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정책이 지향하는 가치와 목표는 공공성…정책 개혁 매달리는 근본 이유는 좋은 건축으로 우리 사회 삶의 방식 진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믿음 때문”_박인석 교수 2019.12

2023. 1. 7. 09:11아티클 | Article/인터뷰 | Interview

“The value and goal that Architecture policy seeks is public interest… the reason why we take effort on Policy reformation is based on true belief in which our lives and society need to be advanced”

 

월간 건축사가 현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인 박인석 명지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를 만났다. 
제5기 국가건축정책위원회는 작년 4월 출범해 어느덧 임기 종반으로 접어든다. 국건위가 추진해온 주요 과제들로는 ▲건축허가-심의 절차 개선 ▲설계공모 당선작에 대한 설계비 감액(수의시담) 폐지 ▲조달청, 교육청, LH 등 주요 발주기관의 건축설계공모 시행절차 정상화 ▲건축설계 가격입찰 배제 ▲공공주택 사업기획절차 개편 및 ‘도시-건축’ 통합설계 절차 마련 등이며, 이 모두 건축계가 오랜 시간 요구해 온 과제들이다. 특히 민간건축의 중요한 척도가 될 공공건축사업의 절차 등에 관한 사항을 규정한 ‘공공건축특별법안’이 지난 10월 30일 발의됐다. 건축설계자의 역할이 결정적인 건축공사의 특성에 맞춘 법제도 환경 구축을 위해 여러 법률적 조치들이 진행 중인데, 이 법은 우리 사회 건축의 근원적 혁신을 위한 건축공사 시행절차와 기준을 담는 통합 법률이다. 일반적으로 특별법이라 함은 그 목적에 따라 특별한 사람, 사항 등에 대하여 적용되는 법을 의미하는데, 특별법적 영역에 해당하는 법률관계에는 특별법이 일반법에 우선 적용된다.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박인석 교수는 ‘공공건축 설계생산 과정의 정상화’를 키워드로 설계공모, 건축설계의 가격입찰 문제, 주요 발주기관 혁신, 학교건축, 건축교육, ‘도시-건축’ 통합설계, 소규모 건축시장 정상화 등 여러 건축 관련 의제를 진단하고 의견을 냈다. 이는 건축과 집, 도시, 일자리에 관한 모든 쟁점을 다루며 각종 통계·법규·자료로 현실적 대안을 제시한 그의 저서 ‘건축이 바꾼다’의 발언과도 맞닿아 있다.


Q 최근 교수님의 저서 '건축이 바꾼다'를 읽었습니다. 흔히들 건축에 대해 말할 때 통계 없이 이야기하는데, ‘건축이 바꾼다’는 주장의 근거가 구체적인 데이터를 인용해서 공감이 갔습니다. 책이 다룬 쟁점만큼이나 국가건축정책위원회가 다방면에서 폭넓은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1기 이래 국건위 활동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지만, 건축계에 필요한 중요한 일들을 해온 것은 사실입니다. 건축기본법을 만들었던 국건위 전신 ‘건설기술 건축문화 선진화 위원회’ 바통을 이어 가장 중요한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을 만들어서, 설계공모가 의무화 되며 건축계가 나름 ‘더 나은 제도적 환경을 만들 수 있다’라는 비전을 비로소 갖게 됐습니다. 그전까지는 불평, 비관, 자조적 넋두리가 팽배할 뿐 아무 대책과 반향 없는 자폐적인 이야기뿐이었잖습니까. 이런저런 비판도 없지 않았지만,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 등을 제정할 수 있었던 것은 국건위가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라는 위상을 가진 조직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봅니다.

5기 국건위는 인적 구성, 위원장의 개인적 위상 및 정치적 영향력 등 여건이 상당히 좋습니다. 국건위는 정부기관들에게 ‘권고’하고 ‘자문’하는 절차를 통해 일을 하는데, 결국 대통령과 총리가 힘을 실어주고 기관들이 자문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힘을 발휘합니다. 국토교통부장관이 건축계에 우호적이고, 국무총리도 관심을 갖고 건축정책이 총리 주재 회의 안건으로 올라가는 등 힘을 받고 있는 것도 이런 여건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지금 국건위는 사실 건축계에서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하고 있어요. 의미있는 성과도 이미 내고 있죠.

