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2. 16. 17:03ㆍ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건축담론
Architecture Discussion
편집국장 註
2019년 초부터 정국을 강타한 정치적 이슈가 있었다. 건축사지에서 이를 주목한 이유는? 정치적 논쟁 한가운데, 건축이 서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새로 지은 건축이 아니라 오래되고 낡은 건축이었기 때문이다. 쇠퇴한 근대 도시의 거리가 새롭게 이슈가 되면서 과연 이런 공간을 어떻게 바라봐야 되고, 전문적인 시각이 무엇인지 새삼 조명하게 되었다.
아주 오래된 골동품의 건축만큼 중요한 근현대의 지나간 흔적을 도시의 유산으로, 국가의 유산으로 연구하고 다양한 제도로 유지하는 것은 이미 구 미의 산업국가에서 현재 진행형으로 지속된 정책이다. 그들 역시 개선하고 새롭게 제안하고 있다. 최근에는 국가에서 개인의 뜻있는 의지에 무게를 두는 추세이다. 국가적인 유산 보호 운동인 내셔널 트러스트에서 개인의 역할이 강조되고, 이를 경제 사이클의 한 축으로 두고 활성화 하는 것을 지 원하기도 한다.
건축사는 전문가로 이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건축사의 시각으로 도시 재생의 대상으로 오래된 건축, 오래된 공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해야 하는 가? 그리고 낡은 건축은 어떻게 재생되고, 재해석 할 수 있는지 내셔널 트러스트 전문가의 이야기를 들어볼 필요가 있어서 한분의 건축사와 한분의 도시유산운동 전문가에게 지면을 부탁했다.
Something dirty and old is beautiful
하이델베르그 성. 잔해들만 하늘을 향해 비죽비죽 솟아 있는 폐허는 아주 쾌청한 날에는. 즉 시선이 폐허의 창문들이나 아치의 첨탑 저 위로 흘러가는 구름과 만날 때는 평상시보다 두 배는 아름답게 보일 수 있다. 파괴는 그것이 드넓은 하늘에 펼치는 무상한 연극을 통해 이러한 폐허의 영원성을 다시 강화시켜준다.
-발터 벤야민 <일방통행로> 중에서
지난 1월 모 언론사에서 손혜원 의원의 목포 부동산 매입과 관련한 의혹보도 이 후 약 한 달간 목포시 근대문화유산에 대한 다양한 논의(의혹, 추측들을 포함한) 들이 시민, 언론, 학계, 정치권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진영과 관점에 따라 정 당함과 부당함이 난무하다가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하기만 하다. 이 글 은 이 문제의 옳고 그름을 논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왜 이러한 문제가 발생했 고 이와 유사한 문제가 비단 목포뿐만 아니라 내가 활동하고 있는 강원도 폐광 지역(영월, 정선, 태백, 삼척) 역시 자유롭지 않으며 문재인 정부의 도시재생 뉴 딜사업과 맞물려 이러한 일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할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이것 은 단순히 부동산 구매자의 이해충돌의 문제이기 전에 우리(주민, 공공기관, 전 문가)가 근대문화유산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으며, 근대문화유산과 지역(도시) 재생의 사회적 통합체계, 문화(culture)와 문화산업(cultural industry)의 관 계 등 아직까지 본격적으로 논의되지 않은 선결과제가 놓여있기 때문이기도 하 다. 본고에서는 내 경험을 토대로 특히 강원도 폐광지역의 산업유산(産業遺産/ industrial heritage)과 관련하여 이 문제를 짚어보고 유럽의 문화 및 산업유산 활용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나는 1992년 강원도 탄광지역의 광산취락을 연구하는 선배를 따라 현지답사를 동행한 적이 있다. 그곳은 60∼70년대 (주)대한중석으로 유명했던 강원도 영월 군 상동읍이었다. 상동은 포항제철이 있기 전 우리나라를 대표하던 수출품인 텅 스텐을 생산하던 곳으로 제2의 명동으로 불리던 상동읍 시가지와 대한중석에 근 무하면 셋째 첩으로라도 딸을 준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야말로 호황기를 누리 던 그런 동네였다. 