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31. 09:15ㆍ아티클 | Article/디자인스토리 | Design Story
Before & After, is the skin trustworthy?
예전에는 압구정역 4번 출구로 나가는 방향의 광고가 모두 이른바 ‘비포 애프터(before after)’ 광고였던 적이 있다. 광고 모델은 모두 익명의 일반인이었고, 클로즈업된 얼굴이 광고면을 가득 채웠다. 광고주는 모두 성형외과병원이다. 성형 전의 얼굴은 비포에 해당하고 성형 뒤의 얼굴이 애프터에 해당한다. 그 변화는 단순한 쌍꺼풀 수술 정도가 아니다. 그 변화의 폭이 너무 전면적이고 드라마틱해서 그 광고가 익살스럽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 타고난 얼굴이 저렇게 탈바꿈 할 수도 있구나. 그러고 보면 압구정역 4번 출구를 나와 거리를 걷다 보면 붕대로 칭칭 감은 얼굴이나 인조인간 같은 얼굴을 종종 보기도 한다. 얼굴을 저렇게 바꾸면 인생도 드라마틱하게 바뀔 수 있을까? 송충이가 나방으로 변신한 것처럼 바뀌기 전을 전혀 짐작할 수 없는 애프터 인생도 있다. 그 변화는 정말 얼굴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바뀐 인생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말이다. 그런 경우에는 대개 이름까지도 바꾼다. 그러니까 껍데기를 바꾸는 것은 껍데기만 바뀌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 알맹이까지 바뀌고, 그 사람을 대하는 모든 사회적 태도까지 바꿔버리는 것이다. 성형수술뿐만 아니라 건물의 외관을 바꾸는 디자인에 대해서도 똑같은 기대가 있다.
통인시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청운반점이라는 중국집이 있었다.<사진 1> 이 중국집은 영화 <수상한 그녀>의 촬영 장소였다. <수상한 그녀>는 800만 명 이상이 본 흥행작이어서 이 중국집이 그 덕을 볼만했다. 청운반점은 영화 포스터를 붙여서 자랑했지만, 영업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것처럼 보였다. 이 식당은 바로 코앞에 버스 정류장이 있는데도 손님이 있는 걸 잘 보지 못했다. 입구는 너무나 지저분해서 도무지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곳이었다. 차양은 오염되었고, 입구에 놓은 화분들은 방치되는 것처럼 보였다. 술 박스 여러 개가 입구 옆쪽에 쌓여 있어 보기 흉하다. 관리가 안 되는 모습이어서 오히려 손님들을 쫓아내면 쫓아냈지 환영하는 분위기가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서촌에 사는 나는 경복궁역으로 걸어갈 때 이곳을 수도 없이 지나쳤지만 한 번도 들어간 본 적이 없다.
어느 날 이곳이 카페로 바뀌었다.<사진 2> 입구에 있던 지저분한 박스들, 창문에 쓰인 난삽한 글자들, 방치되던 화분들이 모두 사라졌다. 새로 단장한 입구에는 라탄 비스트로 체어와 작은 테이블만이 놓여 있다. 라탄 비스트로 체어는 유럽의 카페나 식당에서 야외 의자로 흔히 쓰인다. 카페의 파사드는 벽을 흰색으로 칠했고, 문과 창문의 틀은 남색을 칠해 대비가 분명하고, 무엇보다 밝고 깨끗해졌다. 흉가 같던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고 유럽풍의 파사드를 지닌 단순하고 깔끔한 모습으로 변신한 것이다. 변신은 이 건물의 내용마저 바꿔버렸다. 중국집에서 카페이자 바(bar)로 바꿨다. 요즘 서촌에서 식당이 사라지면, 그 자리에 카페가 생기는 걸 쉽게 볼 수 있다. 다들 밥과 술 대신 빵과 커피를 마시는 문화로 바뀌고 있다. 나는 아내와 지나가다 이 카페를 한번 들어가 봤다. 파사드의 디자인 변화가 그것을 대하는 태도를 바꿨다.
경복궁 옆에서 나와 금촌시장을 지나면 우뚝 솟은 빌딩 하나가 있다.<사진 3> 다복장여관이다. 서촌은 고도 제한이 있어서 5층만 돼도 꽤 커 보인다. 주변 건물들이 대부분 2층이다. 1층에는 베스킨라빈스와 파파이스 매장이 있고, 3층부터는 여관이었다. 건물은 평범하기 이를 데 없다. 창문은 작고, 매력 없는 마감재는 아무런 주목을 끌지 못한다. 이곳도 어느 날부터 공사를 시작하더니 새롭게 변신했다.<사진 4> 무엇보다 창문을 커다랗게 뚫어서 석재 마감의 영역이 대폭 줄었다. 아주 모던한 파사드가 되었다. 이 건물은 철근 콘크리트 건물이다. 따라서 르 코르뷔지에의 도미노(Dom-inno) 시스템이 적용된다. 다시 말해 파사드를 자유롭게 디자인할 수 있다. 처음부터 시원하게 커다란 창문을 만들 수도 있었다. 왜 그렇게 폐쇄적으로 창문을 만들었을까? 아마도 여관이라서 그랬을 것이다. 서촌은 고도제한이 있어서 이 정도 건물의 3층만 올라가도 통의동 건너 경복궁의 안뜰이 시원하게 보일 것이다. 만약 3층부터 5층까지를 식음료 공간으로 삼는다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탁 트인 문화적 조망을 선사할 것이다. 건물을 성형수술하면서 물매가 있는 지붕을 옥상으로 바꿨다. 옥상에 올라가면 인왕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겸재 정선이 그렸던 바로 그 시점의 인왕산 풍경을 볼 수 있다. 이렇게 건물의 변신은 건물의 프로그램을 바꿔놓는다.