Q 5기 국건위의 최우선 핵심과제는 무엇인가요?

공공건축이 기획되는 단계부터 설계가 발주되는 일련의 과정 전체를 정상화하는 것을 가장 큰 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이른바 ‘공공건축 설계생산 과정의 정상화’입니다. 공공건축은 통계상 연면적 기준으로 우리 사회 건축생산의 10%를 차지합니다. 국가의 법과 제도로서 직접적으로 컨트롤할 수 있는 대상이기도 하지만, 90%를 차지하는 민간건축의 설계비 등 여러 기준의 잣대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한 정책수단으로 삼을 수 있고 정책효과도 바로 나올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수한 설계인력풀 육성과 민간의 건축수준을 리드하는 데도 중요한 정책 툴이 됩니다. 지금 우리 건축발전에 가장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 ▲턱없이 낮은 대가 ▲부실한 기획 ▲중소규모 건축물 설계의 가격입찰 ▲심사위원 선정 등 설계공모의 공정성과 불투명성 문제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들 문제의 공통점을 딱 잘라 말하면 ‘공공건축의 설계 관련된 모든 법과 제도, 그리고 기준들이 좋은 설계자를 선정한다’라는 목표에 투철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냥 형식적으로 공정하고, 행정적으로 효율성을 좇을 뿐 좋은 설계자를 선정해서 좋은 설계를 생산하겠다는 목표가 분명치 않아요. 오히려 그걸 방해하는 방식으로 제도가 형성돼 있고, 좋은 설계자를 선정하는데 관심이 없어요. 아무렇게나 설계자를 선정해놓고 엉뚱하게 교수들에게 자문하는 것으로 해결하려는 이상한 버릇·관습들을 갖고 있습니다. 좋은 설계자를 선정하는 시스템이 충분치 않다는 게 문제의 핵심입니다. 모든 과제는 바로 여기에 집중돼 있습니다.

법과 제도를 좋은 설계자를 선정하는 시스템으로 바꿔야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좋은 설계자를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합니다. 옛날에는 몇몇 분들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지금은 경제규모에 걸맞게 좋은 설계자들이 굉장히 많아졌죠. 문제는 그 좋은 설계인력을 실제 설계업무에 매칭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수한 설계인력은 민간부문에서 시장논리로 경쟁하고 있을 뿐 정작 우수한 설계자를 육성하는데 역할을 해야 할 공공부문에서는 오히려 가격입찰 같은 후진적 제도로 국가예산을 투입해 날림시장, 나쁜시장을 육성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를 정상화하는데 국건위 업무의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건축설계를 건설, 토목 취급한다는 것도 결국 좋은 설계자를 선정하는데 아무 관심이 없는 문제로 귀결됩니다. 이 역시 국건위 법제도 개선 과제의 핵심입니다.

Q 국건위 출범 후의 성과를 간략히 말씀해주신다면.

첫째 충실한 건축기획이 이뤄지도록 건축기획업무를 의무화한 것입니다.
전국의 229개 기초 지자체, LH를 비롯한 몇십 개의 공공기관들은 전부 독자적인 발주기관입니다. 각자 알아서 잘하면 좋겠지만 이건 기대하기 힘든 일이죠. 일단 공공발주기관 모든 주체가 건축기획이라는 업무를 공식적으로 하도록 하자는 게 가장 중요한 과제라 봤습니다.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 개정으로 올해 12월 19일부터 모든 공공건축은 기획업무를 반드시 하도록 의무화 됐습니다. 아마 담당공무원들이 스스로 직접 할 수 없으면 용역발주를 할 텐데, 공공건축 기획업무가 중요한 독립된 업무로서 수행될 법률적인 근거가 확보된 셈이죠. 그리고 설계비 오천만원 이상인 사업은 공공건축심의위원회를 두어서 심의를 받습니다. 심의얘기만 나오면 또 심의냐 하시겠지만, 이 심의는 설계자를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라 공무원의 기획행위를 심의한다는 점에서 다릅니다. 기획을 어떻게 해놨느냐, 설계발주 어떻게 하려고 하냐 등을 심의합니다. 사이트를 어디에 정해서 어떤 프로그램으로 할 것이고, 이 정도 면적과 공사비가 적정한가를 살펴봅니다. 가령 “이렇게 중요한 설계를 그냥 협상에 의한 계약으로 하겠다고?” “설계공모로 하세요.” 뭐 이런 걸 하도록 하는 심의를 받는 거죠.