하지만 1980년대 말 중국의 값싼 텅스텐 원료가 들어오면서 이곳은 채굴과 제련을 멈추고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고 불과 몇 년 사이에 불야 성을 이루었던 상동읍은 황량하기 그지없고 사람들은 이미 동네를 빠져 나갔으 며 단일기업에 의한 단일도시(single city by single enterprise)의 종말이 그 러하듯 유령도시(ghost city)를 방불케 했다. 그곳에서 거대한 굴진, 채탄, 운탄, 선광, 연구소 등 제련시설과 종업원 숙소, 간부숙소, 식당, 외부방문객을 위한 영 빈관 등 부속시설이 폐광이후 어지럽게 방치되어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강 원도의 경우 이러한 곳이 비단 상동 뿐만 아니라 영월의 마차리, 모운동, 정선의 신동읍, 사북읍, 고한읍, 태백의 장성, 철암, 삼척의 도계, 충남 보령, 경북 문경 등 이 이와 유사한 경로를 밟았다.
우리가 이른바 지키고 보존하고 활용해야 할 근대문화유산 그 중에서도 산업유산 이라 일컫는 것들은 일제 강점기 적산가옥(敵産家屋)부터 60∼70년대 산업시설 에 이르기까지 그 대상에서부터 종류까지 실로 다종다양하다. 이러한 것들이 체 계적으로 관리(철거, 보존, 활용)되는 것은 고사하고 근대문화유산으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고 철거대상인지 심지어 쓰레기인지 지역자산인지에 대한 구분조차도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강동진 교수(경성대학교 도시공학과)는 우선 산업유산이 지역자산이라는 개념에 대한 의식부재와 산업유산 재활용에 대한 실천적인 체험과정의 부재에서 출발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현상의 원인은 크 게 네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는데 첫째는 ‘지역민 스스로의 관심과 의지’와 ‘연고기업의 애착과 노력’ 등이 반영되지 못한 채 공공 위주의 하향식 관점이 주 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기능이 중단된 후 폐산업시설에 대한 새로운 대처방안을 도출하기 위해 ‘일정의 시간’을 확보하지 않은 상태에서 재활 용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점. 셋째는 일제 강점기와 광복을 전후하여 조성된 산업 시설들의 가치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해 해당자원들의 방치와 해체과정이 급속하게 진행됐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60∼70년대의 경제기반구축기에 건설 된 각종 산업시설들의 노후화가 가속되고 있음에도 산업유산으로서의 이해가 부 족하다는 점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과거 산업시설이 산업유산으로 인정받기 위한 조건은 첫째 산업고고학(industrial archaeology)적 측면에서 어느 정도의 역 사성을 보유한 산업시설이어야 하며 둘째 지역을 대표하는 산업으로서 지역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던 산업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규모가 비교적 크거나 공간, 경관적 특수성을 보유하여야 하며 넷째 지역민과 공공의 관심의 대상이어 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타용도로 쉽게 대체하거나 해체하면 안 된다라는 지 역차원에서의 암묵적 동의와 그 속에서 형성되는 심상적 가치도 산업유산의 기본 조건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할 수 있다. 1980년대 말 석탄산업합리화사업 이후 강원도 내 가행탄광은 178개에서 현재 3개로 줄었다. 이 조차도 2020년 이후에 는 모두 폐광이 될 전망이다. 한 때 산업화의 원동력이자 국민연료 생산기지였던 강원남부(영월, 정선, 태백, 삼척) 탄광시설 중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는 것은 태백 철암 역두선탄 시설(등록문화재 제21호, 2002년 등록)과 삼척 도계의 급수탑(등록문화재 제46호, 2003년 등록) 두 곳이다. 비록 등록문화재로 지정되 지 않더라도 폐광지역에는 여전히 보존해야 할 것들이 부지기수다. 정선 사북의 동원탄좌 사북광업소 본관동과 수갱시설, 사북양조장, 태백 철암의 외국인 숙소, 장성광업소 수갱시설, 철암광업소의 기계공작실, 통리의 한보광업소 저탄장, 삼 척 도계의 장미사택, 유신사택, 양지사택 등이 대표적이다.
