급 주거단지라는 왜곡된 인식이 증가하면서 지역커뮤니티와의 단절과 계 층화를 심화시키고 있다. 비단 이 같은 경향은 아파트 단지나 주상복합건물에 국 한하지 않고, 단독주택까지도 영향을 주고 있다. 길과 사람의 눈높이에서는 높은 담장만 볼 수 있는 가로와 완벽히 차단된 ‘요새’와 같은 단독주택들이 좋은 건축 으로 인식되어 판교를 비롯해 신도시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

대규모 필지로 통합된 단지는 주변 환경 변화에 대응이 어려운 문제를 가지고 있 다.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진화하는 도시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여 지역과의 단 절은 심화되고 노후화가 빠르게 이뤄진다. 이미 서울 등 대도시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에서 이러한 문제를 경험하고 있다. 아파트 단지들이 현재와 같이 주거환 경과 단지 내 환경 개선에만 초점을 맞추어 재개발, 재건축이 이루어진다면 같은 문제가 또 다시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 같이 폐쇄적이고 사회적 단절을 야기하는 게이티드 커뮤니티를 공유, 상생, 소 통을 강조하는 시대흐름에 맞춰 재평가하고 개선 방안을 도출하기 위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게이티드 커뮤니티에 의하여 도시와 사회적 단절뿐만 아니라 범죄율의 증가로 이어지는 현상을 경험한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문제 해결을 위 한 다양한 계획적 연구와 시도들이 이뤄지고 있다. 게이티드 커뮤니티는 중국에 서도 ‘문금사구(門禁社區)’ 로 명명되어, 이에 따른 사회적 문제를 인식하고 해 결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일례로 우리에게는 시저 펠리(Cesar Pelli)의 뉴욕국제금융센터로 잘 알려진 ‘뉴 욕 배터리파크 시티(Battery Park City)’ 사례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배터리 파크시티는 대규모 단지형 개발 중심의 초기 계획을 맨해튼의 전통적 가로체계 를 연결한 블록단위 개발로 변경하여 공공환경의 질향상과 뉴욕의 도시정체성을 살린 성공한 부동산 개발 사례로 뉴욕의 도시개발방향과 새로운 도심주거모델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거, 업무와 상업, 여가문화 기능이 복합된 배터리파크시티는 전통적인 뉴욕의 도시블록을 활용한 소단위 블록 개발이 지역 도시조직과의 통합과 뉴욕의 도시 공간 형태 및 가로와의 연결을 통해 뉴욕의 도시정체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부동 산 개발 가치와 도시 유지 관리 및 운영 측면에서 수퍼블록 중심의 대규모 개발 보다 효과적임을 구체적으로 입증하였다.

 

이제 우리 도시 내에서도 대규모 아파트 단지보다는 기존 도시체계를 존중하고 계획에 반영한 새로운 아파트, 다시 말해서 새로운 도시공동주택 모델이 필요하 다. 아파트 단지는 장점과 단점을 모두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도시 주거의 대표 적 유형이고 우리에게 가장 익숙하고 선호하는 주거 형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게이티드 커뮤니티화 되어버린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좋다’, ‘나쁘다’와 같은 이분법적 접근이 아니라 좋은 도시 환경을 위한 고민과 모색의 일환에서 문제점 해 결을 위한 다양한 접근 및 시도와 함께 도시환경에서 지닌 장점을 구현하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도시환경과 공공활동에도 부합하는 새로운 형태의 주거와 도시에 적 합한 단지에 대한 건축적 고민 그리고 ‘공유’에 대한 개념을 구체적으로 계획에 반영하고 또한,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안전은 더욱 보호하되 단지 주민들만 사용 할 수 있는 공용시설과 지역 공동체에 개방해 함께 쓰는 시설을 함께 조성하는 새로운 건축이 필요하다.

 

그림 3 1969년 초기 계획(왼쪽), 현재 계획(오른쪽) 도시설계가이드라인을 통해 가로와 블록 등 기존 맨해튼의 도시체계와 새로운 도시개발을 조화롭게 연결 (사진 출처 왼쪽: https://www.skyscraper.org/millennium/bpc.php,오른쪽: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0103722&memberNo=21967255)

좋은 길이 많아야 좋은 도시다. 그러나 우리는 좋은 집을 갖기 위해 많은 길들을 없애 왔다. 길이 없어지는 것은 우리의 소중한 시간이 지워지는 것과 같다. 포르 잠파르크(Christian de Portzamparc)는 건축이 단절한 역사와 시간을 잇는 다리가 되어야 한다고 했고,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는 건 축사(Architect)는 미래를 예언하는 자라고 했다. 그들이 더 나은 오늘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듯이 우리도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기존 도시조직과 커뮤니티로부 터 단절되어가는 오늘의 우리 주거를 다시 들여다보아야 한다.

우리는 20세기 초 산업혁명의 시대를 놓치면서 건축과 도시 역시 서구 모델을 뒤 쫓아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21세기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국가 중 하나로 많은 분야와 산업을 주도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첨단기술은, 생산의 극대화를 대규모 아파트단지, 보안과 안전, 고급화와 차별화를 위해 선택할 수밖 에 없었던 게이티드 커뮤니티를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20세기 르코르뷔지에가 건축의 혁신을 통해 산업화에 기여한 것처럼 기성시가지와 연결 되고 공유하는 새로운 도시주거모델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글. 김도년 Kim, Donyun 성균관대학교 건축학과·미래도시융합공학과 교수

 

 

 

 

김도년 성균관대학교 건축학과·미래도시융합공학과 교수 현재 UN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선도거점대 학 대표교수이자 서울시 용산 도시재생사업 총괄 코디네이 터로 활동 중. 상암 디지털 미디어 시티(DMC) 총괄 계획가 및 MA, 2012 여수 세계 엑스포 총괄 계획가 등을 역임하였 으며, 제 4기 대통령직속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하였다. 그림 3 1969년 초기 계획(왼쪽), 현재 계획(오른쪽) 도시설계가이드라인을 통해 가로와 블록 등 기존 맨해튼의 도시체계와 새로운 도시개발을 조화롭게 연결 (사진 출처 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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