사실 지금 공공건축설계과정부터 공사과정 전체가 토목 법률인 ‘건설기술 진흥법’에 의해 관리를 받습니다. 그래서 생기는 웃지 못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건설기술심의를 위해 지방정부는 건설기술심의위원회를 두게 돼 있고, LH같은 공공기관들은 건설기술자문위원회를 두게 돼 있어요. 그 곳에서 설계 심의와 자문을 받는데 여기에 토목하는 사람들이 선정한 건축분과심의위원회에서 건축설계를 심의합니다. 그런데 건축위원회 심의보다 더 비합리적인 심의 사례가 적지않다고 합니다. 지금 공공건축심의위원회를 만든 건 그걸 대체하려고 하는 겁니다. 물론 모든 지자체와 모든 공공기관의 심의위원회가 처음부터 문제 없이 작동하기는 어렵겠지요. 하지만 이런 틀을 만들어 놓으면 모범사례들이 나올 겁니다. 서울시, 영주시 이외에 모델로 삼을 만한 곳이 더 생겨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사례가 확산되어야 합니다. 그걸 기대하고 법적 틀을 만든 겁니다.

둘째는 설계공모 개선입니다. 이미 2014년부터 설계공모가 의무화 됐는데,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 시행령 개정으로 내년부터 의무대상 금액이 설계비 1억원 이상으로 확대됩니다. 아직까지 설계비 2.1억원 이상 설계공모 물량이 얼마나 되는지, 1억원 이상으로 확대하면 얼마나 늘어나는 지 통계가 없습니다. 상시적으로 집계하는 시스템이 없고, 조사자체를 안 하고 있는데, 참 웃지 못할 일이죠. 공공건축이 설계비 규모별로 몇 건이나 발주되고, 공모·협상에 의한 계약·가격입찰별로 얼마나 되는지를 집계하지 않고 있습니다. 통계를 내지 않는다는 건 관심도 없고, 정책대상이 아니라는 얘기 아닙니까. 국건위가 권고를 해 비로소 통계시스템 구축이 국토부 과제로 잡혔습니다.
통계가 없는 까닭에 이곳 저곳 데이터를 수집해 집계를 내봤는데, 설계비 2.1억원 이상이 450건으로 공공건축 전체의 4.5%정도 됩니다. 1억원 이상으로 확대하면 400∼500건이 늘어납니다. 나머지 8000∼9000개는 여전히 사각지대에 있다는 얘기이니 아직 할 일이 많은 거죠. 또 설계공모 당선작에 대해 수의시담 금지를 권고해서, 몇 달 전 기재부에서 예규를 고쳐 행안부도 준수하며 수의시담은 이제 거의 없어진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다음 설계공모 운영지침을 대폭 바꿔서 개정했습니다. 심사위원 구성을 건축설계 이외 전문가나 발주기관 내부 인원 다 합해서 30%를 초과할 수 없게 확 줄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LH, 조달청, 교육청에서 저항이 많았어요.

셋째는 각종 지역사업에 포함된 건축물 설계 문제입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산어촌 종합개발사업, 국토부는 도시재생사업, 해수부는 어촌 뉴딜사업 등 부처별로 지역지원사업들을 시행 하고 있는데, 이들 사업의 기본계획이 엔지니어링업체에게 발주됩니다. 그런데 이들 사업 안에는 마을회관, 선착장 등 크고 작은 건축물들이 포함되기 마련인데 엔지니어링업체가 건축설계를 하지 못하니 하도급을 줍니다. 가격입찰보다도 못한 설계발주가 전국에서 벌어져 온 것이지요. 이것들을 모두 독자적인 건축사업으로서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에 따라서 발주하도록 했습니다. 국토교통부,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가 100% 따르겠다고 한 상황이고, 설계발주체제를 조금씩 바꿔나가고 있습니다. 어촌마을 선착장에 마을 첫인상을 망치는 건물이 들어서는 그런 일도 좀 나아질 거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LH를 혁신하는 것입니다. 신도시 등 새로운 개발사업에서 건축물과 공간환경에 대한 개념 없이 토지이용계획부터 한 다음 블록별로 건축설계를 하도록 하는 계획방식, 결국 관행적인 아파트단지만 반복될 수밖에 없는 이런 계획방식을 언제까지 지켜만 볼거냐는 문제의식을 갖고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3기 신도시를 비롯한 수도권 공공주택지구에서는 새로운 계획절차를 적용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는데, 그 첫 케이스로 지난 11월 12일 과천지구 도시건축 통합계획 설계공모 공고가 났습니다. 도시 기획단계에서부터 도시, 건축, 시설물을 아우르는 입체적 도시 마스터플랜을 세우고 이를 기반으로 도시계획과 건축계획을 수립하는 방식입니다. 2차원 도시계획을 세운 뒤 건축설계를 진행했던 기존 택지개발 방식과는 달리 도시와 건축이 조화된 도시공간을 구현하는 게 목적입니다. 획일화되고 단절된 주거단지에서 열린 주거지, 개인 중심의 공간에서 공동체 중심의 공간으로 도시를 바꾸자는 거죠. 의도대로 된다면 엄청난 변화가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도시구조 조성의 새로운 모델이 생기는 거죠.

