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후르츠 _ 진솔하고 소박한 인생의 아름다움, 그리고 건축이야기 2019.3

2022. 12. 15. 09:30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Life Fruit _ The beauty of honest and simple life, and the story of architecture

 

이 영화를 보면서 동시에 떠오른 것은 최근 드라마로 화제를 일으킨 스카이캐슬 이었다. 스카이캐슬이 성공과 돈이라는 욕망의 결정체를 향해 전력 질주하는 사 람들을 풍자한 드라마라면, 인생 후르츠는 잔잔하게 삶과 인생에 대한 진지함으 로 풀어나간 다큐였다. 다큐와 드라마라는 대조적 구성처럼 느끼는 감정 또한 이 질적이다. 건축이라는 직업은 매우 감정 기복이 심한 업종이다. 일반인들은 건축 이라고 하면 건설을 생각하지만, 건축의 본업에서 생계를 이끌어 내는 사람들은 건축은 건축 설계를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건축 설계는 단순히 아름다운 시각적 요소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철학을 바탕으로 시작된다. 그냥 그림이 아니라 그 안에 많은 생각과 철학이 담겨야 한다. 인생 후르츠의 주인공 할아버지는 90세의 고령이지만, 건축 설계를 하던 사람이다. 우리로 치면 LH쯤 되는 주택영단에서 평생을 일하고 은퇴한 연금 생활자다.

그리고 건축 설계는 단순히 아름다운 시각적 요소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철학을 바탕으로 시작된다. 그냥 그림이 아니라 그 안에 많은 생각과 철학이 담겨야 한다. 인생 후르츠의 주인공 할아버지는 90세의 고령이지만, 건축 설계를 하던 사람이다. 우리로 치면 LH쯤 되는 주택영단에서 평생을 일하고 은퇴한 연금 생활자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일본의 주택 영단은 직접 건축 계획과 설계를 주도해서 진행했 다는 점이다. 전문가 집단이다. 물론 우리도 주택공사 시절 적극적으로 새로운 도 시를 위한 건축 계획과 설계를 했었다. 그래서 시설이나 공사마감이 거칠지만 새 로운 도시에 대한 연구가 많았고, 실제 많은 건축으로 지어졌다. 과천과 광명에 타운하우스 타입의 연립주택이 지어졌었고, 상계동엔 공중 정원이 있는 아파트단 지를 만들기도 했다. 부산엔 요즘 말하는 테라스가 있는 아파트 단지도 연구했다. 사실 이런 노력들이 지속되어야 하는데, 주택공사에서 LH로 규모가 커지면서 과거와 같은 새로운 시도들이나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사업으로 주택을 바 라보는 것이 지배적이다. 마치 민간 시행사 같은 사업으로 새로운 시도들이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아쉽다. 이런 문제는 이 다큐에서도 나타난다. 5천명이 죽은 자 연재해를 극복하기 위해 대안으로 제시된 고지대의 뉴타운. 시즈쿠의 청년 시절 건축을 대하는 태도를 읽을 수 있었다. 다큐에서 다루고 있는 시즈쿠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 에피소드는 그냥 에피소드가 아니었고, 그의 인생 철학이었다. 건축하 는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고 희망하는 것이라고 할까?

 

 

그의 지인이 말한 에피소드는 갑자기 출근하지 않고, 몇 날 며칠을 연락 두절인 상태에서 죽어라고 마스터 플랜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 작업은 그에게 있어서 일생일대의 기회였고, 도전이었던 것 같다.

자연의 지형을 유지하고, 그 안에서 커뮤니티를 구성하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마 을. 자연과 호흡하는 마을을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이 부분을 보면서 여행 중 만 났던 미국 캘리포니아의 개발을 거부한 카멜바이더시 Carmel By The Sea 라 는 도시가 떠올랐다. 유명한 배우겸 감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개발을 반대하 는 공약으로 시장에 당선된 이색적 도시다. 도시 주민들은 나무들이 우거지고, 단 독주택들이 즐비한 도시를 개발하고자 하는 시 정책에 맞서며, 시골마을처럼 유 지하자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공약을 밀어주면서 시장에 당선시켰다. 초고층 아파트를 주장하고, 일조권이나 바람 길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부동산 가격 폭등만 기다리는 요즘의 우리 세태와 너무나 비교되는 일들이다.

