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클 | Article/에세이 | Essay(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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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 그 유용한 공간 2019.7
Warehouse, useful space 장정의 해군시절은 고단했다. 고속전투정 출항 15분 전을 알리는 명령이 정내 스피커를 통해 울리면 스크루를 돌리는 엔진 소리와 함께 불완전 연소된 매연이 정내 홋줄 요원들 코끝뿐만 아니 라 눈도 시리게 했다. 출항 5분 전 방송이 추가로 나와서 이제 바다로 나간다는 기대가 그 매운 고통을 그나마 풀어주었다. 이윽고 '홋줄 풀어'의 구령이 떨어져야 비로소 가슴이 후련 해지는 쾌감의 항해는 시작되는 것인데, 배 뒤에 배치된 장정은 물보라를 세차게 차고 나가는 그 때가 바로 고단함을 잠시 잊을 수 있는 기분 좋은 시각이었다. 배가 바다로 나아가면 새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 그리고 흰 구름, 아울러 배꼬리 에서 부서지는 흰 포말은 출항 전 매연의 고통을 날려 보내고 군생..
2022.12.23 -
정신 위에 지은 공간, 한국의 서원Ⅱ 2019.7
Space built on spirit, Korean Seowon Ⅱ 서원 건축을 주도한 성리학자들은 우주론적 인식과 인성론을 근간으로 하는 천 인합일天人合一 사상에 심취했다. 과거 시험을 통해 성장한 사대부들은 경전 자 구를 해석하는 데 치중했던 종래의 유학(훈고학)에서 벗어나 우주와 인간의 근본 적인 문제를 탐구하고자 했다. 불교의 선정사상을 유교적 입장에서 수용한 성리 학은 인간의 도리를 밝히고 우주와 인간의 근원을 탐구하는 학문이었다. 이들은 하늘을 단순히 자연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지 않고 하늘의 조화와 질서를 지상의 만물에 적용하여 그 존재 의미를 밝히고자 했다. 그들에게 자연은 인간과의 관계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 지극히 상식적인 것이었다. 천인합일은 인간이 만든 건축을 자연과 분리해서 생각할 ..
2022.12.23 -
이해받지 못한 자들의 슬픔 2019.5
Sorrow of those who are not understood 얼마 전, 또 하나의 안타까운 부음이 당도했다. 그저 무탈 하리라고만 애써 믿고 있었는데, 스스로 먼 길을 재촉했다는 비보에 나는 보축(補築) 한쪽이 송두리째 떨어져나간 성벽의 잔재처럼 그만 그 자리에서 고스란히 내려앉고 말았다. 언젠 가는 우리 모두 다 거쳐 가야 할 길목이라지만, 뭇 생명들이 다시 파릇파릇 돋아 나는 이 봄날의 부음에는 자못 더 비감해지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인간은 싫든 좋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자아(ego)’를 확인하며 살아가는 존재라고 한다. 누구나 더 인정받고, 또 더 이해받기 위해서 산다는 얘 기가 될 수도 있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더 많은 칭찬을 갈구하 며 살고, 좀 더 자라서..
2022.12.20 -
다시 피어난 일매헌(一梅軒)의 매화 2019.5
Apricot flowers that bloom again in Ilmaeheon 겨울을 나며 고사하고 남은 작은 가지에서 매화가 활짝 피어났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차가운 바람에 메말라 까칠한 모습이었는데 스스로 봄볕에 감응해 붉은 생 명력을 발하는 모습이 반갑고 다행스럽다. 지난주부터 꽃눈이 조금씩 부풀어 올 라서 이번 주에 꽃망울을 터트리게 될 것으로 생각하고 손님을 초대했는데, 손님 이 온 오늘 가장 탐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겨울을 나며 고사하고 남은 작은 가지에서 매화가 활짝 피어났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차가운 바람에 메말라 까칠한 모습이었는데 스스로 봄볕에 감응해 붉은 생 명력을 발하는 모습이 반갑고 다행스럽다. 지난주부터 꽃눈이 조금씩 부풀어 올 라서 이번 주에 꽃망울을 터트리게 될 것으로..
2022.12.20 -
베르사이유 VS 수원 화성 2019.4
The Palace of Versailles vs Suwon Hwaseong 광화문 광장이 건축계의 뜨거운 이슈가 되었고, 정치적 관심에 따라 논쟁의 중심 이 되었다. 건축계도 정치적 관심에 따라 이야기 하는 경우가 많은데, 조금 아쉽 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축계는 전문가 집단이기 때문에 본인들의 정치적 성향보 다는 건축적인 시각과 내용으로 논쟁을 했으면 어떨까 하는.. 그런데 정말 건축은 정치와 관련이 없을까? 실상 그렇지 않다. 건축은 정치의 가장 첨예한 표현이고 권력의 중심 도구로 활용된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동일하다. 에서 상영 중인 프랑스 미니시리즈 ‘베르사이유’는 건축이라는 배경이 어떻게 통치권력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이용되었는지 세밀하게 보여준다. 절대 권력자로 알려진 루이 14세는 사실 ..
2022.12.17 -
투대조락 投待釣樂 _기다림을 던져 즐거움을 낚다 2019.3
Twodaejorak _ Throw a wait to catch pleasure 섬진강 압록교 내 전설의 바위 터에서 오전 장을 보다가 더위에 지쳐 모든 옷 을 벗어 바위에 널어놓고 멱을 감으니 세상 피서 으뜸인 것 중 하나임을 체득했 다. 더불어 일광욕하며 바위에 누워 있으니 하늘은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가고 옥 색의 푸른 물은 주중 업무에 지친 심신을 말끔히 씻어냈다. 채비를 수저미끼(spoon)에서 벌레미끼(worm)로 바꾸니 꺽지가 발밑까지 따 라 오더니 물었다. 벌레미끼로 계속 던지니 이번에는 쏘가리가 요동쳤다. 두 마리 를 꿰미에 채우고 나니 이젠 허기가 사정없이 밀려왔다. 가슴장화를 폭염 속에 다시 입어야 왔던 길을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기에, 땀을 비 오듯 쏟으며 찬찬히 길 위로 올라오다가,..
2022.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