학교건축에도 손을 대고 있는데 솔직히 참 어려운 분야입니다. 자치 지대라서 교육감이 적극적으로 나와 주지 않으면 안 되거든요. LH 등 다른 기관은 최고 경영자와 공감하면 어느 정도까지는 해볼 수 있는데, 교육청은 지자체와도 독립돼 있고, 난공불락입니다. 현재의 학교건축 설계공모는 아는 사람 아니면 못 들어가는 굉장히 비정상적인 상황이죠. 몇 년 전부터 건축자문관 제도를 도입한 서울시 교육청이 이미 선두주자로 나선 상황인데, 다른 교육청들이 더 활발히 움직여줬으면 좋겠습니다. 국건위가 교육부에 우선 시범적으로 새로운 설계공모 절차를 적용해보라고 권고하여, 교육부가 특수고등학교 2개교를 국제설계공모 등으로 추진하는 것으로 신축 학교 설계공모제도 정상화 작업을 스타트했습니다. 

Q 교육청의 경우 건축법의 치외법권 지역으로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요.

맞아요. 조달청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울시에 하듯이 설계공모 운영위원회를 만들어 설계지침 리뷰 및 심사위원 구성을 하라고 권고하고는 있는데, 계속 난색을 표합니다. 

설계공모 관련해서는 올해 안으로 세움터에 국내 공공건축 설계공모 포털이 생길 겁니다. 설계공모 정보 제공보다는 누구나 들어가서 어떤 심사위원이 무슨 심사평으로 어떻게 심사를 했는지 볼 수 있게 하자는 취지입니다. 심사풍토를 개선해 자체정화 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하게끔 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 심사비리 문제는 발주청에서 전관예우 한다는 말도 있고, 로비하는 업체도 있겠지만, 결국 심사위원의 문제 아닙니까. 

자체정화 시스템이 작동하려면 심사위원들에 대한 평판이 조성되고 폭넓게 공유되어야 합니다. 지금은 설계공모에 직접 관계하는 사람들 이외에는 심사위원들에 대한 평판이 충분히 공유되고 있지 않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기관별로 공개하는 심사결과를 살펴보기가 힘들어서입니다. 일부러 찾아보려면 너무 힘들잖아요. 그래서 세움터에 마우스 클릭 한 번만 하면 심사평 등을 다 볼 수 있게 해서 어떤 심사위원이 어떤 심사평으로 심사결과를 내는지 그걸 다 볼 수 있게 될 겁니다. 심사위원들에 대한 크리틱이 생길 수 있게 되는 거죠. 그래야 문제 있는 심사위원은 배제하는 분위기가 된다고 봐요. 자율적인 윤리가 작동케 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많은 사람들이 모든 내용을 소상히 알게 하는 게 중요합니다.

Q 누구나 볼 수 있게 기록을 공개하는 것은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모든 심사위원들이 의무적으로 자기 크리틱을 쓰게 하는 것은 암묵적인 스트레스가 될 것 같습니다.

서울시가 모든 공공건축 공모에 대한 심사결과 공개를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심사결과 공개에 방점이 찍힌 포털이 만들어지는 셈이죠. 이런 식으로 심사위원의 책무와 윤리의식을 강화하는 것만이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 총괄건축가, 공공건축가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이 설계공모와 심사위원 추천 절차에 참여하거나, 따로 운영위원회를 만들어 심사위원을 추천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습니다.

