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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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한 사람의 모든 것 2022.1
Full name, a person's everything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이 속담은 나에게 소리친다. 눈 덮인 산길 걸어갈 때 발자국이 남는 것처럼, 삶에 ‘역사성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내가 어릴 적, 아버지는 한자·한문 공부를 많이 강조하셨기에 초등학교 때부터 응당 한자로 이름을 쓰도록 내 이름 석 자를 한자로 가르치셨다. 그 덕택에 어려서부터 나는 한자로 이름을 쓸 줄 알게 되었고 심지어 친구들 간에도 한자 이름을 알게 되었다. 죽마고우인 경원 친구의 가운데 이름이 서울 경(京) 자로 쓴다는 것과 길수 친구의 길할 길(吉), 시용 친구의 얼굴 용(容) 자도 알게 되었다. 이윽고 중학교에 입학했는데, 학년 초 어느 날 선생님이 호적초본을 제출하라고..
2023.02.15 -
메신저 2021.12
Messenger 요즈음은 메시지(message) 전성시대인 것 같다. 더구나 성큼 다가온 정치의 계절을 맞아 유력 정치인들이 생산해 내는 메시지는 한층 더 요란해졌다. 한때는 파란 머플러를 휘날리며 “새빨간 거짓말”을 힘주어 외치던 이가 있었는가 하면, 또 빨간 넥타이로 남다른 ‘정열’을 강조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더니 급기야 빈 손바닥에 근대 이전의 유물인 ‘왕(王)’을 새겨놓고 주술처럼 펴 보이며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속으라는 얘기인지, 웃으라는 얘기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개체를 보통 메신저(messenger)라고 한다. 군대에서는 이를 전령(傳令)이라고도 부른다. 고대의 전령은 우선 잘 뛰어야만 했다. 사실 ‘올림픽의 꽃’이라 불리는 마라톤도, 마..
2023.02.14 -
건축사(Architect)로 산다는 것은 2021.11
Living as an architect ‘어떻게 하면 평범한 일상에서 건축의 공간을 느끼고 더 좋고 편리한 건축으로 만들 수 있을까?’ 질문의 연속이다. 나는 대학 시절 서양의 유명 건축사의 이론과 작품을 탐구하면서 건축을 시작했다. 유명 건축물들의 섬세함과 공간의 창의성은 감동으로 다가왔고, 나도 저런 건축을 하는 건축사(Architect)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지금까지살아왔다. 건축 스타일과 구축 방식은 수 세기 동안 역사적인 기록과 작품으로 우리에게 전달되어 우리의 문화와 환경에 맞게 변화하여 오늘날의 건축 형태를 만들어 냈지만, 좋은 건축을 만들고, 사람들과 소통하고, 만족하며 감동을 전달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건축사는 어떤 메신저(messenger·전달자)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2023.02.13 -
미국 집 짓기 2021.9
Building American house 벌써…! 시간을 한참 거슬러 올라간다. 아들이 국내 대학원을 다니다 잠깐 쉬는 동안(?), 국내의 중견기업에서 영업직 근무를 경험하도록 했다. 약 1년을 다니며 스스로 느낀 것이 있던지, 하루는 “아빠, 나 미국 유학하겠습니다!” 하길래 아들의 미래를 생각해 장학금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대학을 지원해 보라고 하여 아들의 미국 생활이 시작되었다. 미국 교육과정을 마치며… 캔자스 주립대에서 석·박사학위를 받고, 결혼도 하고, 지도 교수를 따라 네브래스카 대학으로 이사도 했으며, 연구원 활동을 하다가 지금의 휴스턴 ‘베일러 의과대학’ 연구직으로 옮겨 지난해 Neuro Scientist 종신교수로 임명을 받게 되었다. 아이들의 생활도 정착 단계이다 보니, 주택을 구매할..
2023.02.09 -
복도, 그 아련한 시작과 끝 2021.8
A hallway, its dim beginning and end 영화 를 시청하던 중, 평소 선도부장에게 불만이 있던 학생이 위층 복도에 있다가, 마침 아래 지상에 모여 있던 선도부와 선도부장에게 마시던 우유갑을 내던져 그 우유갑이 선도부장 몸에 명중하면서 흰 우유가 검정 교복에 쏟아지는 장면을 보았다. 선도부와 부장은 잔뜩 화가 난 채 위층 교실로 함께 몰려와 우유갑 던진 학생을 찾다가, 그 행위를 말리는 햄벅(햄버거) 학우를 대신 냅다 팬다. 주연배우는 같은 반 학우들이 선도부장에게 늘 폭언과 폭력에 시달리는 걸 보고, 그걸 빌미로 선도부장에게 옥상에서 한 판 맞짱을 뜨자고 큰소리로 욕하며 소리친다. 그 장면에서 나의 중학 시절이 생각났다. 나는 청소시간에 물을 1층 배수구에 버려야 되는데, 귀찮아..
2023.02.08 -
건축물의 활력소 ‘계단’ 2021.6
‘Stairs’, the vitality of buildings 계단을 생각하면 먼저 우리 시대의 명가수 조용필 님의 “베고니아~ 화―분이~ 놓인~ 우체국 계단, 어딘가에 엽서를 쓰던 그―녀의 고운 손~”으로 시작되는 ‘서울 서울 서울(1991)’의 노랫말이 생각난다. 일반적으로 우체국으로 진입하는 출입구 앞에는 계단이 조성되어 있다. 그 계단은 우편 화물차의 짐 싣는 공간과 차 바닥판의 높이를 맞춘 것으로부터 기인하는데, 화물 트럭 짐칸에서 내리는 우편물을 수평으로 힘 덜 들이고 올리고 내리려 하다 보니 1층 바닥은 도로보다 높아지게 되고 그래서 우체국 앞은 자연스레 계단이 조성되곤 했던 것이다. 그 계단 양측에는 환경미화를 위해 봄에는 사르비아(샐비어), 가을에는 들국화 등 화초류가 화분에 정갈히 담..
2023.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