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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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줄 말이 없을 테니까 2018.01
It will be nothing to say 나는 오랫동안 공간에 대해 생각했다. 패션 매거진 에디터로 일하면서 전 세계의 좋은 공간을 많이 보러 다녔다. 허름한 공장이 멋진 미술관으로 바뀐 마법을 꽤 여러 번 보았는데, 그때마다 ‘공간’을 구체적 장소라기보다는 어떤 개념으로 인식하게 됐다. 공간에 대해 갖게 된 인식을 시로 써보기도 했는데, 읽는 사람마다 난해하다고 해서 요즘은 안 쓴다. 예를 들어 나는 ‘우성’이라는 내 이름을 어떤 공간으로 두고, ‘우성’이 안에서 ‘우성’이가 증식하는 모습을 썼다. 나는 ‘우성’이들이 모두 다른 ‘우성’이가 되기를 바랐는데, 그걸 표현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저 동일한 ‘우성’이가 여럿 있다, 정도의 표현만이 가능했다. 아무튼 다들 어렵다고 하니까… 더 쓸 필요를..
2022.11.07 -
송아지 2022.10
Calf #1 추억 뉘엿뉘엿 해가 저물던 어느 가을날, 마루에 엎드린 채 밀린 숙제를 하다가, 담장 모퉁이를 돌아 들어오는 동생을 보고 부리나케 토방으로 내려섰다. 투덜대면서 집으로 들어서던 동생이 대문간에서부터 쇠고삐를 던져버렸는지, 어미소를 따라 질질 끌려 들어오는 쇠고삐를 서둘러 주워들고 나는 곧장 외양간으로 들어섰다. 외양간의 한쪽 구석 말뚝에 쇠고삐를 매면서 흘낏 뒤를 돌아보니, 뒤따라오던 송아지의 걸음걸이가 왠지 어색해 보였다. 평소처럼 폴짝폴짝 마당을 여기저기 누비고 다니지 않는 것부터 이상했다. 고삐를 매다 말고 주춤거리는 송아지가 외양간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먼발치에서도 엉덩이 한쪽에 뭔가 엉겨 붙어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뭐가 잘못 묻었다는 생각에 송아지 곁으로 다가서려 하자,..
2022.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