Q 국건위의 존재가 의미 있다는 내용에는 공감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성과라는 것은 기수에 따라 차이가 있을 것 같은데요. 혹시 성과에 대한 평가를 객관적으로 수치화할 수 있는 제도나 구조적인 시스템에 대해 다루는 행정조직이 있습니까?
 
있을 수가 없습니다. 가령 법적 행정조직이라면 고유의 업무나 국가적으로 배당된 업무, 예산이 배정되기 때문에 그 업무를 훌륭하게 처리하면 잘 했다고 평가받습니다. 하지만 국건위의 업무는 자체적으로 판단하고 집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문과 권고를 통해 간접적으로 처리됩니다. 이번처럼 국토부에서 법을 개정하고 특별법을 발의하게 된 것도 전부 자문 형식을 통해 이뤄졌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어촌 사업 역시 관련 부서에서 국건위 권고를 무겁게 받아들여줬기 때문에 성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저희 권고가 총리회의의 안건으로 올라갔기 때문에 총리께서 그 내용을 접할 수 있었고, 이것이 국토부장관에게 전달되어 관련된 업무들이 아래에 지시된 것입니다. 관련 부처에서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주면 국건위 자문이 힘을 받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실무자들이 자문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국건위 업무 성과는 다른 부처들이 대통령직속자문위원회의 권고나 자문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느냐에 달렸습니다. 국건위는 ‘이걸 개선하라, 이런 새로운 제도를 채택하라, 이런 법을 만들어라’와 같은 권고를 통해서 성과를 낼 수밖에 없습니다.

Q 네. 그렇지만 자문이라는 것을 반드시 지켜야한다, 이런 법은 없지 않습니까? 듣기에 따라서는 업무 성과가 운에 좌우될 가능성이 큰 것처럼 보입니다. 이러한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는 자문을 통해 업무를 추진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제도가 필요할 것 같은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현재 자문을 통해 업무추진을 보장하는 법은 없습니다. 또한 이를 제도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저는 그럴 수 없다고 봅니다. 정치가와 협력관계라는 파트너십을 가지고 일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려하신 대로 운에 의해 성과가 좌우되거나 예상하지 못한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도 물론 있습니다. 만약 사익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이 총괄건축가가 된다면 어떻게 될까, 나쁜 정치가가 나쁜 파트너를 데리고 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이러한 우려는 항상 있습니다. 모두가 순수하지는 않으니까요.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도 꽤 섞여있을 것입니다. 윤리적 부담감이 상당한 총괄건축가에 비하면 공공건축가 쪽이 그런 부분에 더 취약할 거예요.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인데 모두 완벽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부 실패나 미진함이 있더라도 개선효과가 뚜렷한 사례가 적지 않을 것이고 그러한 효과가 확산되는 것을 비전으로 삼고 추진하는 거지요.
사실 공공건축가제도를 운영하려면 업무를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조직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임명해놓고 그 다음이 없습니다. 전국적으로 다 그래요. 서울은 그래도 도시공간개선단이라는 공무원 조직을 만들어서 그때그때 대응하고 있습니다만, 지방은 대부분 공무파트너도 없습니다. 그들 없이 과연 업무가 가능할까 싶습니다. 아직 보강해야 할 과제가 많은 거죠. 

Q 소규모 공공건축 중에 정부에서 최근 생활SOC 지원 이야기를 한 적 있습니다. 관광진흥법에 보면 미술관, 박물관 같은 경우 보증해서 정책자금을 해줄 수 있는 루트가 있는데, 문의 결과 문화시설 보증 지원은 단 한 건도 없다고 하더군요. 미술관 등은 개인이 하고 싶을 경우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생각되는데 이런 정책지원을 건축정책 측면에서 고민해볼 수 없는지 궁금합니다. 또 건축학과 5년제가 시행되고, 올해를 마지막으로 건축사예비시험이 폐지됩니다. 이후 많은 건축 관련 대학들은 별다른 준비가 없었는데요.

