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사사무소 연백당(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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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간 2018.10
Spacetime 우리는 다음에 만날 약속을 정할 때, 보통 시간과 장소를 함께 언급한다. 장소만 정해서도 만날 수 없고, 시간만 정해서도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어느 대중가요처럼, ‘첫 눈 오는 날, 안동역 앞에서 만나자’고 약속하는 꼴이 되고 만다. 물론 노랫말을 더 들어보 면 그들도 처음부터 약속을 잘못한 것은 아니었다. 장소와 시간까지 서로 살뜰하게 주고 받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도 결국 그들은 만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아마 ‘첫눈 오는 날’이 문제였던 것 같 다. 약속장소는 비교적 구체적이었는데, 다소 낭만적인 정취를 자아내려고 그랬는지 약 속시간을 애매모호하게 처리한 것이 그들 비련의 씨앗이었다. ‘첫눈 오는 날’이라는 시간 은 상황에 따라서 상당히 유동적이 될 수 밖에..
2022.12.08 -
감상(感傷) 2018.05
감상(感傷) 가끔 아름다운 건축물을 만나게 되면, 나는 마치 잘 빚은 도자기나 조각상 앞에 마주서있는 것 같은 착각에 쉽게 빠져들곤 한다. 그만큼 ‘형상(形象’으로서의 건축은 조각과 유사한 측면이 다분한 것 같다. 물론 조각과 건축은 분명 서로 다른 장르다. 우선 조각은 대상의 표면에만 집중할 뿐, 그 내면의 세계까지 주목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조각은 심미안(審美眼)의 대상이지, 건축처럼 우리들의 일상생활을 제 품으로 끌어들일 줄도 모른다. 오백여 년이 훨씬 더 지난 지금도 여전히 생동감 넘치는 인간육체의 아름다움과 유효적절한 비례미를 자랑하고 있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David) 상’만 봐도 그렇다. 조각상 내부에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녀야 할 오장육부 중 그 어느 것 하나도 구비해놓지 않았다. 실제..
2022.12.01 -
송아지 2022.10
Calf #1 추억 뉘엿뉘엿 해가 저물던 어느 가을날, 마루에 엎드린 채 밀린 숙제를 하다가, 담장 모퉁이를 돌아 들어오는 동생을 보고 부리나케 토방으로 내려섰다. 투덜대면서 집으로 들어서던 동생이 대문간에서부터 쇠고삐를 던져버렸는지, 어미소를 따라 질질 끌려 들어오는 쇠고삐를 서둘러 주워들고 나는 곧장 외양간으로 들어섰다. 외양간의 한쪽 구석 말뚝에 쇠고삐를 매면서 흘낏 뒤를 돌아보니, 뒤따라오던 송아지의 걸음걸이가 왠지 어색해 보였다. 평소처럼 폴짝폴짝 마당을 여기저기 누비고 다니지 않는 것부터 이상했다. 고삐를 매다 말고 주춤거리는 송아지가 외양간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먼발치에서도 엉덩이 한쪽에 뭔가 엉겨 붙어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뭐가 잘못 묻었다는 생각에 송아지 곁으로 다가서려 하자,..
2022.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