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사사무소 연백당(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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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씨 2021.5
Embers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신세계로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는 요즘, 인공지능의 창출도 대단하지만, 불(火)의 발견은 우리 인류역사에서 실로 획기적인 일대 사건이라고 되뇌지 않을 수 없다. 불(火)을 다루는 지혜는, 신석기 혁명이 일어나기 훨씬 이전인 약 40만 년 전 구석기시대 어느 한 시점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물론 이따금 산불이나 벼락을 맞은 덤불과 나무에서 자연적으로 발화(發火)가 일어나긴 했겠지만, 불을 삶의 한복판으로 끌어들이면서부터 우리 인류의 생활은 급변하기 시작하였다. 불씨를 어느 한 곳에 모아두고 필요할 때마다 즉각 꺼내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덕분에 몸의 아랫도리나 겨우 가리고 살 정도였던 구석기인들이 우선 당장 추위를 견딜 수 있게 되었으며, 맹수의 접근도 효과..
2023.02.03 -
이음과 맞춤 2020.11
Joint and fit 사랑은, 서로 맞춰나가는 일이다. 방향을 맞추고, 높이를 맞추고, 또 생각을 맞추다가 마침내 마음마저 맞춰내는 숭고한 작업(?), 그게 사랑이란다. 그게 만만했더라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렇게 사랑타령이 요란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굳이 사랑이 아니더라도 우리 사람 사는 세상에서는, 서로 다른 존재끼리 ‘잇고 맞추는’ 것 자체가 그만큼 어렵고 힘든 일인가 보다. 우리 한옥에도 그 흔적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본디 한옥은 톱으로 잘리고, 자귀로 깎이고, 끌로 도려내지다가, 또 때가 되면 메로 흠씬 두들겨 맞는 과정을 거쳐서 이 세상에 태어나는 참으로 기구한 팔자를 지녔다지만, 그 구성 부재들의 결구부(結構)를 볼 때마다 적잖은 전율이 느껴지곤 한다. 결구(結構) 무엇이든 완전체 ..
2023.01.26 -
빛 2023.1
Light 우리는 빛이 있는 곳에서만 형태를 볼 수 있다. 지금 우리 눈앞에 현란하게 펼쳐져 있는 바로 이 삼라만상도, 사실 빛이 없으면 아무것도 인식되지 않는 허상(虛像)이라고 한다. 싫든 좋든 인간은 태초부터 빛에 의지해서 세상과 사물을 인식해온 것이다. 그만큼 다른 누구보다도 형태와 공간을 창출해나가는 프로세스(process)에서 자주 번민하게 되는 우리 건축사(建築士)들에게 빛은 더 각별한 대상일 수밖에 없다. 만일 빛이 없다고 가정해 보자. 지금 우리가 앉아 있는, 바로 여기 이 공간과 저 자리, 또 거기에 보란 듯이 떡 버티고 서있는 저 벽과 뻥 뚫린 창, 그로 인해 점차 차이를 드러내게 되는 내·외부 공간감(空間感)……. 그 어느 것 하나인들 우리가 제대로 분별해낼 수 있었을까? 때로는 심 ..
2023.01.19 -
접바둑과 그레질 2020.4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세기적인 대국에서 ‘신의 한 수’로 그간의 관심을 모아왔던 프로바둑기사 이세돌이 지난해 11월 마침내 은퇴를 선언했다. 그런데 은퇴를 하는 그 순간까지 역시 그다웠다. 평범한 대국으로 마무리 짓지 않고 이른바 접바둑을 선택한 것이다. 세칭 ‘입신(入神)의 경지’라 불리는 프로9단이 먼저 흑돌을 잡고 ‘치수고치기’ 대국을 벌인 것도 그렇거니와, 최종 3국에서는 이미 승패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았다는 듯 181수만에 미련 없이 돌을 던진 뒤, 복기(復碁)하는 과정에서 그 특유의 진지한 자세를 견지한 것도 쉽사리 잊히지 않을 것 같다. 몇 년 전 세간의 기대와는 달리 알파고에게 1승 4패로 완패한 직후, “오늘의 패배는 이세돌이 패배한 것이지 인간이 패배한 것이 아니다”라고 하며 이세돌..
2023.01.12 -
공동체 2019.12
Community 한동안 가족공동체 해체의 전조증상이라도 되는 양, 우리 청년들이 집을 뛰쳐나가 ‘혼밥’, ‘혼술’, ‘혼놀’에 탐닉하는 붐(boom)이 일더니, 어느 날부턴가 ‘셰어하우스(share house)’라는 독특한 주거형태가 우리 곁에 슬며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의 주거발전과정에서는 다들 쌓고 늘리는 데만 급급했는데, 이제는 그 행태를 일단 멈추고 잉여공간을 ‘나눠서 함께 살자’라는 취지란다. 어쨌든 이 역시 주거공동체의 또 다른 변태(變態)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그동안 이 지구상에 출현했던 수많은 주거공동체들의 시원은 우리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깊고 오래됐다. 두 발로 직립보행을 하게 되면서 다른 동물과 본격적으로 차별화되기 시작한 이른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가..
2023.01.07 -
이해받지 못한 자들의 슬픔 2019.5
Sorrow of those who are not understood 얼마 전, 또 하나의 안타까운 부음이 당도했다. 그저 무탈 하리라고만 애써 믿고 있었는데, 스스로 먼 길을 재촉했다는 비보에 나는 보축(補築) 한쪽이 송두리째 떨어져나간 성벽의 잔재처럼 그만 그 자리에서 고스란히 내려앉고 말았다. 언젠 가는 우리 모두 다 거쳐 가야 할 길목이라지만, 뭇 생명들이 다시 파릇파릇 돋아 나는 이 봄날의 부음에는 자못 더 비감해지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인간은 싫든 좋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자아(ego)’를 확인하며 살아가는 존재라고 한다. 누구나 더 인정받고, 또 더 이해받기 위해서 산다는 얘 기가 될 수도 있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더 많은 칭찬을 갈구하 며 살고, 좀 더 자라서..
2022.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