나는 이러한 대표적인 산업유산에 대해 20년 전부터 철거 대신 체계적인 관리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요청했으나 산업부 산하 광해관리공단은 주민과 해당지자체의 요구에 따라 철거할 수밖에 없다고 하고 문화재청은 역사성, 대표성, 주민과 공공의 관심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철거를 방치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현 장에서는 뜻있는 개인이 사재를 출연, 매입하거나 공익재단을 설립하여 보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규모가 크거나 막대한 매입비용이 든다 면 선뜻 매입할 수도 없다. 손혜원 의원 논란을 보면서 좋든 싫든 이해충돌이든 아니든, 투자든 투기든, 제2, 제3의 손혜원이 계속해서 나올 것이다. 오히려 걱정 스러운 것은 현장에서 주민에게조차 관심을 못 받고 있는 문화유산을 기록하고 수집하는 뜻있는 사람들이 이번 논란을 계기로 자칫 오해를 받거나 공무원들의 섣부른 문화유산보존 정책으로 인해 소유자가 갑작스럽게 논란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철거해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보다 훨씬 앞서 산업혁명을 경험했고 폐광을 경험한 서구유럽의 나라들은 산업유산들을 어 떻게 보존, 활용을 하고 있을까? 지금부터 유럽의 몇몇 나라들의 사례들을 살펴 보고자 한다.
과거유산을 미래의 자산으로 만드는 유럽
먼저 스웨덴. 1863년 스웨덴의 중학교 영어 교사이자 민속학자였던 아서 하셀리 우스(Arthur Hazelius)는 스웨덴을 여행하던 중에 농촌의 전통가옥과 각 지방 별 독특한 건축물들이 급속한 시대의 변화에 따라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 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했다. 그는 사재를 털고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모아 각 지역에 있는 전통가옥과 건축물들을 있는 그 자체로 통째로 구입, 수집하기 시작 했다. 이어 1891년 스톡홀름 인근 유르고덴 섬에 약 31만제곱미터 규모의 ‘스칸 센(Skansen)’이라는 세계 최초의 오픈 에어 뮤지엄(open air museum)을 만 들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에코뮤지엄(Ecomuseum), 지붕없는 박물관, 열린 공간 박물관의 시초가 된 것이다. 하셀리우스는 또한 우리가 ‘마네킹’이라 알고 있는 밀랍인형(Wax)을 세계 최초로 제작, 이를 활용한 전시를 한 사람으로도 유 명하다. 많은 관람객들은 환호했고 스칸센은 에코박물관의 역사를 선도하게 됐 다. 하셀리우스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또 다시 한층 업그레이드된 박물관을 구상하게 되는데 바로 마네킹을 철수시키고 직접 사람들과 동물들을 박물관 안에 입 주케 하여 마침내 살아있는 박물관(Living Museum)을 완성하게 된다. 기존의 박제화된 박물관이 아닌 사람들이 당시의 복장을 그대로 입고 당시의 생활을 생 생하게 보여주며 여기에 가축들과 스웨덴 각지의 동물들까지 이곳에서 함께 보 여주다 보니 관람객들은 스웨덴 지역별 생활상을 한 곳에서 볼 수 있게 된 것이 다. 스칸센(Skansen)은 본래 ‘언덕위의 요새’라는 뜻으로 이곳에 오르면 스톡홀 름 시가지와 발틱해를 오가는 대형유람선을 관람할 수도 있다. 연간 140만 명이 찾는 이곳은 스웨덴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곳이자 세계에서 가장 큰 야외박물관으로 소개되고 있다.
