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클 | Article/정카피의 광고이야기 | AD Story - Copywriter Jeong(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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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인생이란 뭘까?” 2019.7
"Ultimately… What is life?" 검은 양복 차림의 남자 세 명과 기모노를 입은 여자 한 명이 각각 우산을 쓰고 서 있다. 일본의 신사나 사찰로 보이는 장소의 정원이다. 50대 말에서 60대 초 반으로 보이는 네 사람은 어릴 때부터의 친구로 보인다. 분위기가 누군가의 장례식을 치르고 난 뒤 그냥 헤어지기가 허전해서 모여 있는 것 같다. 그 중 한 남 자가 웃음기 없는 진지한 얼굴로 말한다. 이제 지위도, 영예도 필요 없다고, 돈도 조금만 있으면 된다고. 말은 그렇게 하는데 지위도 있어 보이고 돈도 많아 보 이는 인상이다. 평생 지위와 명예, 돈을 추구해온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른 친구가 믿을 수 없다고, 그럼 뭐가 필요하냐고 묻는다. 그의 대답은 ‘사랑’이 다. 귀밑머리 허연 남자가..
2022.12.23 -
꽃에는 힘이 있다 2019.6
Flowers have power “너는 엄마가 왜 너를 낳았을까? 생각해 본 적 없어?” 올해 여든 일곱이 된 노모가 물었다. 내심 효도 관광이라 생색내며 찾은 강릉, 바다가 보이는 호텔 레스토랑에서였다. “아니, 한 번도 없어. 하하 여태 잘 살아서 그런가?” 나는 짐짓 명랑하게 대답했다. “나는 엄마가 뭐 하러 나를 낳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무슨 소리야, 할머니가 엄마를 낳았으니까 우리들도 태어났고 손자, 손녀들도 태어나서 잘 살고 있잖아. 엄마가 없으면 우리 전부 없는 건데 ‘뭐 하러’라니?” 엄마의 엄마인 할머니는 엄마가 겨우 백일 무렵에 돌아가셨다. 분유도 없던 시절에 엄마가 살아 남은 건 어쩌면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한 때 구에서 가장 노령의 장구 고수였고 노래교실..
2022.12.22 -
김장의 기쁨을 아는 몸 2022.12
I am the one who knows the joy of making kimchi "나 김장해야 돼서 헬스장에 며칠 못 와.” “몇 포기나 하는데 며칠씩이나 못 나와?” “여섯 포기!” “아이고 이 언니, 겨우 여섯 포기하면서 김장한다고 그렇게 엄살이야?” 한 여인이 큰 소리로 수선을 떨었다. “여섯 포기가 얼마나 많이 하는 건데 그래… 작년에는 세 포기 했어. 그거 하는데도 무지하게 힘들었어.” 언니라고 불린 여인이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하하 세 포기가 김장이야? 그건 그냥 평소에 해먹는 김치지. 난 김장 60킬로해요! 처음의 여인은 다른 사람들도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깔깔거렸다. 며칠 전 동네 헬스장의 탈의실에서 오고 간 대화였다. 넓은 평상이 한가운데 떡 하니 자리 잡고 있는 탈의실은 옛날..
2022.12.21 -
“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여!” 2019.5
"Ours are precious!"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이 일어설 줄을 모르고 앵콜을 외쳤다. 이미 한 곡 앵콜을 들었지만 아쉬움은 더 커졌다. 세 시간 가까이 휴식 시간도 없이 계속된 공 연이었다. 의자도 불편하고 거미줄이 보이기도 하는 좁은 소극장, 그런데도 관객들은 불편한 좌석도, 밤 10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라는 것도 잊은 듯했다. 가수가 다시 무대 중앙으로 나왔다. 조금 전까지 빠른 리듬의 곡을 열창한 그는 숨을 몰아 쉬었다. 객석과 무대가 가까워 가수의 얼굴에 흐르는 땀방울이 눈에 보였다. 가수가 기타의 지판에 왼손을 얹었다. 관람객들은 숨죽이고 시선을 집중했다. 맑은 음성이 극장 가득 퍼졌다. 좀 전까지와는 다른 조용한 노래였다. 생각나는 사람 조용한 사람 그리운 사람 언제쯤일까 무엇을..
2022.12.20 -
봄 꽃 피면, 봄 술 한 잔 2019.4
When spring flowers bloom, what about a spring drink? 봄이다. 햇살은 다사롭고 꽃 향기가 골목을 떠다닌다. 그리고, 봄바람이 분다. 4월에 부는 바람은 살랑살랑이다. 꽃샘바람처럼 매서운 대신 부드럽고 다정하 다. 밖으로 나오라는 봄의 손짓 같다. 미세먼지만 아니라면 몇 시간이고 바람에 흔들리며 걷고 싶다. 4월이 되면 제일 먼저 김소월의 「바람과 봄」이라는 시가 생각난다. 이 시에서 소월은 속삭인다. 이 봄, 마음이 이토록 흔들리는 건 내 탓이 아니라고, 저녁 어 스름이 찾아오면 술 생각이 나는 것도 내 잘못이 아니라고. 그건 모두 꽃향기 때문이고 봄바람 때문이라고 「바람과 봄」 봄에 부는 바람, 바람 부는 봄, 작은 가지 흔들리는 부는 봄바람, 내 가슴 흔들리..
2022.12.16 -
“차가운 그녀의 목소리에도 내 심장은 식지 않는다” 2019.3
“Even her cold voice does not cool down my heart” 눈보라 치는 산에서 한 남자가 독백한다. 굳은 표정, 눈을 만지는 손이 외롭다. 그 날 하늘은 유난히 푸르렀고 새 하얀 눈이 모든 숲을 덮었다. 가장 아름답게 별이 반짝이던 모든 것이 완벽한 겨울이었다. 겨울이 아니라면 준비해 간 도시락을 펴놓고 먹었을 나무 테이블과 의자에는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눈 덮인 등산화의 지퍼 고리에는 반지가 하나 매 달려 있다. 자막에 보이는 시간은 오전 11시. 카메라가 빠져서 보니 남자는 테이블 위에 조각처럼 서있다. 누구를 기다리는 것일까? 손을 모아 입김을 불어 보 고 패딩에 달린 모자를 뒤집어 쓴다. 독백이 이어진다. 벌써 세 시간 째 끝없는 기다림 기다릴 준비는 되어있..
2022.12.15