놀라운 것은 30년이 지난 지금 카멜 바이더 시는 부자들이 많은 샌프란시스코 주 변에서도 가장 살고 싶어 하는 동네가 되었다는 점이다. 아무튼... 시즈쿠 할아버지 의 계획처럼 이 도시가 만들어졌다면, 아마도 지금은 일본에서 가장 살고 싶어 하 는 최고의 도시가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이는 우리나라에도 마찬가지다. 가끔 지방 지자체 관계자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본적이 없어서 그런지 이해를 못한다.

다시 다큐로 돌아가서 세상은 시즈쿠 할아버지의 계획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경 제성과 사업성을 앞세워서 소위 말하는 성냥갑 아파트들이 열을 지어 세워졌다. 공사비가 더 드는 언덕이나 구릉은 모두 밀어버리고, 도로는 간단하게 만들었다. 이 부분에서 어쩌면 우리나라도 이리도 똑같은지... 내용보다는 그냥 일을 했다는 것에만 집중하는 전형적 관료적 탁상행정의 업무 방식 아닌가? 잘 만들고, 후세 를 위한 생각은, 속된 말로 1도 없다.

 

 

결국 좌절한 시즈쿠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시도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 것은 990제곱미터의 대지를 구입해서 자신의 마을을 시작한 것이다. 집은 최소화로 필요한 기능을 도시락처럼 엮었다. 주택은 시즈쿠의 생각을 드러내듯이 목 조로 지어진 층고 높은 공간이었고, 햇볕이 실내를 밝혀주는 밝은 공간이었다. 무엇보다 그의 집은 사라진 마을 숲과 언덕을 증거하듯 집을 한가운데 두지 않 고, 최대한 도로에서 뒤로 배치했다. 그렇게 해서 넓은 마당이 만들어 졌고, 작은 묘목들이 심어졌다. 각종 묘목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아름드리 울창한 모습으로 동네를 숲처럼 보이게 했다. 그의 집 곳곳에 있는 문구와 다큐에 나오는 명언들처 럼 시즈쿠 할아버지가 오래 살지 않았다면 보지 못했을 결과들이다. 그의 나이만 큼 훌쩍 자란 나무들은 잎을 내리고, 퇴비가 되어 미래의 땅을 비옥하게 하는 자원으로 되었다.

무엇보다 시즈쿠 할아버지와 조용히 남편의 생각과 삶을 지원하는 히데코 할머니 는 부부란 무엇인가도 생각하게 한다. 집, 가족, 마을... 서로 다른 단어 같지만 두 노부부의 삶을 중계하는 다큐는 서로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대상에 대한 존중과 소중하게 생각하는 자신의 마음이다. 자연을 대하는, 건축을 대하는, 세상을 대하는... 매사의 노부부 말투는 말 그대로 품위 있고, 진 지하고, 순박하다. 어쩌면 이런 솔직함이 이들 노부부의 건강함 때문인지 모른다. 영화 리뷰를 보면 아내의 내조를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내가 보는 이 다큐에서 부 부는 상호간뿐만 아니라 모든 세상의 대상에게 존중과 배려를 잃지 않는다. 날아다니는 새들에게 옹달샘을 주고, 싹을 틔우는 식물들에겐 양분을 준다. 쓰레 기 치우는 사람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40년째 식자재를 파는 가게엔 감사 의 글과 그림을 보낸다.

누가 누구를 위한다는 우선순위보다 서로가 얼마나 아름답게 세상을 보는지, 인 간의 근본적 따뜻함과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다큐였다. 물론 건축의 힘을 다시 한번 느끼기도..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

 

 

홍성용 본지 편집국장

 

홍성용은 건축사(KIRA), 건축공학 박사,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건축의 크로스오버를 오래 전부터 주장했다. 국내 최초의 영화 와 건축을 해석하는 <영화속 건축이야기, 1999> 을 시작으로 여행기, 마케팅을 연구했다. 건축사로 최초의 경영서적인 <스 페이스 마케팅 2007>을 삼성경제연구소를 통해 출간하였고, 도시경쟁력 연구인 <스페이스 마케팅 시티, 2009>, 그리고 2016년 <하트마크>를 출판했다. 신사동 임하룡씨 주택, 근생 멜론 등 다수의 건축작품과 인테리어 작품들이 있다.

 

ncslab@ncsarchitec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