어제까지의 모든 것을 수집한다 (To collect everything up to yesterday)
둘째, 영국. 1958년 영국의 한 박물관 학예사였던 프랭크 아킨슨(Frank Atkinson)은 북유럽을 여행하는 도중 스웨덴의 스칸센 박물관을 둘러보고 큰 충 격을 받았다. 이때의 충격을 그는 “사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 하나님의 음성 을 듣고 회심”을 한 성경의 사건에 비유할 만큼 대단한 사건이었다고 전하고 있 다. 영국으로 돌아온 그는 왜 영국에는 그와 같은 박물관이 없을까 하고 고민한 끝에 우선 닥치는 대로 과거의 유산, 유물을 수집하기 시작한다. 광부의 편지에서 부터 식탁, 장난감, 성냥, 의자, 침대, 벽장, 말의 안장, 심지어 1차대전 당시 사용 됐던 대포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함께 일했던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유산, 유물 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 “유물이란 과거로부터 어제까지 있어왔던 모든 것”이라 고. 이렇게 해서 1971년 영국 북동부 더럼(Durham)지역에 비미쉬 오픈 에어 뮤 지엄(Beamish Open Air Museum)이 만들어졌고 이 박물관은 특히 산업유산 (industrial heritage)의 보고(寶庫)로 알려져 있다. 박물관의 수장고에는 18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기까지 광산에서 사용되었던 모든 것들이 망라되어 있다. 영국 북동부 지역은 오랜 기간 광산이 활발했던 곳으로 1950∼70년대부터 서서 히 폐광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이때 사용됐던 각종 광산의 장비들을 그대로 수집, 보관하고 있고 심지어는 18세기에 사용했던 스티븐슨의 증기기관차와 뉴캐슬에 서 운행하던 전차, 영국에서 한 대밖에 남지 않은 기중기까지 보관하고 있을 정도 다. 이름도 “산업유산을 활용한 비미쉬 오픈 에어 뮤지엄(Industrial Heritage Beamish Open Air Museum)”으로 되어 있다. 관람객들은 비미쉬에 발을 들 여 놓는 순간 약 1세기 전 영국 북동부 지방의 삶의 양식과 광산을 온몸으로 체험 하게 된다. 입장료 수입만으로 박물관 운영이 가능할 정도로 탄탄한 재정구조와 각종 기부금과 서포터스를 활용, 박물관 운영의 모범사례로 손꼽히고 있으며 연 간 40여 만명이 방문하고 있고 수집한 유물 수만도 약 80여 만점에 이른다. 지역 주민들은 비미쉬 박물관에 대한 무한한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특히 자라나는 세 대들에게 있어서는 선배들의 노고를 잊지 않는 역사적 경험의 장이 되고 있다.