미술관 등의 문화시설을 민간 지원을 통해 확충하는 방안은 충분히 가능성 있다고 여겨집니다. 문화시설 뿐 아니라 민간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확충할 수 있는 생활SOC들이 있을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이므로 어떤 식으로든 검토하도록 해보겠습니다.
건축교육과 건축사 제도의 관계에 대해서는 아직 우리 사회에 충분히 논의가 되어있지 않은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국건위에서도 충분히 논의되지 못한 상태라 순전히 개인적인 견해로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로스쿨이나 의과대학에서 대학의 인원 수급을 조절하는 것이 과연 사회적으로 정의로운 것인지에 관해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업계 내부적으로는 효율을 위한 것이지만, 이것이 사회정의 측면에서 과연 바람직한 일인가 하는 점에서는 논의가 필요합니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양질의 서비스가 염가로 제공되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서비스 대가가 너무 낮아서 전문직으로서 생활이 힘들다는 것은 다른 차원에서 논의될 일이지 국민 서비스 수준을 통제함으로써 확보하는 것이 옳은지는 의문입니다. 사회적인 공감과 합의가 뒤따라야 풀리는 문제로,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여겨집니다.
왜 이런 전문 직종에 관해서만 경쟁 완화를 허용하느냐, 다른 사람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 살고 있는데 전문 직종에서만 경쟁 완화가 필요한 것처럼 얘기되는 것은 또 하나의 문제입니다. 이도 정의롭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건축교육 학제 등의 문제는 준비가 미흡한 부분이 있는 게 사실인데, 원론적으로 그간 무엇을 하였는가 하는 점에서 책임이 가장 큰 사람들은 교수들일 겁니다. 그러나 다르게 보면 학생들에게 길이 없는 것은 아니거든요. 4년제를 나온 학생들은 2년제 대학원을 가면 됩니다. 현재 건축전문대학원이 하나(건국대)뿐으로 줄었는데, 입학할 학생이 없기 때문에 문을 닫은 거죠. 하지만 입학할 학생들이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다시 생기지 않을까요. 
5년제가 아닌 학생들을 위해 실무수련기간을 좀 더 인정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의 스탠다드를 실무로 대체하는 건 원론적으로 좋지 않은 방법입니다. 교육과 실무는 별개로 봐야 합니다. 교육은 5, 2+3, 4+2 등으로 풀면 됩니다. 여러 의견과 논의가 나오고 합의되는 과정이 필요하겠죠. 개인적으로는 현재 원칙적으로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Q 화제를 전환해서 교수님이 책에 언급하신 소규모 건축물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소규모 건축물 시장을 성장시키기 대해서 국가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소규모 건축물은 일단 통계가 없어요. 그런 점에서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한 해에 착공되는 건축물 중 30% 정도가 소규모 건축물로 추산 됩니다. 소규모를 공사비 10억 원 이하로 잡으면 27~28%, 50억 이하라고 하면 40%예요. 건수로 보면, 총 건축물 중 90% 정도를 소규모 건축물로 볼 수 있습니다. 건축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에서도 무시 못할 큰 비중이지요.
소규모 건축물의 발전은 우리 건축의 비전하고도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학생들에게 항상 그런 얘기를 해요. 이제 대규모 개발 시대는 끝날 것이라고. 
앞으로 우리의 일거리는 소규모 건축물이 밀집한 기성시가지 관리가 될 것입니다. 향후에는 골목을 정비하고 관리하는 세심한 도시설계 업무가 점점 중요해 질 것이고 이것이 건축사의 전문적인 업무로 자리 잡을 것입니다. 아마 10년 이내에 판도가 바뀔 겁니다. 지금부터라도 소규모 건축 설계시장을 정상화시켜야 이러한 흐름에 대비할 수 있습니다.

Q 소규모 건축 시장을 정상화시키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되겠군요.

