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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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노의 기호학 2023.1
The semiotics of pornography 최근 한국 사회에서 ‘빈곤 포르노’라는 말이 화제가 되었다. 사람들은 ‘포르노’라는 단어 자체의 자극성을 문제 삼았다. 하지만 포르노라는 말은 기호에 불과하다. 포르노라는 기호가 지시하는 대상은 보지 않고, 그 대상을 지시하는 기호만을 문제 삼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것이다. 나는 ‘푸드 포르노’라는 단어로 온라인 공간에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글의 요지는 한국의 식당들이 건물 입면에 지나치게 음식 사진을 전시하여 식욕을 자극한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었다. 그랬더니 글쓴이가 오히려 ‘포르노’라는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해 관심을 끌려고 한다고 비난받았다. 나는 사람들을 자극하려는 의도가 없고, 그 식당 입면의 사진들이 대개 ‘푸드 포르노’의 개념에 적..
2023.01.19 -
잘할수록 티 나지 않는 타이포그래피 2020.9
Typography, The better it is, the less it becomes visible 드디어 돋보기 안경을 샀다. 근시 안경을 벗으면 그런대로 보였지만, 이제는 정말 눈이 침침해져서 작은 글자를 읽을 수가 없다. 특히 전자레인지에 간단하게 데워 먹을 수 있는 음식 포장지의 설명서는 독서가 불가능하다. 글자가 작은 것은 물론 짙은 색 바탕에 흰색도 아닌 핑크색 따위의 색을 입힌 활자는 눈이 좋아도 읽기 어려울 판이다. 어쩔 수 없이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어서 확대한 뒤라야 비로소 글자를 확인할 수 있다. 노안이 온 건 꽤 되었지만, 안경을 벗으면 그런대로 보였다. 하지만 안경을 벗는 일도 귀찮고 이제는 멀리서 봐도 더 이상 읽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리하여 생애 처음으로 돋보기 ..
2023.01.19 -
블랙의 기호학 2020.8
Semiology of Black 조지 플로이드의 살인사건이 전 세계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라는 운동에 공감하며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 곳곳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나는 이 사건을 보면서 ‘블랙black’이라는 단어와 ‘검은색’이라는 색채에 덧입혀진 기호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사람들은 흰색에 대해서 어떤 연상을 하는가? 흰색 하면 대개 깨끗함과 순결, 그리고 지향해야 할 피부색 같은 걸 떠올린다. 햇빛에 그을린 구릿빛 피부를 찬양하는 듯하지만 결국은 백옥 같은 흰 피부를 우월한 것으로 본다. 실제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흰색의 반대색을 검정색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세상을 단순하게 밝음과 어두움으로 이분화(二分化)하고 의미를 부..
2023.01.18 -
야구 유니폼의 다양성 2020.7
Diversity of Baseball Uniforms 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 스포츠가 중단되었다가 한국 프로야구가 세계에서 처음으로 경기를 시작했고, 최근에는 유럽의 축구 리그가 시작되었다. 라이브 스포츠가 사라지자 비로소 사람들은 그것의 소중함을 느낀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사냥꾼의 유전자를 갖고 있는데, 현대인에게 사냥꾼의 본능을 일깨워주는 것이 바로 스포츠다. 전 세계인들이 그토록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도 그들이 모두 사냥꾼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사냥은 혼자 사냥하는 호랑이나 곰 같은 맹수와 달리 집단의 조직적인 팀워크라는 점에서 더욱 스포츠와 닮아 있다. 팀워크를 중시하기 때문에 반드시 요구되는 것이 바로 유니폼이다. 여러 종목의 유니폼 중에서도 야구 유니폼은 참으로 독특하고 복잡하다. 일반 스포..
2023.01.17 -
영화 소품이 발휘하는 환유의 힘 2020.6
The power of metonymy from movie props 영화 는 1960년대 말을 추억하는 영화다. 따라서 1960년대를 복원해야 했을 것이다. 영화를 보면 고증이나 복원의 노력이 너무나 꼼꼼하고 충실해서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예를 들어 고속도로나 큰 차도에서 배우가 차를 몰고 가는 장면이 있다. 차 안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도로 전체를 보여주면서 차가 달린다. 시간도 꽤 길다. 이때 차도를 달리는 차들이 몽땅 그 시대의 차다. 그 시간 동안 도로의 차들을 완전히 통제했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 많은 골동 차들을 모두 어떻게 긁어 모았는지 감탄스러울 뿐이다. 이 영화는 1960년대 패션, 60년대 이동수단, 60년대 가구와 가전제품, 60년대 컬러, 그리고 60년대 포스터와 서체까..
2023.01.16 -
관음증의 권력 2020.5
The power of voyeurism n번방 회원들이 디지털 데이터 전문가를 찾아 다니며 그 방에 남은 자신의 흔적을 영구적으로 삭제해달라고 요청한다고 한다.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성착취 영상물을 본다는 게 떳떳한 일이 아니라는 걸 말이다. 관음증에 탐닉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타인의 시선에 노출되는 순간 대단히 수치스럽다. 그것만큼 창피한 일이 어디 있을까? 가족, 친구, 직장동료들 볼면목이 없을 것이다. 그들도 그 정도의 상식이 있다. 그렇다면 처지를 바꿔서 생각해볼 여지는 없었을까? 관음증의 대상이 된 그 소녀들 역시 대단히 수치스러울 것이라는 점을 말이다. 거기까지 인식이 닿았다면 아마도 그들은 돈을 내고 그 영상을 보지 않았을 것이다. 보는 주체와 보이는 객체, 그 둘은 ‘권력 관계’로 ..
2023.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