원래 1층에는 명품 아웃렛과 일식 주점이, 2층에는 카페가 있는 건물의 변신도 놀랍다. 원래 건물의 2층 벽은 아주 오래된 짙은 적벽돌로 마감되어 있었다.<사진 5> 어느 날 공사가 시작되었다. 2층은 온통 흰색 벽으로 마감되어 전반적으로 불규칙한 창문과 흰색 배경의 구성 작품이 되었다.<사진 6> 1층은 통유리다. 아주 단순해졌다. 이곳은 현재 베이커리 카페가 되어 젊은이들에게 큰 인기를 끄는 곳이 되었다. 파사드의 구성 요소를 줄일수록 건물은 훨씬 세련돼진다.
광화문 광장의 청진동 방향에는 역사적인 건물들이 연달아 있다. 교보생명빌딩, 케이티빌딩, 미국대사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다. 나는 케이티빌딩을 보면 언제나 한숨이 나왔다.<사진 7> 어떻게 저렇게 멋대가리 없이 디자인할 수 있을까? 건물은 세로보다 가로의 길이가 더 길어서 마치 옆으로 퍼진 듯한 둔중한 인상을 준다. 둔중한 인상을 더욱 강화하는 요소는 작은 창문과 넓은 석재 마감이다. 19세기 마천루도 이보다는 더 세련되었다. 어느 날 이 건물의 표면이 가림막으로 뒤덮였다.<사진 8> 마치 크리스토의 포장 예술 같다. 앞으로 바뀔 외관을 홍보하는 가림막이었다. 커튼을 로봇의 손이 젖히는 디자인은 1990년대 컴퓨터 그래픽을 보는 듯 촌스럽기 그지없다.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되었는지 1990년대의 촌스런 가림막이 사라졌다. 그러자 건물의 뼈대가 드러났다.<사진 9> 가로 보와 세로 기둥의 규칙적으로 교차하는 수학적 질서가 드러나니 가림막을 보는 것보다 나았다. 공사는 아주 천천히 진행되었는데, 어느 날부터 유리 커튼월이 부착되기 시작했다.<사진 10> 최근에 저층부의 모서리만 빼고 유리 마감재가 전부 부착되었다.<사진 11> 그러자 이 오래된 건물의 나이가 급격하게 젊어졌다. 똑같은 비례지만, 둔중한 느낌이 사라졌다. 미스 반 데어 로에가 말한 매스(mass)의 건축이 볼륨(volume)의 건축으로 드라마틱하게 바뀌는 걸 이보다 더 명징하게 보여주는 사례는 없을 것이다.
껍데기를 바꾸는 것은 그 대상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것이다. 사람은 사람이든 사물이든 일단 껍데기를 보고 판단한다. 그 판단이 잘못된 경우도 많다. 하지만 속을 알 수 없으니 우선 껍데기를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세종대왕은 첫째 아들 문종의 아내가 될 세자빈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첫 번째 세자빈이 자격 미달로 퇴출되었다. 두 번째 세자빈을 간택할 때는 특별한 방법을 써보기로 했다. 모든 후보 며느리를 한곳에 모아서 면접을 보자고 한 것이다. 마치 미스코리아 선발 대회처럼 말이다. 그랬더니 허조라는 대신이 그렇게 면접을 보면 덕(德)으로 뽑지 않고 얼굴 모양만으로 뽑게 되니 안 된다고 반대했다. 그러자 세종은 이렇게 답했다. “잠깐 본 나머지 어찌 곧 그 덕을 알 수 있으리오. 이미 덕으로서 뽑을 수 없다면 또한 용모로서 뽑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세종은 외모가 단지 외모로 끝나지 않고 그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러니 껍데기는 단지 껍데기만은 아닌 것이다. 실제로 외관을 바꾸니 그 속까지 바뀌는 사례는 사물의 세계에서는 더욱 흔한 일이다. 하지만 껍데기를 무조건 믿을 일도 못 된다. 세종이 그렇게 외모로 뽑은 세자빈 순빈 봉씨는 알코올 중독자에 동성애자로 판명돼 퇴출되었다. 하지만 일단 외모로 판단하는 사람의 본성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첫 번째 단서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앞으로도 건물이든 사람의 얼굴이든 외관의 변신은 계속될 것이다.
글·사진. 김신 Kim, Shin 디자인 칼럼니스트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부터 2011년까지 월간 <디자인>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다. 대림미술관 부관장을 지냈으며, 2014년부터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여러 미디어에 디자인 글을 기고하고 디자인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이 있다.
kshin201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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