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숙(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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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뽐내기보다 견디기 위한 몸” 2019.10
"This is a body to endure rather than boast" “겨드랑이 아래 근육을 아래로 더 내리세요.” “날개죽지끼리 만나는 느낌으로 더 조여 보세요. 조금만 더, 더!” “가운데 등 근육을 당기세요, 자 이번에는 쇄골을 쭉 내밀고 자랑!” “숨을 크게 들이쉬세요, 근데 배가 볼록하고 나오면 안 돼요.” “갈비뼈를 닫고 골반은 중립, 치골은 바닥에 붙이세요.” 필라테스를 가르치는 코치는 거기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던 근육과 뼈를 이리저리 움직이라고 명령한다. 코치의 지시에 따라 부들부들 떨며 동작을 바꾸는데 마음대로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내가 내 몸에 대해 참 모르고 있구나 새삼 깨달았다. 나는 내가 당연히 바른 자세, 바른 균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 목은 ..
2023.01.05 -
“당신은 어떻게 살고 있나요?” 2019.9
“How do you live?” 요즘 나는 「건축탐구 집」이라는 EBS 방송국의 다큐멘터리를 즐겨 보고 있다. 지금까지 모두 열세 편이 방송되었는데 각각의 회마다 서로 다른 주제로 지어진 집을 소개하고 있다. 아파트를 떠난 사람들- 즐거운 나의 집, 마당 있는 집, 내 인생의 마지막 집, 자연이 선택한 집, 내가 지은 작은 집, 아버지의 집, 대한외국인- 그들이 선택한 집 등이 각 회에 붙은 제목이다. 제목만 봐도 획일화 된 아파트를 벗어나 공간에 대한 로망을 이루고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방송에 나온 어떤 농부는 15,000평 밭농사를 지으며 4년 동안 오롯이 혼자 힘으로 딱 여섯 평짜리 작은 집을 지었다. 그 크기에 맞추어 가지고 있는 물건도 줄였는데 부부가 사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다고 한..
2023.01.04 -
“나의 절반은 두려움에 떨고,나의 절반은 용기로 가득하다”
"Half of me is trembling with fear, and the other half is full of courage" 마흔쯤 되었을 때, 어떤 신문기사를 보고 재미삼아 기대수명을 계산해본 적이 있다. 당시 우리나라 여성의 평균수명에다 규칙적인 운동을 하면 더하기 네 살, 담배를 피우면 빼기 다섯 살 하는 식으로 계산하는 것이었다. 계산 결과 나의 기대수명은 93세였다. 평균수명보다 열 살이 더 많은 숫자였다. 오래 살 것이라는 결과가 기쁘기는커녕 아흔 셋이라는 나이가 너무나 끔찍하게 느껴졌다. 마흔이 넘도록 ‘심사숙고’란 것 한 번 해본 적 없이, 마음이 이끄는대로 살아온 내 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숫자로 여겨졌다. 어떻게든 기대수명을 좀 줄여야 했다. 고기를 더 먹을까? 평생 손대본 적 ..
2022.12.24 -
“결국…인생이란 뭘까?” 2019.7
"Ultimately… What is life?" 검은 양복 차림의 남자 세 명과 기모노를 입은 여자 한 명이 각각 우산을 쓰고 서 있다. 일본의 신사나 사찰로 보이는 장소의 정원이다. 50대 말에서 60대 초 반으로 보이는 네 사람은 어릴 때부터의 친구로 보인다. 분위기가 누군가의 장례식을 치르고 난 뒤 그냥 헤어지기가 허전해서 모여 있는 것 같다. 그 중 한 남 자가 웃음기 없는 진지한 얼굴로 말한다. 이제 지위도, 영예도 필요 없다고, 돈도 조금만 있으면 된다고. 말은 그렇게 하는데 지위도 있어 보이고 돈도 많아 보 이는 인상이다. 평생 지위와 명예, 돈을 추구해온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른 친구가 믿을 수 없다고, 그럼 뭐가 필요하냐고 묻는다. 그의 대답은 ‘사랑’이 다. 귀밑머리 허연 남자가..
2022.12.23 -
꽃에는 힘이 있다 2019.6
Flowers have power “너는 엄마가 왜 너를 낳았을까? 생각해 본 적 없어?” 올해 여든 일곱이 된 노모가 물었다. 내심 효도 관광이라 생색내며 찾은 강릉, 바다가 보이는 호텔 레스토랑에서였다. “아니, 한 번도 없어. 하하 여태 잘 살아서 그런가?” 나는 짐짓 명랑하게 대답했다. “나는 엄마가 뭐 하러 나를 낳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무슨 소리야, 할머니가 엄마를 낳았으니까 우리들도 태어났고 손자, 손녀들도 태어나서 잘 살고 있잖아. 엄마가 없으면 우리 전부 없는 건데 ‘뭐 하러’라니?” 엄마의 엄마인 할머니는 엄마가 겨우 백일 무렵에 돌아가셨다. 분유도 없던 시절에 엄마가 살아 남은 건 어쩌면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한 때 구에서 가장 노령의 장구 고수였고 노래교실..
2022.12.22 -
김장의 기쁨을 아는 몸 2022.12
I am the one who knows the joy of making kimchi "나 김장해야 돼서 헬스장에 며칠 못 와.” “몇 포기나 하는데 며칠씩이나 못 나와?” “여섯 포기!” “아이고 이 언니, 겨우 여섯 포기하면서 김장한다고 그렇게 엄살이야?” 한 여인이 큰 소리로 수선을 떨었다. “여섯 포기가 얼마나 많이 하는 건데 그래… 작년에는 세 포기 했어. 그거 하는데도 무지하게 힘들었어.” 언니라고 불린 여인이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하하 세 포기가 김장이야? 그건 그냥 평소에 해먹는 김치지. 난 김장 60킬로해요! 처음의 여인은 다른 사람들도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깔깔거렸다. 며칠 전 동네 헬스장의 탈의실에서 오고 간 대화였다. 넓은 평상이 한가운데 떡 하니 자리 잡고 있는 탈의실은 옛날..
2022.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