탄을 캐는 곳에서 사람을 캐는 곳으로
셋째, 독일. 1986년 독일 에센(Essen)의 거대한 광산이었던 졸페라인, 코케라 이, 샤프트1/2/8 등이 연이어 문을 닫게 되었다. 19세기서부터 이어온 거대한 광산과 선광장, 코우크스 공장, 수직갱이 문을 닫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포항제철이 문을 닫은 것과 같은 충격이라 할 수 있다. 지역주민과 광산노동자 들은 향후 이 광산이 문을 닫게 되면 이 시설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했고, 격렬 한 찬반 논쟁 끝에 철거가 아닌 시설을 리모델링하여 박물관과 공원으로 탈바꿈 시키게 된다. 한때 검은 연기와 하얀 수증기를 내뿜던 이 거대한 산업시설이 이 제는 주민들을 위한 공공장소와 관광객들의 새로운 볼거리(attraction point) 로 바뀌게 되었고 2017년 에센은 유럽의 녹색수도로 선정되었다. 탄을 캐서 돈을 벌던 곳에서 이제는 사람을 캐서 돈을 버는 곳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선광장 으로 사용하던 곳은 과거 모습 그대로 보존, 석탄이 어떤 과정을 거쳐 폐석과 석 탄으로 분류되는지를 알 수 있도록 하였고 일부는 영상실로 꾸며 폐광의 아픔 을 딛고 에센지역이 어떻게 발전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코케라이의 경 우 석탄을 고열로 가열하여 어떻게 코우크스로 추출되는 지를 실감나게 보여주 고 있으며 한 켠의 사무실을 개조하여 카페테리아로 활용하고 있고 냉각수는 겨 울에 얼려 스케이트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과거의 거대한 장치산업이 이제는 훌 륭한 전시실, 산업예술로 승화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레드 닷 디자인(Red Dot Design)이라는 디자인 전문대학을 만들어 단순히 박물관만 있는 것이 아닌 박 물관을 지속가능케 하는 교육기관이 자리잡고 있다. 또한 이들은 노르드 베스트 팔렌 주(州)의 주요 광산시설이 있던 곳들을 산업유산의 장소로 지정, 이러한 장 소들을 서로 연결하는 이른바 산업유산 루트(Route of Industrial Heritage) 를 만들어냈고 주요 지점에는 거점센터(Anchor Point)를 만들어 관람객들에게 유용한 정보 및 숙박거리, 체험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자신의 과거를 잊지 않고 그것을 지키고 보전하는 이유가 단순히 돈을 벌기위한 수단으로 문화상품을 만들기 위함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문화상품이전에 한 시대의 문화를 보존하고 상기시키는 일이야 말로 당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숨결 과 노동의 결과물이 오늘의 우리가 자존감과 자부심을 갖고 살 수 있도록 만드는 동력이기 때문일 것이다. 독일 졸페라인을 설계했던 건축사 프리츠 슈프(Fritz Schupp)가 했던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글을 맺고자 한다.
...우리는 거대한 시설물들로 이루어진 산업이 더 이상 도시의 풍경이나 경관을 해치는 것이 아님을 인식해야만 한다. 그것은 노동의 상징이며, 도시의 기념물이 며 모든 시민들은 그들의 공공시설물을 적어도 자부심을 갖고 외부인들에게 알 려야만 할 것이다...
(프리츠 슈프, 1929)
글. 이용규 Lee, Yong Gyu 정선군 도시재생지원센터장
이용규 정선군 도시재생지원센터장
글쓴이는 영국 더럼(Durham)대학 대학원 지리학과에서 공 부를 했고 한국에 돌아와 희망제작소에서 마을만들기 팀장, 한국도시연구소에서 책임연구원으로 근무했다. 2010년 강 원도 정선 사북에 ‘산업문화유산연구소’를 설립하고 《사북열 린공간박물관 자료집》, 《사북읍지》, 《폐광지역 구술사 채록 집》, 강원도 폐광지역 백서 《20년 전 그 약속》 등 다양한 저 술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정선군 도시재생지원센터 센터장 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강원랜드 ‘탄광문화관광촌’ TF로 활동 하고 있다. 최근 영국 비미쉬 오픈에어뮤지엄을 만든 프랭크 앳킨슨의 자서전 <열린공간박물관의 탄생, 우리교육>을 번 역, 출간했다.
gerum@naver.com
'아티클 | Article > 칼럼 | Column'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드리드 문서 센터 / 도서관 1994-2002스페인 마드리드 건축사 Mansilla Tunon 2019.4 (0) | 2022.12.17 |
---|---|
동시대 건축공간을 이해하기 2019.3 (0) | 2022.12.16 |
민간기업 부지를 공공적 광장으로, 브랜트 커뮤니케이션의 장 _ 긴자 소니 파크 2019.3 (0) | 2022.12.15 |
인생 후르츠 _ 진솔하고 소박한 인생의 아름다움, 그리고 건축이야기 2019.3 (0) | 2022.12.15 |
« 도시 »란 무엇인가? 2019.2 (0) | 2022.1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