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클 | Article/디자인스토리 | Design Story(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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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가 장악한 세상 2022.4
A world dominated by the media 현대인은 자신이 얼마나 미디어에 장악 당한 채 살아가고 있는지 느끼지 못한다. 현대인은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미디어에 접속하고 잠이 들기 바로 전까지 그 접속 상태가 지속된다. 그리하여 미디어가 없는 세상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것을 보여주는 현상은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그중 하나는 과거를 재현하는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때 쉽게 찾을 수 있다. 세계적으로 흥행한 영화 를 보면, 로마 원로원의 위원들이 검투사 경기가 열린다는 홍보 전단지를 보는 장면이 나온다. 고대에 종이가 얼마나 귀한 물건이었는지를 생각하면 이런 장면은 결코 연출될 수 없다. 물론 현대의 사극 영화들은 그러한 고증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을 무시해도 된다고 영화 제작..
2023.02.18 -
스텐실 글꼴의 통일성 2022.3
The unity of stencil font 사람의 손글씨를 보면 재미있는 현상이 하나 있다. 못 쓴 글씨나 잘 쓴 글씨나 모두 글씨의 꼴이 균질하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통일성을 갖는다. 만약 한 사람의 글씨가 균질하지 않다면, 사건 현장에 남은 필적으로 범인을 찾아내는 그런 수사는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또는 글씨체로 성격을 추론하는 그런 학문도 존재할 수 없다. 글씨를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 사람이라면 누구나 균질한 글씨를 쓴다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인다. 사람이 글씨를 똑같은 모양으로 쓰는 것처럼 활자도 똑같은 모양으로 디자인된다. 영어로 A부터 Z까지, 한글로는 ㄱ부터 ㅎ까지 그 모양은 균질해야 한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현상이며 당연하게 받아들이므로 나는 조금 다른 형식의 글자에서 그..
2023.02.17 -
책 살생부 쓰기 2023.2
Writing a book ‘Salsengbu(hit list)’ 해마다 연말, 연초가 되면 하는 이벤트가 있다. 책꽂이 정리다. 책은 꾸준히 늘어나는 데 반해 집안의 공간은 늘어나지 않는다. 책꽂이에 책을 꽂으면 약간의 남는 공간이 생긴다. 키가 비슷한 책들의 윗부분, 그리고 책을 밀어 넣은 뒤 남는 앞부분이다. 이 공간들마저 책으로 채워지고 있다. 이제 책을 빼내기도 쉽지 않다. 나중에 꽂힌 책들에 가린 뒤쪽 책들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책은 멀어진 책과 같은 신세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돼버리는 것이다. 거리가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것처럼 보이지 않아서 심리적으로 멀어진 책은 읽힐 가능성이 현저히 줄어든다. 그리하여 나는 책을 대처분하기로 한다. 최소한 수백 권은 버..
2023.02.16 -
자유의 기표 2022.2
Signifier of freedom 얼마 전에 머리를 잘랐다. 원래 자르던 곳이 있었는데, 거리가 좀 멀다 보니 귀찮아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에 가서 깎았다. 처음 가는 미장원은 늘 불안하다. 아니나 다를까 남자 이발사가 처음부터 줄곧 바리캉으로 머리를 밀어버린다. 원래 가던 곳의 이발사는 가위로 섬세하게 자르는데 말이지. 참 편리하게도 깎는구나.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래도 머리를 맡겼으니 중간에 그만둘 수도 없고. 머리를 다 깎은 모습을 보니 영락없는 호섭이 스타일이다. 집에서 아내가 보더니 호섭이 머리라며 놀린다. 그러면서 아들한테 “아빠가 호섭이 머리 됐다”고 말한다. 아들의 반응은 “호섭이가 누구야?”다. 아들은 호섭이를 모르기 때문에 호섭이 머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아들의 반응..
2023.02.16 -
형태는 크기를 따른다 2022.1
Shape follows size 미국의 진화 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내가 알고 있는 생물학자 중 건축과 디자인에 대해서 가장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쉽지 않은 생물학의 개념을 설명하면서 종종 건축을 비유의 대상으로 끌어온다. 라는 그의 저서에 실린 21장 ‘크기와 형태’에 그런 비유가 등장한다. 크기와 형태는 마치 기능과 형태의 관계처럼 법칙이 있다. 크기가 작거나 크면 형태는 그 크기에 제약을 받아 변형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공상과학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인간이나 동물이 엄청난 크기로 확대되더라도 그 형태와 비례를 그대로 유지한 채 커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주 작은 생명체들을 보라. 개미나 모기, 파리 등의 다리를 보면 무척 가늘다. 하지만 개미는 자기..
2023.02.15 -
임시변통의 창조성 2021.12
Impromptu creativity 집 안에 있는 실내화가 늘 문제였다. 신지 않는 동안 실내화는 자기 자리를 잘 찾지 못한다. 거실 여기저기, 방안 여기저기에 굴러다니기 일쑤다. 시각적으로 보기 불편하다. 무엇보다 진공청소기를 돌릴 때 이놈의 실내화들이 늘 걸리적거린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실내화 걸이가 나타났다. 정식 걸이는 아니다. 아내가 옷걸이를 약간 변형해서 실내화 걸이로 용도를 변경한 것이다. 그걸 보니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예전 엄마 방에 있는 전등은 잡아당길 수 있는 얇은 끈이 켜고 끄는 기능을 담당했다. 그 끈은 일종의 공중에 매달린 스위치다. 끈의 길이는 일어나야 비로소 잡을 수 있는 정도였다. 그런데 엄마는 다리가 아파서 일어나기가 몹시 불편했다. 그래서 그 스위치 끈의 끝에 기다..
2023.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