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숙(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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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요?” 2020.4
“How does it feel to be alive?”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이 대책없이 늘었다. 업무는 최대한 온라인을 통해 해결한다. 새해를 맞아 야심 차게 시작하려던 수영은 기약없이 연기되었다. 다니던 요가 수련장은 한 달 넘게 문을 닫고 있다. 대학 친구들과 실내에서 하던 동아리 모임도 두 달째 중단하고 있다. 1년 전부터 6월로 날을 잡고 계획하고 있는 해외 여행은 성사여부가 불투명해졌다. 친구나 선후배가 보고 싶으면 고작 코로나 사태가 지나간 후에 보자는 문자로 위안 삼는다. 악수도 포옹도 노래도 꾸욱 참아야 한다. 가족 이외에 만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대신 집에 있는 기계들과 대화하는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 밥을 하려고 전기밥솥의 단추를 누르니 ..
2023.01.18 -
“청춘 맞나? 청춘 맞다!” 2020.8
“Is it Youth? It’s Youth!” 내가 일하는 사무실에는 20대 직원이 일곱 명 있다. 푸른 청춘답게 그들은 까르르 잘 웃는다. 디자이너는 손이 빠르고 기획 담당은 진지하다. 연차가 어리고 경험이 부족하니 물론 자주 실수를 하고 회의 때 엉뚱한 얘기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당당하고 꿋꿋해서 눈물 쏙 빠지게 야단을 맞아도 포기하지 않고 보고서를 새로 고쳐온다. 갑자기 회식을 제안하면 운동을 해야한다고 거절하고, 외모에 대한 얘기는 성차별이 될 수 있다고 상사를 따끔하게 꼬집기도 한다. 눈치 보느라 업무와 상관 없는 내키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하지 않는다. 대신 해야할 일이면 꾀부리지 않고 빨리 해치운다. 21세기 청춘이 일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는 일은 즐겁다. 내가 매일 만나는 그들의 모습을..
2023.01.18 -
“문제가 없는 척하지 마세요” 2020.7
“Don’t pretend there’s no problem” 올해 여든 여덟이 되신 우리 엄마는 다섯 살 어린애 같을 때가 많다. 잇몸이 퉁퉁 부어 치과에 갔는데 이를 뽑아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진료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도망을 치셨다. 엄마를 모시고 간 동생은 허둥지둥 진료비를 내고, 미안하다는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엄마를 잡으러 뛰어야 했다. 평소에는 무릎이 아파 거북이 걸음이던 엄마가 얼마나 날쌔던지 동생은 따라가느라 땀을 다 흘렸다고 한다.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치과에서 왜 도망 갔어?” “무서워서.” “애기도 아니고 뭐가 무서워?” “아유, 윙 소리만 나도 무서워. 이제 살 만큼 살았어, 그냥 이렇게 살다 죽을래.” 앓던 이가 저절로 흔들려서 빠지고 어금니까지 성치 않으신데도 엄마는 치과..
2023.01.17 -
“우린 겨우 이런 일로 행복합니다” 2020.6
“We’re just happy with this small matter” 초등학교가 국민학교이던 시절, 담임 선생님이 아침 조회에 낯선 얼굴의 학생을 데리고 들어오는 일이 가끔 있었다. 교실에 가득찬 70명 가까운 아이들은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잔뜩 긴장한 표정의 전학생을 쳐다보았다. “오늘부터 우리 반에서 함께 공부하게 될 전학생이다. 반갑게 맞아주길 바란다. 저기 빈 자리 보이지? 거기 앉으면 되겠네. 들어가기 전에 자기 소개하고 들어가.” 전학생은 어느 학교에 다니다 온 누구라고 이름을 겨우 더듬더듬 얘기하고는 들어가 앉는다. 그러면 나는 종일 새로 온 아이를 궁금해 했다. 얼굴이 참 예쁘네, 공부는 잘 할까?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할까? 동생이 있을까? 저 아이가 다니던 학교는 어땠을까? 매일..
2023.01.16 -
“#STAY HOME 조금만 더” 2020.5
“#STAY HOME A little more” #자발적 자가격리의 화가 구마가이 모리카즈 94세의 일본의 화가 구마가이 모리카즈(熊谷守一)는 30년 동안 자신의 정원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살았다. 30년 동안 낮에는 정원의 나무와 풀벌레, 개미, 송사리들을 관찰하고 밤에는 그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모리에게는 정원이 곧 세계이고 우주였다. 화가 모리의 말년을 담은 영화 「모리의 정원(モリのいる場所)」에서 모리의 부인은 말한다. “여기에는 많은 나무와 벌레가 살고 있으니까요. 이 정원은 남편의 전부예요.” 모리는 52세에 이사한 집에서 45년을 살다가 1977년에 죽었다. 60대 중반부터는 정원 밖 출입을 하지 않았으니 자가격리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겠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미리 실천한 타샤..
2023.01.13 -
“우리 애활가 제씨는 한번 보실 만한 것이올시다” 2020.3
"Our Aewhalga(movie fan) ‘the Je Clan’ are worth seeing" 한국 시간으로 2월 10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충’이 작품상은 물론 감독상, 각본상, 국제극영화상까지 4개 상을 수상했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최다 수상 기록이고 비영어권 영화 최초의 작품상 수상 기록이다. 봉준호 감독이 감독상 수상 소감에서 같은 감독상 후보이자 대 선배 감독인 마틴 스코세이지에게 경의를 표하고 참석자들이 기립박수로 공감한 것은 시상식 최고의 명 장면으로 두고두고 화제에 올랐다. 최고상인 작품상을 수상하기 위해 감독과 제작자, 배우들이 무대에 서있는 장면을 볼 때는 나도 눈가가 뜨거워졌다. 그냥 기쁜 정도가 아니라 마..
2023.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