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86)
-
건축의 연속성 2023.7
Continuity of architecture 첫 직장 처음 맡은 프로젝트는 단독주택이었다. 내 의지대로 진행하기보다 완공된 작품들과 제본된 도면집을 살펴보며 회사 작업 방식과 분위기를 파악하고자 했다. 프로젝트 수가 많지 않지만 작업의 과정과 완성도가 높았다. 연도별로 잘 정리된 컴퓨터 폴더에서 단독주택을 발견, 프로젝트 이름은 ‘조각이 있는 집’이다. 조형미가 넘쳐 보이는 우아한 2층 규모의 건물 사진을 보고 “와, 이 집은 미술관 같이 생겼네” 하고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으니 가까운 자리에 앉아 있던 대표님이 클라이언트가 조각가 부부라고 대답해 주셨다. 경상도 특유의 사투리 억양이 강했는지, 신입이라서 잘 대해 주려는 것인지 내가 하는 혼잣말에 곧잘 답이 들려왔다. ‘조각이 있는 집’은 내 프..
2023.07.21 -
건축사의 랑데부 2023.7
Quebec Rendezvous Architects 기억 지구상의 넓은 경계는 때로 관심 밖의 세상일 수밖에 없지만, 가끔은 이런 관심을 일깨우는 때가 있다. 평소 관심을 전혀 갖지 못하던 어떤 곳이나 지역을 방문하거나 문화를 접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그렇다. 한참 잊고 있었던 기억이 이런 일로 인해 다시 살아날 때면, 어떤 계시와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번 몬트리올 방문은 나에게 벌써 십오륙 년 전이 된 첫 방문의 어렴풋한 기억을 망막 위에 떠오르게 하는 묘한 경험을 준다.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개최된 ‘건축사의 랑데부’ 프로그램은 캐나다 퀘벡 주정부와 퀘벡주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여러 기업체들이 참여, 전 세계 약 35개국의 건축사를 초청해 4박 5일 동안 네트워킹, 프로젝트 정보 교류, 현지 주..
2023.07.21 -
가벼운 시작, 그리고 첫 작품에 대한 기억 2023.6
A light hearted beginning, and the memories of the first work of art 무모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슨 용기로 그랬을까 싶다. 올해는 개업한 지 7년 차가 되는 해다. 개업 7년 차라고 하면 대부분 놀라는 반응이다. 그럴 만도 한 게, 대학 입학 후 군대에 갈 때 빼고는 별다른 휴학이 없었고, 졸업을 한 달 앞두고 건축사사무소에 첫 출근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5년은 버티자는 나와의 약속을 지킨 후, 60번째 월급을 받고 회사를 떠났다. 그리고 한 달 정도의 준비 기간을 거쳐 사업자를 내고 내 일을 시작했다. 사업자 신고가 생각보다 쉬워서 다소 놀랐던 기억이 있다. 첫 회사에서 5년 동안 온갖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고 자평하지만, 그래도 알만한 사람들은 ..
2023.06.21 -
시작, 임계점, 전환점 2023.5
Start, Critical point, Turning Point 시작 IMF 시대, 실장님들은 건축사 시험 등의 이유로 회사를 타의로 그만두게 되고, 그야말로 건축은 없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아비규환의 시대에 필자는 신입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친구들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핑계로 대학원을 진학하거나, 넉넉한 집안 사정으로 쉬거나, 집을 일을 돕거나, 다른 직종을 찾아가게 되었다. 나는 배워온 환경 때문인지 졸업하면 무조건 일해야지, 집에 불편함을 끼칠 수 없지 하며 무조건 일자리를 구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실습생 때부터 캐드에 인허가 대관을 좀 배웠었고, 학창 시절에도 주말이면 선배 사무실 설계공모 아르바이트 등으로 쉽게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당시는 IMF로 인해 선배들이 퇴사한 환경이라 군데군데 ..
2023.05.16 -
[건축비평] 포스트 코로나 이후 건축의 지속가능성 2023.4
Architecture Criticism Sustainability of architecture after post-COVID-19 코로나19를 거치면서 변화한 건축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기능별, 실별 프로그램 간의 모호한 경계, 소위 공간의 하이브리드화일 것이다. 기존의 건축에서 보였던 명료한 공간의 분할, 용도에 의한 실 구획은 이제 프로그램의 중첩, 복합화, 경계 없음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상업공간 안에 자연을 끌어들인다던지, 주거와 사무공간이 결합되는 등 공간의 활용, 쓰임에 대한 탈경계, 복합화로 다가오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월서가는 포스트코로나 이후의 건축이 보여줄 미래의 주택의 모습, 공간구성의 단초를 제공한다. ‘이월서가’의 첫인상은 마치 진경산수화 속에 놓여있는 호젓한 집..
2023.04.20 -
재건축을 바라보는 공동주택 2023.4
Apartment houses looking forward to reconstruction 아파트의 수명이 고작 3~40년이라니, 무슨 건물이 내달리느라 지칠 대로 지친 말도 아니고……. 유럽에 있던 시절, 유럽에서 발발된 두 차례의 전쟁을 겪으며 세기를 지난 집에서 삼대가 동고동락했던 거북이 머물던 집에 머문 적이 있다. 이런 삶을 고스란히 담은 뒤뜰에 연결된 주방은 벽에 걸린 무쇠냄비와 팬들, 그리고 오래된 화덕과 함께 집의 운치를 더해주고 있었다. 그 순간 요리를 하느라 분주한 여인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고 치즈 내음과 달콤한 디저트의 향기가 코에 머무는 것 같았다. 인간의 생애 속에는 분명 지우고 싶지 않은, 가슴 깊이 머물러 주었으면 하는 기억들이 있다. 어떤 이에게는 다소 수고스러운 장소였..
2023.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