네. 당장 떠오르는 방법은 공공건축이 선도하여 현재 대부분 하급시장에 속한 소규모 건축 시장들을 견실한 시장으로 끌어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공공건축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소규모 건축을 민간에서 정상화시키는 것이 필요한데, 이것은 간단히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중장기적으로 차근차근 추진해야 합니다. 여기에 주택성능보증 제도나 우량주택 인정제도와 같이 사업자들을 육성해주는 정책들을 마련하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전망은 긍정적입니다. 소규모 시장이 점점 늘어나면서 퀄리티에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그에 따라 섬세한 도시설계를 위해 건축사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시대가 곧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라도 소규모 건축설계 시장을 정상화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이 제일 중요하고, 가장 시급히 해야 할 일입니다. 또, 소규모 공공건축을 위한 기획업무나 설계비 1억 원 이하 설계발주를 정상화하는 일들이 빨리 제도적으로 정비돼야 합니다. 공공건축마저 헤매고 있는 처지에 민간건축이 정상화되길 기대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죠. 대규모 공공건축이나 큰 규모의 민간 건축은 나름대로 절차적 기준이 마련돼 있습니다. 다만 그 퀄리티와 과정상의 부도덕한 행위가 문제일 뿐이죠. 대부분 문제는 소규모 공공건축에 있습니다. 소규모 건축의 가격입찰 같은 불필요하고 후진적인 상황을 벗어나는 게 시급합니다. 

소규모 건축시장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민간부문 설계비 문제도, 우선적인 과제는 공공건축의 설계대가 정상화입니다. 설계대가 수준 자체도 문제지만 현재의 대가기준을 준수하도록 하는 것이 보다 먼저입니다. 가령 리모델링 설계에서 요율을 1.5배로 한다거나 추가업무에 대한 대가 산정을 명확하게 하기만 해도 실제 설계비가 상당 수준 높아질 것입니다. 이를 견인하기 위해서 세부업무별로 설계비가 명시된 표준계약서를 만들고 그 사용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계약서에 대가가 명시된 업무만 설계자가 수행할 업무범위로 명확히 함으로써 추가업무에 대한 공공의 대가 지급 책임을 명확히 하자는 거지요. 
민간의 설계비는 공공건축을 보고 영향을 받아서 일정부분 따라올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은 공공건축에서 적정 설계비로 정상적으로 설계업무가 추진되는 시장을 만드는 것이 최선입니다. 그 일을 꾸준히 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소규모 공공건축에 좋은 설계자를 매치해 좋은 건축물이 설계되도록 해야 합니다. 
좋은 공공건축물로 얻을 수 있는 효과 중에 하나는 주변 민간건축물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지금 민간 주택이나 상업건물을 작지만 예쁘게 지으려는 수요가 늘고 있어 좋은 타이밍이라고 여겨집니다. 또 하나는, 좋은 설계자의 사회를 육성시키는 효과입니다. 결과물을 보고 찾아오는 민간 클라이언트를 촉발할 수 있습니다. 우리 경제규모가 커진 만큼 소규모 민간건축에서도 좋은 건축이 금방 늘어날 것입니다. 현재까지는 공공건축이 그 역할을 하지 못했는데, 마음먹고 법을 바꾼다면 금방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요. 공공건축이 촉매역할을 해서 좋은 건축을, 좋은 설계자들과 함께 만들어내면 민간의 시장도 서서히 좋아질 것입니다. 공공건축이 그 바로미터이자 촉매가 될 수 있고, 따라서 소규모 공공건축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Q 정책적 대안들을 제시하시면서 건축계 전반의 흐름을 만들고 계시는데요. 마지막으로 바람직한 우리나라의 건축, 그리고 건축계, 더 나아가서 건축과 함께하는 우리 국민들에게 바라시는 것이 있으시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건축설계 발주제도 혁신이든 소규모 공공건축 혁신이든 총괄건축가제도 확산이든, 모든 건축정책의 개혁에 매달리는 근본 이유는 좋은 건축을 통해 우리 사회의 삶의 방식을 진전시킬 수 있고 그래야 한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건축설계업무 여건을 호전시킨다거나 건축인들의 대가수준 향상 자체가 목표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는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도 없을 겁니다. 
건축정책이 지향하는 가치와 목표가 우리사회와 도시의 삶을 개선한다는 공공적인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흔히들 건축사들의 처우가 상대적으로 좋은 선진국들과 비교하곤 하는데 ‘건축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처음부터 건축을 대우해 준 나라는 없다는 것이죠. 그만큼 그 사회의 건축인들이 자신의 사회와 시민들을 위한 공공적 역할에 힘써왔기 때문에 그런 대우를 받는 것입니다. 시민들이 그 역할과 가치를 인정해주었기 때문이지요. 이 점을 잊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박인석 교수 Park, Inseok 명지대학교 건축학부
대담 홍성용 본지 편집국장, 글·사진 장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